길 자체는 걷기에 편했다. 하지만 주변 풍경이 예사롭지 않았다. 산 절개지 바위와 뒤엉킨 뿌리가 괴기스럽게 드러났다. 한쪽은 계곡 낭떠러지다. 길 위의 숲은 하늘을 가렸다. 계곡은 낯설면서도 아름다웠다.   

계곡을 따라 불어 닥치는 거센 바람은 숲을 통째로 흔들고 있었으며, 그 ‘바람줄기’가 마당에 난 싸리비자국처럼 계곡 물 표면을 휩쓸고 있었다. 계곡으로 몰아치는 광풍은 공기를 가르는 채찍 같은 소리로 귓등을 갈라놓았다. 빗방울은 땅으로 곧장 떨어지지 못하고 공중에서 나부꼈다. 바람이 땅에서 하늘로 솟구치는 것 같았다. 구마동계곡과 우리는 그렇게 만났다. 
 
텀벙 뛰어들어 뒹굴고 싶은 물길

구마동 계곡의 여울 

◆하늘 가린 숲 음습한 계곡 길을 걷다
 
고선교를 건넌다. 평범한 산골 마을에 밭이 펼쳐진 풍경이다. 계곡 사람들은 ‘비탈밭’에서 채소나 당귀 같은 한약재 농사를 짓는다. 마음 편안하게 녹색의 향연을 즐기며 걷는다. 그렇게 2~3km 정도 걸었을까? 길가 풍경이 거칠게 바뀐다.

길 오른쪽은 산 절개면이다. 바위와 흙이 엉켜있는 그곳에 나무뿌리가 드러났다. 왼쪽은 계곡 낭떠러지다. 길 한참 아래에 물길이 났다. 무성하게 자란 나무 사이로 계곡은 보이지만 길에서 바로 내려갈 수 없다. 나무가 하늘을 가렸다. 숲과 계곡이 내뿜는 음습한 기운에 마음을 졸인다. 

계곡으로 떨어지는 낭떠러지 말고는 앞 뒤 옆이 산에 산이고 절벽에 절벽이다. ‘첩첩산중’이란 말이 이 계곡에 딱 맞아 떨어진다. 계곡 상류로 들어갈수록 눈과 귀, 코와 숨구멍까지 계곡의 숨결에 익숙해진다.

계곡은 낯설면서도 아름다웠다. 한차례 바람이 계곡을 휩쓸고 간다. 숲 전체가 일렁이고 계곡에서 부서지는 물 알갱이가 바람에 흩날린다. 큰 비가 온 뒤라 물이 많다. 5km 정도 걸어 마방에 도착했다. 새로 놓은 다리는 계곡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다. 마방에는 민박집과 야영장 등이 있다.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는 길, 낭떠러지 위에서 계곡만 바라보며 ‘텀벙’ 뛰어들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는데 마방에 이르러 물가로 내려갈 수 있었다.

계곡은 협곡처럼 산에 둘러싸여 답답했지만 물은 깨끗하고 차가웠다. 잠시 물가에서 쉬어 가기로 했다. 산이 높아 계곡이 깊다. 산에 걸린 하늘이 좁다. 

◆계곡의 밤, 마음에 새긴 발걸음

산 높고 골 깊은 이곳은 어둠이 일찍 찾아온다. 마방 계곡에서 십여분 정도 쉬었다가 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걸어 약 2km 정도 위에 있는 황토민박집에 숙소를 정해야 했다.

민박집 앞 넓은 계곡으로 나갔다. 해질 무렵 계곡물은 더 큰 소리를 내며 흐르고 물도 더 부풀어 오르는 것 같다. 텀벙거리며 계곡물을 거슬러 올라갔다. 다리가 휘청거리고 시리다. 물에 그대로 누워 뒹굴었다. 음습한 계곡의 습기와 땀이 씻겨나간다. 계곡물에 들어가 앉아 멍하니 있었다.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돌베개를 하고 계곡물에 드러누웠다. ‘돌돌돌’ ‘콸콸콸’ 거리며 요란하게 흐르는 여울물 소리에 숲을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 소리까지 자연의 소리가 계곡물에 드러누운 내 몸을 감싼다. 그 시간 동안 마음은 평온하다. 머리도 맑아진다. 해가 진다.

계곡의 밤은 소리로 보고 소리로 느끼고 소리로 모든 것을 직감해야 한다. 민박집 전등불이 있지만 계곡은 칠흑 같이 깜깜하다.

바람은 낮보다 더 날카롭게 울부짖는다. 우리가 있는 숲과 계곡이 통째로 회오리바람에 휘말려 ‘오즈의 세상’으로 날아갈 것 같았다. 이럴 때면 불 켜진 창들이 아늑하다.

방으로 들어갔다. 환한 불빛 아래서 소곤대며 옛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밤이 이슥해질 때까지 술잔은 계속 돌았고 마음 깊은 곳 비밀의 방 자물쇠를 열고 그 안에 숨겨 두었던 이야기를 하나 둘 씩 꺼내기 시작했다.

스스로 길을 내며 흐르는 물줄기와 숲을 통째로 흔드는 광풍, 괴기스러운 계곡, 이 모든 것들이 낯선 두려움으로 다가와 편안한 휴식이 됐다. 아무 생각 없이 잠들었다.   

텀벙 뛰어들어 뒹굴고 싶은 물길

 
◆물안개 피어나는 선경

어제 걸어왔던 잔대미, 마방 말고도 계곡 상류로 올라가면서 노루목, 북말, 큰터, 새터, 간기, 도화동 등 마을이 있는데 노루목에 있는 황토민박에서 하룻밤을 보낸 우리는 계곡물을 거슬러 ‘큰터’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늦은 아침을 먹고 계곡 상류를 향해 걸었다. 계곡물은 푸른 숲의 그림자 때문인지, 아니면 시원한 바람을 머금어서인지 청옥빛이 깊었다. 간혹 물결이 바위에 부서지거나 폭포처럼 퍼붓는 곳에서는 청옥빛이 옅어져서 서늘한 바람이 이는 모시장삼 같았다.

계곡을 따라 걷는 길에 비가 오락가락했지만 이곳에서는 비조차 지루하지 않았다. 산 깊은 계곡에 비가 내리면 낮에도 물안개가 자욱하게 피어난다. 계곡 상류로 가면서 잎 넓은 나무들 사이에 침엽수들이 보인다.

일렬로 서 있거나 무리 지은 침엽수는 그 자체로도 장관이지만 삼각형 구도의 침엽수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곳에 물안개가 피어오르면 그 또한 선경이다.

비오는 날 구마동 계곡을 걸으면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색다른 느낌이 온몸을 휘감아 돈다.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바로 계곡물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자주 나온다. 한 여름에도 나무숲이 우거져 햇빛 걱정할 필요가 없다. 계곡에 몸을 담그고 드러누웠다.  
 
텀벙 뛰어들어 뒹굴고 싶은 물길


◆금광으로 유명했던 계곡에 자연만 남아

그렇게 놀며 걸으며 도착한 ‘큰터’. 구마동 계곡에서 가장 넓은 땅이 있다 해서 ‘큰터’라는 이름이 붙었다.

사실 구마동계곡도 150여가구가 북적대며 살던 시절이 있었다. 계곡 하류와 상류에 초등학교가 각각 하나씩 있었을 정도라니 마을의 규모를 짐작할 만하다.

일제강점기 때는 금채굴과 벌목을 위해 일본 사람들이 이곳에 상주했다곤 하니 더 많은 사람들이 계곡에서 살았을 것이다.

당시에는 5리, 10리 거리를 두고 계곡을 따라 주막이 있었다. 돈 풀리는 날이면 하루에 이 계곡에서 없어지는 막걸리만 해도 열말은 충분히 넘었단다. 폐교가 된 초등학교 부근과 노루목 세류암 부근이 유명한 주막거리였다.

처음 걷는 길에서 느끼는 긴장감에 종종걸음으로 걸어왔던 길, 돌아갈 때는 마음 편히 천천히 걸었다.

물안개가 피어난 계곡과 숲은 신비로웠다. 길가에 서낭당이 있어 문을 열었더니 열린다. 마을을 지키는 서낭신께 ‘아름다운 자연을 간직한 이곳을 잘 지켜 달라’고 빌며 문을 닫았다.

나비가 숲에서 나풀거리고 벌이 계곡 절벽에 핀 꽃에 날아든다. 어제는 음습한 기운으로 느껴졌던 계곡의 기운이 오늘은 온몸을 청정하게 만드는 그 무엇으로 느껴진다.


[여행정보]

<길안내>
자가용
영동고속도로 - 중앙고속도로 제천 영주 방향 - 풍기IC로 빠져 나와 영주 쪽으로 가다가 봉화로 가는 36번 도로 - 봉화 - 소천면 현동리 현동삼거리 - 태백방향 - 길 오른쪽에 무진랜드 입간판과 주유소 등 몇몇 건물이 보임 - 그곳에서 약 700m 정도 가다보면 길 왼쪽에 ‘고선2리’ 표지판이 보인다. 그 표지판 보고 좌회전해서 고선교를 건넌다 - 마방 - 노루목 - 큰터 

대중교통
동서울터미널에서 봉화행 버스(하루 6대 운행)를 타고 봉화에서 내린다. 봉화터미널(054-673-4400)에서 태백 가는 버스를 타고 ‘명산 버스정류장’에서 내린다. ‘명산 버스정류장’은 옛날 명산랜드 있던 자리(지금은 무진랜드 입간판이 서 있다) 부근인데 거기서 고선2리 표지판 있는 곳까지 약 700m 정도 된다. 고선2리 표지판에서 고선교를 건너 구마동황토민박까지 약 7~8km 정도 된다. 이 거리를 걸어가야 한다. 아니면 봉화버스정류장에서 태백 가는 버스를 타고 현동에서 내린다. 현동에서 개인택시(011-522-2422)를 타고 구마동황토민박까지 들어간다. 택시비는 대략 1만7000원 정도 나온다. 현동에서 계곡 입구까지 약 4km. 계곡 입구에서 구마동 황토민박까지 약 7~8km다. 현동은 고기류 등 간단하게 장을 볼 수 있는 마지막 마을이다. 고선계곡 안에는 장 볼 곳이 없다. 

<숙박> 출발지점인 고선교에서 약 5km 지점에 마방이라는 곳이 나온다. 이 부근에 민박 및 야영장이 있다. 또 마방에서 약 2km 정도 거리에 구마동황토민박집(054-672-7367)이 있다. 

<음식>
봉화는 송이요리가 유명하다. 송이전골, 송이돌솥밥 등 다양한 송이 요리를 먹을 수 있다. 송이요리를 하는 곳이 몇 곳 있는데 우리는 봉성면 동양리 동양초등학교 앞 용두식당(054-673-3144)에서 먹었다. 송이전골 1인 2만원. 송이돌솥밥 특 2만원. 보통 1만5000원.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3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