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돈 된다는 데 나도 해볼까?" 요즘 사람들을 만나 미술에 관해 얘기를 나누다 보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고급호텔이나 대형건물 로비에 그림 한점 걸어두지 않은 곳이 없다. CEO 중에도 그림이 취미라고 말하는 이들도 많다. 집무실 벽을 그림으로 장식하거나 회의실 한켠에 잭슨홍의 '상식'을 걸어두는 경우도 있다. 새로 오픈하는 은행 PB센터나 증권사 영업점을 그림으로 장식하는 것은 일반화됐다. 개인적으로 그림을 사서 집에 보관하고 있는 컬렉터들도 많아졌다.

시기도 적당하다. 글로벌 불경기라지만 세계 미술시장은 이미 호황을 되찾았다. 여전히 침체국면인 한국시장은 지금이 투자적기다. 최소한 지금 사는 한국작가의 작품에 거품이 끼었다는 우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드라마와 음악으로 확대된 한류 열풍이 미술로 번질 수도 있다.

문제는 어떻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는 점이다. 미술시장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초보 컬렉터들이 신경써야 할 점은 무엇일까.

◆ 투자와 취미 그 경계에서

미술은 투자와 취미의 경계가 모호하다. 미술품은 돈으로 거래가 된다. 미술품 값이 얼마라고 객관적으로 말하긴 어렵지만 시간에 따라 장소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미술을 100% 투자의 관점에서 보는 경우도 있다. 글로벌경기와 유동성, 경기지표 등을 감안해 인플레이션 헤지 대상으로 미술을 거래하는 경우다.

미술시장에 첫발을 내딛는 초보자라면 100% 투자만을 위한 목적은 위험하다. 수백만,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대작을 사기 위해 '몰빵'을 하기보단 여유자금으로 부담 없이 시작하는 게 좋겠다.

자영업자라면 가게나 회사 회의실, 혹은 집안을 장식할 소품부터 시작하면 된다. 아이방을 꾸며주기 위해 이동기의 '아토마우스'나 권기수의 '동구리' 작품을 사도 좋고 식당 한켠에 야요이 쿠사마의 호박그림을 걸어두어도 제격이다. 기왕이면 위트를 담고 스토리를 만들면 지인들과 이야깃거리도 풍성해진다.

한 CEO는 회의실에 잭슨홍의 상식 시리즈를 걸었다. 잭슨홍의 상식 시리즈 중 하나인 '야구방망이'는 양각으로 커먼센스(상식)란 글씨를 새겨 넣은 야구방망이를 액자 안에 넣어둔 작품이다. 액자 유리엔 '비상시 깨뜨리시오'(Break Glass in Case of Emergency)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상식을 깨트리라는 메시지를 이보다 강하게 전달해주는 작품이 있을까. 회의시간에 집중하지 못하는 '비상시'엔 유리를 깨고 야구방망기를 꺼내면 된다. 참신한 아이디어를 찾아야 하는 회의실에 이만큼 어울리는 소품도 드물다.
 
'취미가 돈이되는' 미술투자

잭슨홍 '스테인리스 변기'

하나 덧붙여 CEO 본인의 집무실엔 잭슨홍의 작품 중 하나인 '스테인리스 변기'를 걸어뒀다. 변기가 연상시키는 '똥'의 이미지를 돈과 연관 지어 걸어 놓은 것이다. 집무실을 찾은 손님들과 대화를 이어가기에 좋은 소재다.

◆ 블루칩 작가 소품은 안정적

초보 컬렉터들이 가장 크게 고민하는 것은 작품 고르기다. 유명작가의 작품이 안정적인 가격을 보인다지만 너무 비싸다. 전문가들은 블루칩작가의 소품이나 에디션 작품부터 시작하라고 조언한다.

이우환, 김환기, 이대원 등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은 점당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을 호가한다. 에디션 작품부터 시작하면 1/10로 가격이 떨어진다.

에디션은 판화나 사진, 조각 등 여러 점을 찍어낸 작품을 말한다. 100점을 찍어낸 작품이라면 1/100~100/100까지 번호가 매겨져 있고 각 작품마다 작가의 사인이 들어있다. 하나하나가 모두 원본이다.

블루칩 작가의 판화작품도 안정적인 가격을 유지한다. 가격 진폭이 크지 않아 시세 차익을 누리긴 어렵지만 손해볼 일도 없다. 판화를 가품으로 만드는 일도 없어 위작 논란에 휘말릴 일도 없다. 가격대도 초보자가 시작하기 적당하다.

에디션 작품 중에 1~10번 등 초기 번호만 고집하는 경우도 있다. 에디션 1~10번이 먼저 만들어진 작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작가가 에디션에 사인을 한 순서일 뿐으로 너무 큰 의미를 두지 말라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 온라인경매가 무난…현장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아야

작품을 골랐다면 어떻게 구매할 지가 고민거리다. 미술품을 구매하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 경매를 통해 구입하거나 갤러리에서 직접 매매하는 방법이다. 갤러리를 찾아 그림을 사는 것은 다소 부담스럽다. 아무래도 고가의 작품이 대부분이고 그림을 사겠다고 갤러리를 다니는 것도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비교적 손쉽게 접할 수 있는 방법이 경매다. 경매는 오프라인 경매와 온라인 경매로 나뉜다. 오프라인 경매는 경매회사에서 특정일에 진행하는 경매다. 같은 값을 제시하면 서면응찰, 전화응찰, 현장응찰 순으로 우선 순위를 준다. 서면응찰은 경매일 전날 상한가를 써서 입찰하게 된다.

오프라인 경매에선 현장 분위기에 휩쓸려 충동구매를 하기 쉽다. "지금 패들을 드시면 이 작품을 가져가실 수 있습니다"란 경매사의 유혹어린 멘트에 나도 모르게 패들을 들게 된다. 경매가 워낙 순식간에 진행되기 때문에 생각할 시간도 적다.

따라서 초보자들은 온라인 경매가 안전하다. 비교적 여유를 갖고 고민할 수 있고 현장 분위기에 휩쓸릴 일이 없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소품과 에디션 작품이 많이 출품되기 때문에 가격부담도 덜하다.

'취미가 돈이되는' 미술투자

하태임 '프린트베이커리'의 뮤라섹 작품 

◆ 안목이 높아지면 신진작가 중 대박 치기도

초보 컬렉터들은 무엇보다 공부를 많이 할 필요가 있다. 미술은 보는 만큼 안목이 늘어난다. 경매회사들은 경매에 앞서 프리뷰 행사를 갖는다. 큐레이터들이 프리뷰 기간 내내 대기하고 있어 친절하게 설명을 해준다. 프리뷰는 물론 공짜다.

안목을 키우면 신진작가들의 작품을 고르는 재미도 커진다. 서울옥션의 커팅엣지전은 경매시장에 첫선을 보이는 신진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다. 커팅엣지전에서 100만원대에 거래된 작품이 몇년 뒤 대박이 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미술품 대중화를 위해 서울옥션이 새로 시작한 '프린트베이커리' 프로젝트도 관심을 가질 만하다. 서울옥션이 새로 런칭한 프린트베이커리는 미술작품을 압축아크릴액자로 만들어 작가가 직접 감수한 뮤라섹 작품을 9만원에서 18만원에 선보였다. 하태임, 박항률, 유선태, 강영길, 아트놈 등이 프로젝트에 참가했다. 액자값에 신진작가 작품을 소장할 절호의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