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이탈 자산운용사 "차라리 금융위기가…"
위기의 증권업, 대격변 온다/ 출혈경쟁에도 근근이 유지… "주가 떨어져야 돈 들어와" 푸념
유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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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업계의 위기는 자산운용사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상황은 오히려 증권사보다 더 나쁘다. 펀드의 인기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돈을 벌 수단이 사라지고 있어서다.
이러한 위기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ETF의 수수료를 낮추는 출혈경쟁까지 불사하고 있지만 투자자들은 요지부동이다.
◆ 몇년 새 규모 커졌지만 '속빈 강정'
운용사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최근 몇년 사이 자산운용업계의 규모가 커졌음에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가속화되고 전반적으로 수익이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2008년 9월30일 기준으로 국내 64개 자산운용사의 총자산은 2조9344억원, 자본은 1조4865억원, 당기순이익은 2854억원이었다. 이로부터 4년여가 지난 지난해 4분기(10~12월)에는 국내 자산운용사 수가 84개로 늘어났다. 자산 또한 3조9846억원으로 1조원 가까이 증가했다.
이처럼 자산운용사는 4년간 20개사나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본금은 1조5443억원으로 578억원 늘어나는데 그쳤다. 당기순이익은 2940억원으로 100억원도 채 늘어나지 못했다.
지난해 4분기 당기순이익이 10억원을 넘은 운용사는 전체 84개사 가운데 36개사뿐이다. 심지어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회사도 31개사나 된다. 결과적으로 4년간 운용사들의 규모는 늘었지만 수익은 줄어든 셈이다.
이러한 문제의 근원에는 수수료 체계와 달라진 투자자들의 성향이 존재한다.
자산운용사는 기본적으로 펀드를 직접 팔지 못하고 운용하는 대가로 평가액의 일정부분을 보수로 받는다. 결국 '수수료'가 이들의 수입원인데, 차갑게 식어버린 펀드의 인기로 인해 돈을 벌기 힘든 상황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증권업은 가시적으로 드러나기라도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도 않다"면서 "그래도 간신히 버티고 있는데 전반적으로 너무 힘든 상태"라고 토로했다.
◆ 코스피 떨어지기만 바라는 운용사들
역설적인 이야기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차라리 금융위기가 오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 지수가 하락하면 주식형펀드의 수익도 떨어지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수가 하락하기를 바라는 이유는 "그래야 돈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투자자들은 코스피지수가 2000을 돌파하면 펀드를 환매했고, 반대로 증시가 떨어졌다 싶으면 펀드에 돈을 쏟아 붓는 형태로 성향이 바뀌었다. 펀드는 분명히 장기투자상품이지만, 투자자들은 단기투자에 열성적이다. 오래 묻어두는 걸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전용배 프랭클린템플턴투신운용 대표이사는 최근 여의도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지금은 채권형펀드를 주식형펀드로 바꿔야 할 때이지만 투자자가 아직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2008년 금융위기로 주식형펀드에 대한 '트라우마'가 크게 형성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 대표의 말처럼 이런 추세가 지속되다보니 그나마 팔리는 상품은 '안전한' 상품들이다. 최근 희망을 걸었던 재형저축펀드도 더 안전한 적금에 밀려 고객의 외면을 받고 있다.
물론 그래도 팔리는 펀드가 있기는 하다.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3월18일 종가 기준으로 국내 펀드 가운데 'KB중소형주포커스자(주식) A CLass'에 총 1627억원이 순유입된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이는 최근 코스닥시장이 550선에 진입하는 등 코스피 대비 상대적으로 좋은 모습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에 나온 현상이다.
일견 자금이 들어오는 펀드가 있어 보이지만, 시야를 좀 더 넓혀 전체 현황을 살펴보면 상황은 반전된다. 736개의 국내 주식형펀드 중 자금이 조금이라도 들어온 펀드는 168개로, 올 들어 8852억원어치의 자금이 순유입됐다.
반면 자금 변동이 아예 없는 펀드는 30개였으며, 이들을 제외한 총 538개의 주식형 펀드에서 3조2473억원어치의 자금이 빠져나갔다.
"차라리 코스피지수가 폭락했으면 좋겠다"는 한 관계자의 푸념 섞인 소리가 허투로 들리지 않는 이유다.
◆ ETF·유증·신사업 진출까지
당장 호구지책에 문제가 생기자 운용사들의 발도 바빠졌다. 최근 들어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상장지수펀드(ETF)부터 시작해 유상증자에 신사업 진출까지, 다양한 활로를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운용사들은 ETF의 수수료를 대거 낮췄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타이거200 ETF' 보수를 업계 최저인 0.09%로 내렸고 삼성자산운용은 해외ETF인 '코덱스 차이나 H, 코덱스 재팬, 코덱스 브라질'의 총 보수를 0.37%로 낮췄다. 한국투신운용, 우리자산운용도 수수료 체계를 손봤다.
인기가 많으니 고객을 붙잡기 위해 수수료를 낮추고 있지만, 그만큼 들어오는 돈은 줄어들기 때문에 사실상 출혈경쟁, 혹은 자충수라는 말이 나온다. ETF 자체가 수수료보다는 유동성, 즉 거래량에 더 영향을 받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수수료를 낮췄다고 해서 크게 변하는 것도 없다. 따라서 가뜩이나 힘든 자산운용사들은 상황이 더욱 어려워졌다.
운용업계 내부에서는 돈 안 되는 ETF는 차라리 취급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소리까지 나온다. 실제로 지난 2011년 현대인베스트먼트운용은 국내 최초 금 ETF였던 HIT골드와 HIT보험을 상장폐지하고 ETF사업에서 철수했다. 당시 이 회사는 "비용대비 이익이 많지 않아 실리를 찾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팔리는 상품이 종종 있다는 것은 그만큼 기대치가 낮아졌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라며 "투자자들이 펀드나 주식처럼 위험자산이라고 생각하는 상품에서 손을 떼다보니 업계가 더욱 어려워진 것 같다"고 말했다.
운용사들은 ETF 외에도 생존전략을 모색하기에 바쁘다. 프랭클린템플턴자산운용은 최근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35억원(보통주 70만주) 규모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지난 2011년 자문사에서 운용사로 전환한 코스모자산운용은 지난달 주주총회를 열고 사업목적에 사모전문투자회사(PEF) 운용을 추가해 신사업 진출에 나섰다.
업계는 지난해 말 골드만삭스자산운용 한국법인이 폐쇄를 결정한 것처럼 회생불가 상태에 놓이기 전까지 어떻게든 활로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실제로 쓰러지는 회사가 나올 수 있다는 불안감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고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7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이러한 위기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ETF의 수수료를 낮추는 출혈경쟁까지 불사하고 있지만 투자자들은 요지부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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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용사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최근 몇년 사이 자산운용업계의 규모가 커졌음에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가속화되고 전반적으로 수익이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2008년 9월30일 기준으로 국내 64개 자산운용사의 총자산은 2조9344억원, 자본은 1조4865억원, 당기순이익은 2854억원이었다. 이로부터 4년여가 지난 지난해 4분기(10~12월)에는 국내 자산운용사 수가 84개로 늘어났다. 자산 또한 3조9846억원으로 1조원 가까이 증가했다.
이처럼 자산운용사는 4년간 20개사나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본금은 1조5443억원으로 578억원 늘어나는데 그쳤다. 당기순이익은 2940억원으로 100억원도 채 늘어나지 못했다.
지난해 4분기 당기순이익이 10억원을 넘은 운용사는 전체 84개사 가운데 36개사뿐이다. 심지어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회사도 31개사나 된다. 결과적으로 4년간 운용사들의 규모는 늘었지만 수익은 줄어든 셈이다.
이러한 문제의 근원에는 수수료 체계와 달라진 투자자들의 성향이 존재한다.
자산운용사는 기본적으로 펀드를 직접 팔지 못하고 운용하는 대가로 평가액의 일정부분을 보수로 받는다. 결국 '수수료'가 이들의 수입원인데, 차갑게 식어버린 펀드의 인기로 인해 돈을 벌기 힘든 상황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증권업은 가시적으로 드러나기라도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도 않다"면서 "그래도 간신히 버티고 있는데 전반적으로 너무 힘든 상태"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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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류승희 기자 |
역설적인 이야기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차라리 금융위기가 오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 지수가 하락하면 주식형펀드의 수익도 떨어지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수가 하락하기를 바라는 이유는 "그래야 돈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투자자들은 코스피지수가 2000을 돌파하면 펀드를 환매했고, 반대로 증시가 떨어졌다 싶으면 펀드에 돈을 쏟아 붓는 형태로 성향이 바뀌었다. 펀드는 분명히 장기투자상품이지만, 투자자들은 단기투자에 열성적이다. 오래 묻어두는 걸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전용배 프랭클린템플턴투신운용 대표이사는 최근 여의도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지금은 채권형펀드를 주식형펀드로 바꿔야 할 때이지만 투자자가 아직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2008년 금융위기로 주식형펀드에 대한 '트라우마'가 크게 형성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 대표의 말처럼 이런 추세가 지속되다보니 그나마 팔리는 상품은 '안전한' 상품들이다. 최근 희망을 걸었던 재형저축펀드도 더 안전한 적금에 밀려 고객의 외면을 받고 있다.
물론 그래도 팔리는 펀드가 있기는 하다.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3월18일 종가 기준으로 국내 펀드 가운데 'KB중소형주포커스자(주식) A CLass'에 총 1627억원이 순유입된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이는 최근 코스닥시장이 550선에 진입하는 등 코스피 대비 상대적으로 좋은 모습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에 나온 현상이다.
일견 자금이 들어오는 펀드가 있어 보이지만, 시야를 좀 더 넓혀 전체 현황을 살펴보면 상황은 반전된다. 736개의 국내 주식형펀드 중 자금이 조금이라도 들어온 펀드는 168개로, 올 들어 8852억원어치의 자금이 순유입됐다.
반면 자금 변동이 아예 없는 펀드는 30개였으며, 이들을 제외한 총 538개의 주식형 펀드에서 3조2473억원어치의 자금이 빠져나갔다.
"차라리 코스피지수가 폭락했으면 좋겠다"는 한 관계자의 푸념 섞인 소리가 허투로 들리지 않는 이유다.
◆ ETF·유증·신사업 진출까지
당장 호구지책에 문제가 생기자 운용사들의 발도 바빠졌다. 최근 들어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상장지수펀드(ETF)부터 시작해 유상증자에 신사업 진출까지, 다양한 활로를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운용사들은 ETF의 수수료를 대거 낮췄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타이거200 ETF' 보수를 업계 최저인 0.09%로 내렸고 삼성자산운용은 해외ETF인 '코덱스 차이나 H, 코덱스 재팬, 코덱스 브라질'의 총 보수를 0.37%로 낮췄다. 한국투신운용, 우리자산운용도 수수료 체계를 손봤다.
인기가 많으니 고객을 붙잡기 위해 수수료를 낮추고 있지만, 그만큼 들어오는 돈은 줄어들기 때문에 사실상 출혈경쟁, 혹은 자충수라는 말이 나온다. ETF 자체가 수수료보다는 유동성, 즉 거래량에 더 영향을 받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수수료를 낮췄다고 해서 크게 변하는 것도 없다. 따라서 가뜩이나 힘든 자산운용사들은 상황이 더욱 어려워졌다.
운용업계 내부에서는 돈 안 되는 ETF는 차라리 취급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소리까지 나온다. 실제로 지난 2011년 현대인베스트먼트운용은 국내 최초 금 ETF였던 HIT골드와 HIT보험을 상장폐지하고 ETF사업에서 철수했다. 당시 이 회사는 "비용대비 이익이 많지 않아 실리를 찾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팔리는 상품이 종종 있다는 것은 그만큼 기대치가 낮아졌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라며 "투자자들이 펀드나 주식처럼 위험자산이라고 생각하는 상품에서 손을 떼다보니 업계가 더욱 어려워진 것 같다"고 말했다.
운용사들은 ETF 외에도 생존전략을 모색하기에 바쁘다. 프랭클린템플턴자산운용은 최근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35억원(보통주 70만주) 규모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지난 2011년 자문사에서 운용사로 전환한 코스모자산운용은 지난달 주주총회를 열고 사업목적에 사모전문투자회사(PEF) 운용을 추가해 신사업 진출에 나섰다.
업계는 지난해 말 골드만삭스자산운용 한국법인이 폐쇄를 결정한 것처럼 회생불가 상태에 놓이기 전까지 어떻게든 활로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실제로 쓰러지는 회사가 나올 수 있다는 불안감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고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7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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