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들이 증권시장에 대한 '불안'을 놓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반대급부로 채권시장에 대한 관심은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시장에서는 회사채에 대한 우려가 솔솔 나오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투기등급'으로 분류된 회사채 부도율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최고를 기록했다. 금감원이 2012년도 국내 신용평가회사의 신용평가실적을 분석한 결과 한국기업평가, 한국신용평가, NICE신용평가 3사가 집계한 연간 부도율은 1.62%로 전년(1.01%)과 비교해 소폭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 신용등급 'BB' 이하인 투기등급의 부도율은 15.66%로 외환위기 이후 가장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 5월은 회사채 쏟아지는 달

투자자 입장에서 금리 자체만 놓고 본다면 현재 회사채시장은 큰 메리트가 없다.

크레딧 스프레드가 지속적으로 하락해 지난 2월 초순 전저점 수준을 하회하며 금융위기 이후 최저수준을 기록한 후 3개월째 횡보 중이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가격만 놓고 보면 전혀 끌리지 않는 상태라는 얘기다. 더군다나 정부가 투자자 보호와 정보 공개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5월6일부터 기업어음(CP) 발행 시 공시의무 범위를 확대했기 때문에 5월에는 CP를 대신하는 회사채 발행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부담이다.

기존에는 CP 발행 시 50매 이상의 발행에만 증권신고서를 제출할 의무가 있었으나 지난 6일부터는 만기가 365일 이상이거나 특정금전신탁에 편입되는 경우에도 증권신고서를 제출하도록 하는 등 공시의무 범위가 확대됐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개정 예고가 된 이후 1년 이상의 장기 CP 발행은 이전 4개월(2012년 7~10월)간 16조1000억원이었으나, 발표 후 5개월(2012년 11월~2013년3월) 동안에는 29조2000억원이나 쏟아졌다. 기업들이 규제가 나오기 전에 선제적으로 자금조달에 나선 것이다.

따라서 규제가 본격 시행된 5월 이후에는 CP 발행이 줄어들고 상대적으로 공모 회사채의 발행이 다시 늘어날 것으로 풀이된다.

◆ 줄줄이 터지는 크레딧 이벤트

최근 들어 크레딧 이벤트가 줄줄이 나타난다는 점이 회사채시장에 대한 우려를 키우고 있다. 시중 유동성이 풍부한 상황인 것은 맞지만, 이러한 크레딧 이벤트들로 인해 자금들이 '한번 더 생각하게 될' 가능성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당장 지난 4월만 해도 크레딧 이벤트가 끊이지 않고 발생했다. 국내 경기부진이 예상보다 심각한 가운데 비우량 기업들이 자금조달에 난항을 겪으면서 우려하던 조선, 건설, 해운업종 관련 이슈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모습이다.

용산 드림허브 이슈에 이어 STX조선해양이 자율협약을 체결하고 GS건설이 대규모 손실을 공시하면서 시장의 우려가 증폭되는 모습이다.

건설계열사를 보유한 그룹들의 잠재적인 재무부담에 대한 우려도 현실화되는 모습이다. 지난 2월 자금난을 겪었던 두산건설을 대상으로 두산중공업이 그룹 차원의 대규모 지원에 나서겠다고 발표한 데 이어 만도 역시 기존의 입장과는 달리 한라건설의 대규모 유상증자에 간접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임정민 우리투자증권 크레딧 애널리스트는 "회사채시장의 양극화가 심화되는 가운데 비우량 기업들이 자금조달에 난항을 겪고 있어 만기가 많이 몰려있는 3~5월에 유동성 이슈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GS건설이 해외플랜트 현장에서 5500억원의 손실을 인식하면서 시장에 충격을 줬고, 이로 인해 전반적으로 건설업체들과 관련된 이슈가 크레딧시장에서 우려 요인을 키우고 있다.

기존에 건설업체들과 관련된 우려는 국내 사업비중이 높은 주택관련업체들에 집중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번 이슈로 기존에 고마진으로 인식되던 해외프로젝트의 원가관리에 대한 불확실성이 제기되면서 상위등급의 타 건설업체들의 실적 전망에 대한 신뢰성 역시 훼손되는 모습이다.

특히 GS건설의 경우 지난 3년간 인식했던 이익을 한분기 만에 모두 반납해버림으로써 공사실행 과정이나 원가 예측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도를 크게 추락시켰다.

만도의 한라건설에 대한 지원 발표 역시 건설사의 재무구조 악화가 그룹 전반의 유동성 부담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를 확인시켜 준 또다른 사례다. 여러 차례 적극적인 지원 의지를 보임으로써 두산그룹의 두산건설에 대한 지원은 이미 시장에서 예견될 수 있었던 반면 만도의 이번 유상증자 참여는 채권시장 투자자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줬다.

◆ 5월 시장 관전 포인트는 회사채 만기

현 시점에서 당면한 5월 회사채시장의 관전 포인트는 'BBB'등급 회사채의 만기다.

업계에 따르면 5월 중 무보증·공모 기준으로 만기가 예정된 BBB등급 회사채 규모는 총 3조6000억원에 달한다. 4월 4조원에 비해 감소한 수치지만, 문제는 개별회사들 가운데 크레딧 이슈가 있었던 회사들이 몰려 있다.

세부적으로 ▲STX(BBB-) 2000억원 ▲STX조선해양(BBB-) 3000억원 ▲대성산업(BBB+) 1000억원 ▲두산건설(BBB+) 944억원 ▲한라건설(BBB+) 600억원 등이 포함돼 있다. 이들은 시장에서 기관들의 수요가 없어 현재 회사채시장을 통한 차환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으로 평가된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국고채 금리 수준이 크게 하락함에 따라 'AA-' 등급의 5년물 회사채가 3%도 안 되는 금리수준을 보이고 있다"며 "가뜩이나 기관의 수요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인데, 크레딧 이슈가 발생한 회사들의 채권을 사들일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GS건설의 1분기 실적 발표 이후 회사채 발행시장에서의 위험회피 성향은 점차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지속적으로 크레딧 위험에 대한 경고음이 울리고 있는 그룹계열과 건설업종 등에 대한 투자심리는 얼어붙은 상태다.

한화(A), 동부씨엔아이(BBB) 등의 경우 높은 금리에도 불구하고 미매각이 발생했다. 한화는 회사채 2000억원이 수요예측 조사에서 전량 미달을 기록했다. 지난달 25일 한화는 2000억원 규모로 5월3일 발행 예정된 3년 만기 회사채에 대해 기관투자가들을 상대로 수요예측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접수된 수요 물량은 '0'였다. 이는 시장의 기대보다 낮은 금리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화는 희망금리 범위로 '3년물 국고채 금리+0.53~0.63%포인트'를 제시했지만, 상단 금리로 낙찰받는다고 해도 한화의 개별 민평금리(민간기관이 평가한 금리)보다 낮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현 시점에서는 회사채를 고를 때 '등급'보다는 '종목별 접근'이 더욱 중요해진 상태다. 최근의 수요예측 결과를 살펴봐도 풍산(A), 대성전기(BBB+) 등은 상대적 안정성을 인정받아 각각 3.3대 1, 4.5대 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하며 발행에 성공한 사례들도 있기 때문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7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