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대표하는 전통 탕반, 설렁탕이 사라지고 있다

◇ 우리의 식생활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는 설렁탕
질문은 문제의식의 출발점이자 생각의 실마리다. 필자는 일상적으로 외식업 관련 질문을 자주 하는 편이다. 주변 지인과 만나는 사람들에게 최근 가끔 던지는 질문이 있다. 

올해 들어서 설렁탕을 먹어본 적이 있느냐고? 대부분 거의 설렁탕을 먹어본 적이 없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또 질문을 던진다. 그러면 순댓국은? 거의 대부분 최근 먹어봤다는 대답이다. 순댓국은 고객이 반복적으로 구매를 하는 상시적인 음식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고향이 서울인 필자는 어렸을 때 설렁탕, 곰탕 등 곰국을 자주 먹고 성장했다. 서울 사람은 타 지방보다 곰국을 선호한다. 곰국은 보양식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사골을 끓여서 진국으로 먹었고 여러 번 재탕도 했다. 그렇게 먹고 또 먹어도 전혀 질리지 않았다. 그런 곰탕, 설렁탕이 어느 덧 우리 주변에서 사라지고 있다.


한우 생산 전문가와 농협 등에 따르면 한우 부산물인 사골과 뼈 등이 엄청 남아돈다고 한다. 가격도 수입산과 거의 차이가 없지만 처치곤란일 지경이라고 한다. 이쯤 되고 보면 아주 심각한 현상이다. 그러나 찬찬히 따져보면 당연한 귀결이기도 하다.

우선 집에서 사골 등을 끓여서 먹는 일이 급격히 줄었다. 우리 집도 전에는 월례행사처럼 소뼈를 푹 고아서 먹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곰국 고는 냄새가 집안에서 사라졌다. 구수한 국물에 김치와 깍두기를 곁들여서 먹으면 참 맛깔스러운 먹을거리였는데…. 

명절에 들어온 선물용 우족은 몇 달 째 냉장고에 처박혀있다. 아내는 이 좋은 재료로 음식 만들 생각을 거의 하지 않는다. 역시 세상이 변한 것이다.


◇ 식당에서 판매하는 설렁탕 대부분은 수입 식재료 활용
더 중요한 것은 시중에 있는 설렁탕 전문점이나 체인점 등이 대부분 수입 소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몇 해 전 유명 설렁탕집이 속여서 팔다가 패가망신했고 얼마 전 서울 종로의 유명 한우 설렁탕집도 수입산을 팔아 자기 브랜드에 먹칠을 했다. 또 어느 유명 도가니탕 체인점도 얼마 전 구설에 오른 적이 있다.

다른 것은 몰라도 탕반 음식에서 한우나 국내산으로 끓인 것과 수입산으로 끓인 것과는 사실상 맛과 품질 차이가 현격하다. 그리고 유통기간도 중요하다. 당연히 수입품도 쓸 수 있지만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것이 남아서 처치곤란이라는 점이다.

얼마 전 수원 유명 갈비명장이 운영하는 음식점에서 갈비탕(수입산)과 한우탕(한우)를 각기 주문해서 먹어봤다. 그런데 국물 맛 차이가 생각보다 엄청나게 컸다. 평소에도 인지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까지일 줄은 몰랐다.

한우 뼈와 고기로 끓인 국물은 입안에 쩍쩍 붙고 당기는 느낌을 준다. 이 식당은 수입산 갈비탕도 제법 국물을 잘 내는 곳이다. 그런데 한우 갈비 작업을 하고 남은 부위로 끓인 한우탕과 수입 갈비탕의 맛 차이는 현격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체인점 설렁탕은 거의 구매하지 않는다. 외식업도 이제는 시스템 사업이지만 유명 체인점 수입 설렁탕은 이 중년남자의 입맛에는 별로인 것이다. 어렸을 때 먹었던 추억의 맛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탕반 음식의 주요 고객인 중년층의 선호도와 맞을지도 의문이 생긴다.

요즘엔 그런 설렁탕마저도 시중에서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전국에 압도적으로 순댓국집이 득세를 하고 있다. 여기에는 설렁탕과 순댓국의 1000원~2000원 가격 차이도 주요한 구실을 한다. 불경기인 만큼 소비자가 음식 구매비용에도 아주 예민할 수밖에 없다.


또 순댓국은 설렁탕에 비해 고명을 푸짐하게 제공할 수 있는 강점이 있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아는 모 설렁탕집은 1000원을 올리고 수입산에서 한우로 바꾸었다. 그리고 소머리와 우설 등 부산물을 더 활용하는 지혜를 도입했다. 점점 고객반응이 좋아지고 있다고 한다. 

상당히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과감하게 한우와 한우 부산물을 선택했다. 아직 매출 증가세는 미미하지만 고객들은 분명히 환호한다고 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 탕반, 설렁탕이 사라지고 있다

◇ 한우설렁탕 키워드로 소비자에게 제대로 어필할 수 있어
몇 해 전 유명 설렁탕 업주인 지인과 이야기를 하다 반농담 삼아 ‘농협에 한우설렁탕 전문점 사업을 제안해보겠다’고 이야기를 던진 적이 있다. 그런데 그 분은 그런 의견을 제시하지 말라고 했다. 

아마 그것은 본인이 운영하는 한우설렁탕의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서울에서 한우설렁탕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곳이 거의 드물다는 점을 최대한 유지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심각하다. 한국을 대표하는 탕반음식, 설렁탕이 점차적으로 사라져간다. 우선 한국인이 설렁탕을 구매하는 비중이 현저하게 낮아지고 있다. 설렁탕을 꽤 선호하는 필자도 설렁탕은 어쩌다 먹는 음식으로 점차 밀려나고 있다. 한 달에 3~4번 이상 먹었던 설렁탕이 연간 3~4번으로 구매빈도가 현격히 줄었다. 

필자가 근무하는 사무실 인근에 먹을 만한 설렁탕집이 없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설렁탕 본고장인 서울에 필자가 아는 정보로는 설렁탕을 일정 수준 이상의 상품으로 만들 수 있는 곳이 그다지 많지 않다.

주지하다시피 설렁탕은 과거 한국을 대표하는 탕반음식 1순위였다. 한국을 대표하는 먹을거리가 김치라면 한국을 대표하는 탕반은 설렁탕이었다. 

1960년~ 1970년대에는 설렁탕은 짜장면과 더불어 서민물가 기준의 바로미터였다. 설렁탕은 한식탕반(韓食湯飯)의 대표 1순위였다. 그것은 설렁탕의 역사성과 더불어 당시 소비자의 외식탕반 구매는 압도적으로 설렁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설렁탕이 이제는 우리 주변에서 점점 사리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식 육류 먹을거리의 대표주자인 불고기가 이름만 있고 실체가 없는 음식으로 전락했듯이 설렁탕도 그런 방향으로 점차 가고 있다.(물론 불고기도 최근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있지만)
얼마 전 우리 회사 20대 젊은 직원이 수도권의 유명 부대찌개집을 순회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젊은 직원의 입맛에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은 곳은 한우 뼈를 기본으로 낸 경기도 남부의 모 부대찌개와 인천의 고깃집 화미소금구이 부대찌개였다. 두 곳 다 한우사골이나 잡뼈를 사용했다. 젊은 세대도 한우 뼈로 국물을 낸 양질의 구수한 맛에 점수를 준 것이다.

중년층을 비롯한 구매력 있는 소비자나 젊은 세대에게 설렁탕 소비에 대한 숨은 니즈가 분명히 잠재해 있다. 단 한우(韓牛)란 단어가 들어간 설렁탕이다. ‘한우설렁탕’.

그리고 외식업소에서는 7000~9000원 정도의 합리적인 가격 책정이 관건이다. 정부 차원에서도 한우설렁탕과 곰탕 등을 외식현장과 창업시장에서 육성하는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허울뿐인 한식세계화보다는 식문화의 흐름과 현장을 통찰력 있게 파고드는 혜안(慧眼)을 지닌 전문가가 정책을 주도해야 한다. 

한우 부산물에 대한 정부와 농협, 기타 유관 단체의 대처는 그저 별 무대책이다. 수해 전부터 부산물이 남아돈다는 이야기만 하고 거기에 어떤 실천적인 의지도 대안도 보이지 않는다. 말로만 걱정을 하는 공염불이다. 

필자는 분명히 해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우 부산물을 사용한 상품과 아이템 개발은 무궁무진하다. 위 사례에서 보듯이 설렁탕, 곰탕이 아닌 한우탕도 있고 한우토장국도 있고 부대찌개와 칼국수, 냉면, 막국수 등에서 한우 뼈는 아주 매력적인 식재료다.

소비자와 한우 생산 농가, 그리고 한식의 전통적 계승을 위해서 이제는 현실성과 안목이 있는 실천적 대책이 꼭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