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를 자르는 남자, 고기를 굽는 여자 ‘그들이 사는 세상’
강동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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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식업소에서 홀과 주방은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는 분모라고 한다. 평생 하얀 조리복을 입고 ‘내’ 요리에 자존심 하나 걸고 살아온 주방장과, 직접 손님을 상대하고 외식시장의 흐름을 현실적으로 읽어내는 홀 직원의 생각과 가치는 다를 수밖에. 심지어 주방장과 홀 직원 간의 사이가 좋은 음식점은 절반 이상 성공한 것과 다름없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돼지 특수부위 가브리살을 주력으로 판매하는 <구이랑>은 그 둘의 완벽한 조화를 콘셉트로 내세웠다. 고기를 자르는 남자와 고기를 굽는 여자, 박성균 사장과 박서연 점장이다. 그들은 서로 엉키고 부대끼는 과정을 통해 그렇게 편이 되고 닮아가며 성장하고 원숙해지고 있다.
◇ 능숙한 칼잡이 점주와 사람 마음을 읽는 친구 같은 점장
경기도 김포시의 <구이랑>은 지금까지 봤던 고깃집과 콘셉트나 느낌이 조금 다르다. 대중성이 짙은 삼겹살과 목살로 안전하게 창업시장을 두드리기보다 확실한 차별화를 선언했다. 돼지의 특수부위에 해당하는 가브리살을 구이메뉴로 전격 내세운 것.
가브리살은 육류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등심덧살’이라고도 불린다. 돼지 한 마리당 적게는 200g, 많으면 400g 정도를 웃돌 만큼의 소량만 나와 나름 희소가치가 있는 부위다.
삼겹살처럼 적당한 비율의 지방과 살코기로 이루어져 있지만 식감이나 풍미는 조금 다르다. 쫄깃하게 씹히는 맛이 좋다. 씹을수록 고소한 육즙과 육질의 부드러움을 입안에서 맛볼 수 있다. 아주 오래 전 도축업자들은 이 부위를 판매하지 않고 따로 빼내 작업실 뒤편에서 매일 구워먹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만큼 맛있는 부위다.
가브리살전문의 <구이랑>은 인천의 한우고기전문점 <태백산>과 참숯직화돼지구잇집인 <가연생고기>를 동시 운영 중인 이동복 대표의 또 다른 작품이다. <구이랑>의 박성균 사장과 박서연 점장도 이 대표의 오랜 인연을 통해 연이 닿았다.
박 사장은 16년 간 고기 작업만 해온 능숙한 육부전문가다. <태박산>에서 제법 오랜 시간 고기 모양을 잡아왔고 직접 운영하기도 했다. 홀 관리 담당인 박서연 점장도 홀 관리경력만 10년이 훌쩍 넘는다.
충북 청주에서 15년간 수공예 강사로 일을 하다가 우연히 친구 따라 인천으로 올라와 외식업에 발을 들이게 됐다. 새로운 경험과 도전에 대한 목마름 때문도 있었지만 ‘맛난 음식’을 두고 사람과 소통하는 일이 그렇게 매력적일 수가 없었기 때문.
각자의 분야에서 ‘노련함’과 ‘원숙미’가 제대로 묻어날 때까지 시간과 경험을 쌓다 <구이랑> 오픈과 동시에 만나게 된 것. ‘고기를 자르는 남자와 고기를 굽는 여자’라는 업소의 캐치프레이즈 역시 이 두 사람의 조화를 통한 휴머니즘과 스토리텔링을 구현하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다.
◇ 고기를 굽는 일보다 중요한 건 손님 마음을 맛나게 굽는 일
강사로 오랜 시간 일을 해서 그런지 박서연 점장에게 손님을 상대하는 일은 천직처럼 잘 맞는다. 일보단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이 재미있다. 원체 낯을 가리지 않는, 소탈하고 꾸밈없는 천성 탓도 있겠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들과 공감하고 소통하는 일은 그에게 아주 소중한 경험이고 자산이다.
<가연생고기>의 오픈과 동시에 팀장 자리에서 매장을 돌봤던 2012년. 참숯불에 2.5센티미터의 두꺼운 돼지고기를 직화 방식으로 구워먹는 콘셉트가 어쩌면 현재 고객과 소통하는 그의 모습을 만들어낸 것인지도 모른다.
오픈 초창기 모든 홀 직원이 각 테이블에 배치돼 고기를 직접 구워주는데(고기 두께도 두꺼운 데다 참숯불이라 화력까지 세서 직원이 직접 맛있게 구워주는 게 메인 콘셉트였다) 대부분의 손님들이 생소하고 낯설어 하는 것이다. 고가의 소고기전문점에서나 볼 법한 서비스를 돼지고깃집에서 하고 있으니 더러는 부담스러워 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박 점장은 “고기를 굽지 않으면 제가 이 매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맛있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라고 웃으며 말을 했다. 그제서야 손님들은 미안해하며 그가 노릇하게 구운 고기를 한두 점씩 맛보며 마음을 열었다.
단골이었던 한 커플은 결혼 후 아이까지 낳아 박 점장을 보기 위해 매장을 다시 찾기도 했고 ‘돼지참숯구이 맛이 그리워 3시간을 달려 왔다’는 타지 손님도 박 점장 앞에서는 으레 자신들의 사는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소주잔을 비우기도 했다.
고기를 굽는 일에 매진하며 그가 느낀 건 고기보다 손님의 마음을 맛있게, 노릇하게 굽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 손님의 기분과 마음을 읽고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는 것, 소통하고 공감하고 그렇게 사랑 속에서 일을 해나가는 것.
◇ 고기 자르는 남자, 고기 굽는 여자의 숙명은?
반면 ‘완벽한 칼잡이’ 박성균 사장은 고기 작업을 할 때처럼 매사에 정교하고 디테일한 편이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보다 작품의 완성도에 집중하며 살아온 시간이 길었기 때문에 그는 결과물의 퀄리티를 만들어내는 일에 ‘묵묵하게’ 올인하는 편이다.
여느 조리장이나 육부장들의 특성대로 자신의 음식 내공만큼 자부심과 자존심도 세다. 우직하게 한 길을 걸어온 만큼 고집도 있다. 그렇다 보니 박 점장과 호흡을 맞추면서 사실 크고 작은 마찰이나 불협화음도 생겼다. 어느 음식점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주방과 홀의 불필요한 경계선에서 그들도 자유롭지 못했던 것.
“오랜 시간 각자 다른 분야에서 몸담았기 때문에 생각하는 부분이나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가치의 기준들이 조금씩 달랐어요. 더구나 박 점장님과 저는 둘 다 성격이 센 편이기 때문에 서로의 기준을 꺾는 일이 쉽지 않았고요.”
그러나 이 역시도 사람의 일이라, 시간이 충분히 지나고 계속해서 대화를 해나가다 보니 마음을 트게 되고 각자의 사고에 대해 시각을 열 수 있었다. 이해나 관용, 배려 그러한 마음의 여유가 가능해졌다. 그리고 받아들였다. 다시없을 소중한 파트너, 또는 친구.
박 점장에세도 박성균 사장은 의미가 깊은 동료다. 앞으로 함께 이뤄나가야 할 것들이 무궁무진하다. 배가 되면 나누고 부족하면 채우는 일에 서로 손발을 맞춰야 하니 서로의 마음과 생각을 들여다 보는 일에 집중할 필요성을 느끼는 것이다.
“가끔 우리는 느낍니다. 무엇을 하느냐 보다는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많이 달라진다는 것을요. 아옹다옹하며 서로 부대끼고 엉키면서도 그렇게 편이 되고 닮아가며 상대를 통해 성장하고 원숙해지는 것, 그러한 것이 삶의 과정 혹은 그 자체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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