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터=임종철
일러스트레이터=임종철

총수 수난시대에 '신문지 회장' 등장… '엉큼한 회장'도 지탄

요즘은 재벌 총수들의 수난시대다. 불법행위로 법의 심판대에 올려지거나 경영악화로 그룹 수장에서 낙마한 사례까지 어림잡아 10여명의 '회장님'들이 고초를 겪고 있다.

SK그룹의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부회장은 수백억원 횡령혐의로 기소돼 최근 나란히 실형을 선고받았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도 2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뒤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돼 다시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과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은 횡령, 배임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가 나란히 수술을 이유로 구속집행이 정지됐고 구자원 LIG그룹 회장은 편법적인 기업어음(CP) 발행으로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뒤 법정구속됐다.

기업의 자금난 등으로 '회장님'의 지위를 위협받는 사례도 속출했다. 샐러리맨 신화를 낳았던 강덕수 STX그룹 회장과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은 무리한 사업확장이 화가 돼 지금은 '실패한 경영자'로 낙인 찍혔다.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역시 자금난으로 '바람 앞의 등불' 처지.
 
◆"왜 안돼?" 말보다 주먹 앞서는 회장님

이외에도 회장님의 굴욕시대는 계속되고 있다. 그래도 위의 사례들은 '기업경영'이라는 재벌 총수의 역할범위 내에서 벌어진 일이라 그나마 '공식적인 굴욕'에 속하는 편이다. 문제는 '갑의 횡포'로 대변되는 회장님들의 부도덕한 개인 처신에 대한 사례가 전 국민적인 반감을 키운다는 데 있다.

아웃도어업계의 '다크호스'로 통하며 매년 50%씩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블랙야크. 이 회사의 강태선 회장(64)이 최근 여론의 뭇매를 맞은 대표적인 '회장님'이다.

강 회장은 지난 9월27일 전남 여수에서 열린 슈퍼모델 선발대회에 심사위원으로 참석하기 위해 김포공항을 찾았지만 여수행 아시아나 항공기가 출발하기 불과 1분 전에야 탑승구에 도착했다. 항공사 직원들이 탑승이 어렵다며 강 회장 일행을 막자 그는 들고 있던 신문지로 항공사 직원을 때려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강 회장은 '신문지 회장'이라는 오명을 쓰며 네티즌들의 집단 비난에 직면했고 급기야 사흘 뒤인 30일 공식 성명서를 내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그러나 강 회장의 폭행 논란은 그가 사건 바로 전날 본인의 이름을 내세운 사회공헌재단 '강태선 나눔·장학재단'을 출범하면서 2015년까지 100억원의 기금을 조성하겠다고 밝힌 탓에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특히 그는 지난해 통일기반을 조성하고 자연보호활동에 공헌한 점을 인정받아 국민훈장 모란장까지 수상했다. 이중적인 강 회장의 모습에 네티즌들은 블랙야크의 로고를 연계시켜 그를 '두 얼굴의 회장님'이라며 비아냥거리고 있다.

강 회장 이전에는 '빵 회장'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KTX에 경주빵과 호두과자 등을 납품하는 프라임베이커리의 강태수 회장이 장본인인데, 지난 4월 그는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호텔 종업원을 폭행해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당시 강 회장은 주정차 시간이 길어진 것에 화가 나 호텔 지배인 박모씨를 지갑으로 때리며 막말을 퍼부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이 알려진 직후 네티즌들 사이에 프라임베이커리에 대한 불매운동이 벌어졌고 KTX도 납품계약을 해지하자 강 회장은 회사를 자진 폐업해 또 한번 논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강 회장은 지난 8월26일 문제가 된 롯데호텔 앞에서 스스로 1인 시위를 벌이며 자신의 개인정보를 유출한 롯데호텔 직원을 해임하라고 주장해 이목을 끌었다.

사실 '회장님의 폭행' 사건은 이전에도 여러번 발생해 문제가 돼왔다.
 
2011년 조직폭력배에게 3억원을 건네고 임원 청부폭행을 지시한 이윤재 피존회장이 대표적인데 그는 결국 징역 10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됐다. 해당 임원이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는 게 이 회장의 폭행 동기였다.

'맷값 폭행'으로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SK가(家)의 최철원 M&M 전 대표 역시 손꼽히는 갑의 횡포 사례 중 하나다.

최씨는 2010년 10월 회사 인수합병 과정에서 고용승계를 해주지 않는다며 SK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한 탱크로리 기사 유모씨를 회사 사무실로 불러 야구방망이와 주먹으로 폭행한 뒤 2000만원을 준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돼 1심에서는 징역 1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다음해 열린 2심에서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석방되자 또  다시 네티즌의 공분을 샀다.
 
◆'갑 지위' 내세운 여직원 성추행도 비일비재

폭행도 문제지만 성추행 사건이 간간이 발생하고 있는 점도 '회장님'이 사회적인 지탄의 대상이 되는 부분이다.

'줄기세포의 신화'로 추앙받던 라정찬 알앤엘바이오 회장(50)은 지난 6월 일본지사에 처조카 A씨(37)를 취직시켜준 뒤 일본에서 2010년 4~8월 10여 차례에 걸쳐 성추행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았다. A씨는 일본지사에서 일하던 중 라 회장의 성추행이 멈추지 않자 지난해 말 회사를 떠난 뒤 올해 초 그를 고소했다.

이후 라 회장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또 다른 여성이 경찰에서 참고인 진술을 해 라 회장을 더욱 곤혹스럽게 했다. 게다가 라 회장은 경찰의 수사를 받는 도중 A씨를 찾아가 억대의 돈을 제시하며 고소취하를 종용해 수위 높은 비난을 받았다.

전국에 100여개의 프랜차이즈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유디치과의 김종훈 회장 역시 지난 2009년 12월 미국에서 성추행 사건에 휘말려 송사를 겪은 적이 있다. 전직 종업원인 L씨가 소장에서 김 회장이 성적 유발을 암시하는 대화를 수시로 했으며 자신의 가슴과 엉덩이를 수차례 만졌다고 주장한 것이다. L씨는 2009년 2월과 3월 사이 김 회장에 의해 성폭행 당했으며 그로 인해 임신을 해 2009년 12월 딸을 출산했다고도 피력했다. 그러나 L씨는 올해 2월 관련 소를 취하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외에 지난 6월 유명 혼수이불업체 B 회장도 여직원 2명과 친척을 성추행한 혐의로 고소돼 검찰 조사를 받았다. 피해자들은 고소장에서 B씨가 올해 초 개인사무실과 회식 자리에서 가슴을 만지거나 볼에 입술을 갖다 대는 등 성추행했다고 주장했으나 B씨는 경찰 조사에서 관련 혐의 일체를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기업 회장은 늘 서민들의 시기와 질투, 혹은 관심의 대상이 되는 자리다. 가뜩이나 '갑의 횡포'에 대해 전 국민적으로 민감해하는 현 상황에서 대한민국 기업의 '회장님'들은 그 어느 때보다 개인적인 처신을 조심해야 할 때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0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