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류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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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는 학생이 성공하는 시대"
엉뚱한 방향으로 조합하는 사고가 중요… 인문학적 시각도 필요

'공부해라→평생 월급쟁이로 살아라', '한 우물을 파라→굶어 죽어라', '외환위기(IMF)=하늘이 내린 축복'.

'국민역사 교과서'로 통하는 <먼 나라 이웃 나라>의 저자 이원복 덕성여대 석좌교수(67)의 표현이다. 기존 고리타분한 역사서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린 주인공답게, 환갑을 훌쩍 넘긴 노(老)교수의 사고는 정형화된 틀에 얽매여 있지 않았다. <머니위크>가 선정한 창조인재 25인에 당당하게 그의 이름이 오를 수 있었던 이유다.
 
◆ 외국인에 한국을 알리는 입문서…신한류 확산에 한몫

지난 봄, 35년간 구상과 집필을 이어온 <먼 나라 이웃 나라>의 마지막 15편인 에스파냐 편을 펴낸 그는 완간의 기쁨을 누리기도 전에 또 다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먼 나라 이웃 나라-우리나라(한국)편>을 전세계 6개 언어로 번역, 출판하는 글로벌 프로젝트다. 글로벌 시각과 한국 학습만화의 강점을 융합해 신한류 확산에 나서는 것. 이러한 그의 글로벌 프로젝트는 창조경제의 실천적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그는 이러한 글로벌 프로젝트의 의의에 대해 "한국을 알고 싶어하는 외국인을 위해 작은 물꼬를 터주고자 하는 시도"라고 설명했다. 한국국제교류문화재단과 김영사가 손잡고 <먼 나라 이웃 나라-우리나라 편>을 6개 언어로 펴내, 해외 출판사들이 비싼 번역비용을 들이지않고도 손쉽게 수입해서 소개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해외에는 학습만화라는 시장이 없습니다. 기존 시장이 없다보니 현지 출판사들이 개별적으로 번역비용을 들여 출간하는 것에 확신을 갖기 어려웠어요. 이처럼 외국에서 한국문화에 관심을 보임에도 받아들일 여건이 되지 않는다면 그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도 창조적인 발상이라고 할 수 있죠."

<먼 나라 이웃 나라- 우리나라 편>의 영어판은 이미 지난 2002년 출간돼 영어권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알리는 입문서로 널리 활용돼왔다. 이번에 순차적으로 출간되는 6개 언어판은 프랑스어를 비롯해 중국어·스페인어·독일어·러시아어·인도네시아어 등이다.

"책 내용은 국내 편과 번역판이 똑같아요. 한국의 역사와 현주소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경제기적'을 일으킨 한국인의 의식구조를 한·중·일 간 비교를 통해 정리했죠."

그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선진국 국민이라는 걸 체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실제 <먼 나라 이웃 나라>를 구상하던 30여년 전에는 개발도상국에 불과하던 우리나라가 어느덧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열었고 G20(주요 20개국)에 속하는 위상을 자랑하고 있지 않냐는 것이다.

"한때 외환위기(IMF)로 인한 시련을 겪었지만 이 또한 하늘이 내린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이를 겪지 않은 일본이 20~30년간 깊은 침체에 빠진데 반해 우리는 혹독한 체질 개선 기회를 가졌잖아요. 아니면 우리도 냄비 안의 개구리처럼 위기를 못 느끼고 서서히 삶아졌을 겁니다."

사진=류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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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 3~4모작 시대, 인문학적 소양 생존비결

이 교수는 최근 대한민국이 앓는 있는 고속성장의 후유증과 성장 정체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창조적 사고를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창조경제는 우스갯소리로 '세계 제8대 불가사의'라고도 불리죠. 그동안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내야 하니까.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지식이 아니라, 엉뚱한 방향으로 조합하고 융합하는 사고가 중요합니다."

어떻게 보면 '뜬 구름' 같은 창조경제의 모델로 그는 1990년대 삼성그룹 사례를 꼽았다.

"1990년대 이건희 회장은 삼성전자 임직원들에게 패션쇼를 보러 다니라고 했습니다. 전자와 패션은 연관성이 없어보이지만 머지않아 기술수준이 비슷해지면 이후엔 디자인 경쟁으로 치달을 것을 예견했던 거죠."

미래의 자라나는 세대들에게도 "판박이식 공부에 목매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는 "부모 역시 자녀에게 '공부해라, 공부해라' 하는 것은 평생 남의 밑에서
 월급쟁이로 살라는 말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충고했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입시교육에만 몰두하지말고 삶을 장기적인 관점으로 바라볼 것을 당부했다. 그는 "공부는 잘 못하더라도 리더십이 있는 아이, 현실을 아는 아이들이 미래를 이끌어갈 것"이라며 "공부 잘 하는 학생보다 튀는 학생이 성공하는 시대"라고 강조했다.

'한 우물을 파라'던 격언도 지금과 같이 격변하는 시대에선 빛이 바랬다. 100세 시대에는 수명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는 '인생 2모작 시대'가 아니라 '3~4모작은 기본인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내다봤다. 평생 직장의 개념이 사라졌을 뿐 아니라 새로운 직종의 부상과 소멸 등이 20~30년 단위에서 3~5년 주기로 급격히 짧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창조적 사고를 키워 급변하는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는 인간의 근본을 들여다 볼 것을 얘기했다. 그가 말하는 변하지 않는 경쟁력의 원천은 인문학이다.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인간은 변하지 않아요. 기본 전공에다 인문학적 시각을 접목하면 환경이 바뀌어도 적응할 수 있습니다."

선진국일수록 역사를 중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나의 뿌리도 모르면서 어떻게 세계인이 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세계화할수록 자기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것이 차별화의 키워드라는 것.

"우리의 역사를 알고 세계의 역사를 익히면 급변하는 물살 속에서도 흐름을 잡을 수 있어요. 세계는 아는 만큼 보입니다.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는 창조경제도 그 단순한 원칙부터 접근하는 것이 해법이 될 수 있습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0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