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유혹' CP, 왜 말썽인가
'투자 초딩' 울린 '문방구 어음'
유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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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15 | 10:2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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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터 임종철 |
동양그룹의 주요 계열사들이 법정관리를 신청한 가운데 동양그룹이 동양증권을 통해 대규모의 기업어음(CP)을 판매한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9일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는 동양증권 CP와 회사채에 투자한 2000여명의 개인투자자들이 모여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들이 집단행동에 나선 것은 자신들이 투자한 회사채와 CP가 동양그룹 주요 계열사의 법정관리 신청으로 손실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이전 웅진그룹이나 LIG건설 때도 CP가 문제였다. 도대체 CP가 뭐기에 계속해서 팔려나가며, 왜 문제가 생겼다 하면 CP인 걸까.
◆ CP, 단기자금조달 목적으로 도입
기업어음이란 기업이 자금조달을 목적으로 발행하는 무담보 어음이다. 상거래 없이 순수하게 단기자금을 빌리기 위해 발행되는 융통어음으로, 증권사 등이 인수해 이를 나눠 개인투자자들에게 판매한다. 선이자를 떼고 발행되며 만기 전에 할인해서 파는 것도 가능하다.
국내에는 지난 1981년 기업들의 단기자금조달을 쉽게 하기 위해 도입됐다. 회사채와는 달리 어음법으로 발행할 수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발행조건이 간소하다.
회사채의 경우 증권사가 주요 소비자인 기관들을 대상으로 수요 예측을 해 발행한다. 그러나 CP는 수요예측 과정 없이 발행기업과 증권사가 시장상황을 고려해 금리를 정한다. 기업에서 원하면 이사회 의결도 없이 대표이사의 직권으로 바로 발행할 수 있어 그만큼 자금을 손쉽게 끌어들일 수 있다.
일반적으로 CP는 1년 미만의 기간으로 발행되는 상품이다. 그러나 지난 2009년 자본시장법의 도입으로 발행만기 제한이 폐지돼 1년 이상 장기CP의 발행도 가능해졌다.
이렇다보니 CP의 발행은 매년 급증세다. 전체 CP 발행 잔액은 2008년 말 68조8042억원에서 올 9월 말 현재 143조9217억원으로 4년9개월 만에 109.2% 증가한 것으로 집계된다.
◆ 잘 팔리는 이유는 '고금리'
CP가 시장에서 잘 팔리는 이유 중 하나는 '고금리'이기 때문이다. 회사채의 경우 등급에 따라 금리가 사실상 결정되지만, CP는 기업이 자체적으로 '신용'으로 발행하는 상품이다 보니 자금이 급한 회사나 중소기업은 금리를 높여 발행할 수밖에 없다.
금융투자협회에서 CP금리를 매일 두차례 고지하지만 이는 메리츠종금증권, 삼성증권, 아이엠투자증권, 현대증권, KTB투자증권, SK증권, 신한은행, 외환은행이 금융투자협회에 제공하는 금리 가운데 최고금리와 최저금리를 제외한 6개 회사의 금리 평균을 고지하는 최종호가수익률일 뿐이다.
실제로 시중에서 판매되는 CP의 경우 금리가 매우 높은 경우가 많다. 이번에 문제가 된 동양그룹의 경우 은행대출은 어렵고, 회사채 발행도 어려워지자 결국 7~9%대의 금리를 주는 CP를 발행했다. 금리만 놓고 보면 정기예금의 몇배에 달한다.
물론 고금리의 CP를 내놓는다는 것은 그만큼 기업들이 어렵다는 증거다. 실제로 IMF 직후인 1997년 12월 CP금리는 40%까지 치솟았던 사례가 있으며, 지난 2008년 11월 금융위기 시절에도 7%대로 급등했던 적이 있다.
◆ LIG·웅진·동양, 연이은 논란
최근 들어 CP와 관련된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9월13일 기업회생 신청 계획을 알리지 않은 채 기업어음을 발행해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입힌 혐의로 구자원 LIG그룹 회장에게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지난 2010년 말 LIG건설은 법정관리에 들어가기 전 재무제표를 허위로 작성하고 1874억원어치의 CP를 발행했다. 이로 인해 8000여명의 투자자가 3457억원의 피해를 봤으며, 개인투자자의 피해규모는 2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샐러리맨의 신화였던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 역시 1200억원대의 사기성 CP 발행으로 지난 7월 말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최근 불거진 동양그룹 사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김익상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에 따르면 동양그룹 5개사의 금융상품별 미상환 잔액은 회사채가 1조1211억원이며, CP가 8382억원, 전자단기사채 4708억원(AB 전단채 1569억원 포함) 등으로 집계됐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현재 ㈜동양, 동양인터내셔널, 동양레저 등 3개 계열사가 동양증권을 통해 판매한 회사채와 CP 중 전체 물량의 99%인 1조2294억원어치가 개인에게 팔렸다. 그룹이 법정관리에 들어가자 채권단이 아니라 피해자 모임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이유다.
CP가 문방구에서 파는 어음증서를 사용해 도장을 찍는 '문방구 어음'과 다를 바 없다는 혹평까지 나오고 있다.
◆ 관건은 '불완전 판매'
CP 발행과 관련해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지적되는 것이 '불완전 판매'다. 금융투자 상품의 불완전 판매란 소비자가 상품내용과 위험도 등에 대해 제대로 듣지 못한 상태에서 계약한 것을 말한다.
사실 투자자들이 불완전 판매를 입증하기는 쉽지 않다. 형식적으로라도 신탁상품 등의 상품설명서에 본인이 직접 서명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대체로 이러한 설명서에는 고위험 상품이며 회사가 현재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언급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불완전 판매를 주장하는 투자자들은 이것이 불완전한 수준이 아니라 '사기'라고 주장한다. 서명할 당시에는 공백 상태였던 부분이 나중에 상품설명 내용으로 대체돼 있는 식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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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금융민원센터에 마련된 동양그룹 관련 금융상품 불완전판매 신고센터를 찾은 투자자들이 상담을 받고 있다. 사진=뉴스1 박지혜 기자 |
동양 채권 CP 피해자모임 등의 카페에는 심지어 계약서든 뭐든 본적도 없다거나, 지점에 가서 서류를 요청했더니 계약할 때는 보지도 못한 상세한 투자설명서에 자신의 이름과 사인이 있다거나, 오래 거래한 직원이 수령거부라고 쓰라고 해서 썼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사례도 있다.
지난해 9월 이미 동양증권은 계열사 CP를 판매하는 과정에서 서면 동의를 받지 않는 등 불건전 영업행위를 한 혐의가 드러나 금융감독원으로부터 기관경고조치를 받은 적이 있다. 당시 과태료 5000만원이 부과됐으며, 관련 임직원에 대한 징계조치도 함께 내려졌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동양 CP건의 경우 모든 동의서에 자필서명이 있는 만큼 투자자들이 현재 서류만 가지고 불완전판매를 입증하는 것은 힘들 전망이다. 다만 이전 사례가 있는데다 이번에도 불완전판매가 있을 수 있는 만큼 당국은 이와 관련한 조사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 금융당국 'CP문제' 인지 논란
그렇다면 당국은 동양그룹의 문제를 몰랐을까? 최근 이로 인해 당국의 동양그룹 CP문제 인지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 상태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민주당 김기식 의원이 금감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금감원과 동양증권은 지난 2009년 5월 동양증권의 계열사 CP 보유규모 감축 및 투자자 보호조치 등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당시 체결한 양해각서에는 2008년 10월16일 기준 7265억원 상당이던 계열사 CP 잔액을 2011년 말까지 4765억원으로, 2500억원 감축한다는 내용을 담겨 있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동양증권은 3개월마다 CP감축 이행 현황을 금감원에 보고하도록 되어 있었다. 사실상 당국도 이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민주당 김영환 의원은 지난 10일 "금융위의 안일한 시장 상황 판단이 동양사태의 피해를 키웠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지난해 10월에도 시장은 동양증권의 계열사CP 불건전영업행위, 우리투자증권의 LIG건설의 CP불완전판매 등으로 규정개정이 시급했다"며 "그러나 금융위는 보통 한두달 정도가 필요한 규정개정안 심사와 고시에 4개월 이상의 시간을 보내는 등 시장 상황을 안일하게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는 "규정 개정에 왜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렸고 실제 어떤 논의가 있었기에 유예기간을 대폭 늘리는 것으로 변경됐는지 이 과정에서 이해관계자들과 유착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0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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