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식 R&D' 주목해야 하는 이유
왜 혁신적 R&D인가
김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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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4 | 19: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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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기업이 애플식 R&D를 이루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기술지상주의적인 사고방식을 버리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사진=뉴스1) |
'9년 연속 보스턴컨설팅그룹 선정, 혁신기업 1위', '부즈앤컴퍼니 선정, 10대 혁신기업 4년 연속 1위'.
세계적인 경영컨설팅업체들이 인정한 대표적인 글로벌 혁신기업 애플의 현주소다. 이 기업을 혁신의 대명사로 만든 것은 혁신적 연구개발(R&D)이다. 애플의 지난 한해 R&D 비용은 34억달러(3조8000억원). 10년만에 처음으로 순이익이 줄어들었던 올해 1분기에도 지난해 동기대비 41% 증가한 11억9000만달러(1조3077억원)를 R&D에 썼다.
특히 애플은 '최초'나 '발명'이라는 타이틀에 집착해 '무조건 만들어내기'식의 R&D가 아닌 기존에 발명된 기술을 개선해 전혀 새로운 제품을 내놓는 '혁신적 R&D'에 투자했고, 이를 통해 혁신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제는 한국기업이 전세계 시장을 리드하는 기업으로 발전하기 위해 '애플식 R&D', 즉 혁신적 R&D를 벤치마킹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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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에 위치한 삼성전자 유럽 디자인 연구소(사진제공=삼성전자) |
◆'애플식 R&D', 발명 아닌 혁신에 방점
애플식 R&D의 방점은 발명이 아닌 혁신에 찍혀있다. 최초로 개발했지만 주류가 되지 못한 남의 발명품이 애플로 오면 소위 '대박'이 난다. 애플 리사 컴퓨터와 후속작 매킨토시(맥)의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raphic User Interface:GUI), 그리고 아이폰에 적용된 멀티터치가 대표적이다.
복잡한 명령어를 입력해야 실행이 되는 컴퓨터에서, 마우스로 아이콘을 클릭하는 것만으로 조작이 가능한 컴퓨터로의 변화를 경험한 독자라면 총천연색으로 된 사과 마크를 떠올릴 것이다. 애플이 GUI를 본격적으로 도입해 만든 컴퓨터인 매킨토시가 그것이다.
애플 창업주 고(故) 스티브 잡스는 1979년 제록스 팔로 알토 리서치센터(Xerox Palo Alto Research Center) 투어 중 마우스로 아이콘을 움직여 실행창을 열고 닫는 모습을 목격했다. 첫 GUI 채택 컴퓨터인 '알토'를 보게 된 것.
이후 그는 GUI에 꽂혀 4년동안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한 끝에 매킨토시의 모태가 된 첫 GUI 채택 개인용 컴퓨터 '애플 리사'를 선보였다. GUI를 처음 발명한 것은 제록스였지만 애플이 드래그앤드롭, 더블클릭 등의 새로운 기능을 입히면서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했고 이에 힘입어 애플은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스마트폰 유저라면 누구나 익숙한 멀티터치 기술의 원조도 애플이 아니다. 애플은 2005년 멀티터치 기술을 보유한 핑거웍스(Fingerworks)를 인수해 아이폰에 이를 접목했고, 이후 해당기술은 스마트기기의 '기본'이 됐다.
무엇보다 애플이 아이폰을 통해 터치의 개념을, 뾰족한 펜으로 어느 한곳을 정밀하게 찌르는 것에서 여러 손가락을 활용해 화면을 펼쳐보이거나 동시에 여러 점을 잇기도 하는 것으로 바꿔 놓은 것이 '대박'을 불러왔다.
물론 애플이 남의 기술을 훔쳐 히트상품을 만들었다는 비난도 있다. 제록스의 경우 애플을 특허 침해로 고소했다가 소송 제기 시점이 늦었다는 이유로 재판장으로부터 기각 당하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걸 발명하는 것만이 답이 아니라는 점이다. 최초 발명품에서 힌트를 얻어 이를 더 쓸모 있게 만드는 것, 유용하지만 접근성이 떨어지는 '원조' 기술을 보다 많은 이들이 활용할 수 있는 대중적인 기술로 개선하는 것, 이것이 애플식 R&D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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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모비스 연구소(사진=머니투데이 DB) |
◆혁신적 R&D의 적, '기술지상주의'
국내 기업이 애플식 R&D를 이루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기술지상주의'(technocentrism)적인 사고방식을 버리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기술지상주의에 바탕한 R&D로는 혁신이 아닌 개악을 초래한다는 충고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 김명호 CTO는 "'이 좋은 기술을 쓰지 않는다면 소비자들이 바보지'라는 생각에서 시작된 R&D라면 그 결과물은 결코 시장에서 성공할 수 없다"며 "기술지상주의에 뿌리를 둔 R&D로는 소비자가 원하지 않는, 불필요한 발명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러한 R&D는 혁신이 아닌 개악을 불러온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혁신적 R&D는 특이한 발명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실생활을 윤택하게 하거나 업무를 더욱 편하게 해주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으며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들을 콘텍스트(context)에 맞게 다시 고쳐서 내놓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IT기업의 모바일 R&D 부문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개발자 역시 이와 같은 맥락에서 '아이워치'와 관련한 외신들의 최근 보도에 주목하라고 주문했다. 아이워치는 애플이 출시할 스마트워치다.
이 개발자는 "최근 외신과 미국 애널리스트들은 아이워치가 기존 스마트시계와 달리 홈오토메이션 기능을 핵심으로 한 기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며 "집안의 갖가지 시스템을 컨트롤하는 허브가 될 것이라는 추측인데 이게 현실이 된다면 애플은 혁신적 R&D의 정점을 찍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많은 기업들이 신제품에 여러 새로운 기능을 갖다 붙이면 '혁신'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하지만 혁신이 아닌 기술력을 과시하기 위한 '쇼'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며 "혁신적 R&D는 '기술 쇼'가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과 업무에 정말로 필요한 기능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미 언론들은 현지 애널리스트들의 최신 보고서를 인용해 아이워치가 집안의 냉난방·조명·TV 등을 제어할 수 있는 기능을 탑재해 출시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아이폰을 보조하는 기기를 넘어서 그보다 더 많은 쓰임새를 갖춘 제품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다.
실제로 애플이 홈오토메이션에 초점을 맞춘 스마트워치를 내놓는다면 이 또한 혁신적 R&D의 대명사로 거론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인터넷에 연결되는 스마트기기가 자동차는 물론 TV, 세탁기 등 가전분야까지 확대되는 요즘, 홈오토메이션이 가능한 스마트워치는 그 필요성이 이미 충분하기 때문이다.
발명이 아닌 혁신에 초점을 맞춘 R&D를 할 것, 동시대인들로부터 '그래, 내가 기다려온 바로 그거야'라는 반응이 나올 수 있을 만큼 '쓸모'있는 제품을 만들어낼 것. 이것이 현재 국내 기업들이 추구해야 할 혁신적 R&D의 실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0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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