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류승희 기자
사진=류승희 기자

"이 아이 좀 보세요. 눈이 얼마나 예쁜지 몰라요. 아이들의 눈에는 호수가 들어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해맑게 웃던 아이가 얼마 전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세브란스병원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최종진 화백(55)은 자리에 앉자마자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을 보여주며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최 화백은 1년3개월 전부터 세브란스병원 소아혈액종양병동에서 호스피스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일주일에 세번씩 병동을 방문해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쳐주고 직접 그림을 그려주기도 한다.
 
하지만 자원봉사를 시작한 후부터 종종 겪게 되는 아이들의 죽음에는 도무지 내성이 생기지 않는단다. 얘기를 이어가는 내내 웃음이 가득했던 그가 어떤 그림을 보더니 일순간 눈시울을 붉혔다. 그림 속 소년은 이제 갓 아이 티를 벗은 열예닐곱살쯤 돼 보였다.
 
"이 소년은 얼마 전 하늘로 떠났습니다. 어리지만 신사 같아서 제가 '제늘맨'(젠틀맨)이라고 불렀었지요. 아이들은 회복도 빠르지만 상태가 악화되는 것도 순식간입니다. 하늘로 가기 이틀 전까지도 조용히 웃어줬던 녀석이었는데…."
 
특히 아이의 경우 가족들이 그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더욱 힘들다. 부모들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식을 살릴 수 있다는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부모들에게 자식의 죽음을 준비하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그는 가족들을 위해 묵묵히 그림만 그려준다.
 
"그들에게는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못합니다. 제가 하는 일은 그냥 이야기를 하면 들어주고, 울면 눈물을 닦아주고, 그림을 그려 잠시나마 기쁨을 주는 일뿐입니다."
 
최 화백에게 종종 환아 부모들이 찾아와 가족을 그려달라거나 병원에 누워있는 아이를 위해 고향의 풍경을 그려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그중 가장 마음이 아픈 부탁은 영정사진을 대신할 아이의 그림을 그리는 일이다. 장례식장 한켠에 앉아 아이의 얼굴을 그리다보면 먼저 하늘나라로 간 딸아이가 생각나곤 한다.
 
그의 둘째 아이는 1살 때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암으로 투병하던 최 화백의 모친 또한 아이의 곁으로 갔다. 그래서 그는 환자가족들의 아픔을 다른 사람에 비해 잘 이해할 수 있다.
 
최 화백은 본인과 가족, 호스피스 모두가 아픔을 공감하는 것이 웰다잉을 이끄는 기본이라고 말한다. 공감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마음이 편안해지면 행복한 죽음을 맞을 수 있다는 것. 독실한 기독교인인 그는 "만났던 모든 이들을 하늘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며 "지금 살아가는 시간을 소중히 대하면 웰다잉은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 화백이 환아들에게 선물한 그림과 아이들이 그려준 최 화백의 초상화(사진=류승희 기자)
최 화백이 환아들에게 선물한 그림과 아이들이 그려준 최 화백의 초상화(사진=류승희 기자)

◆자원봉사로 현재의 소중함 깨달아
 
그의 가장 큰 보물인 핸드폰 속 그림사진에는 한장, 한장마다 모두 사연이 담겨있다. 예쁜 눈을 가진 한 소녀의 초상화를 보여주며 그는 말을 이었다.

"얘는 처음 만났을 때 엄청 까칠했어요. 아무에게나 욕질을 해댔죠. 그도 그럴 것이 몇번만 받아도 죽을 만큼 힘들다는 항암치료를 사십번 넘게 받았대요. 아이의 부모가 초상화를 부탁해와 그림을 그리기 위해 침상을 찾아갔는데 저에게도 욕을 했죠. 두시간 동안 욕을 들어가며 고개를 처박고 그림만 그렸어요. 아이가 완성된 그림을 보더니 웃더라고요. 그 순간 세상 누구보다 행복했습니다." 다행히 그림 속 소녀는 치료에 성공해 학교를 다니는 중이라며 그는 웃음 지었다.
 
투병에 지친 아이들과 부모들이 그가 그린 그림 한장에 즐거워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는 일이 그에겐 더없이 행복한 일이다. 그와 소아혈액종양병동과의 인연은 동생인 세브란스 치과대학 최종훈 교수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지방에 있는 개척교회를 돌아다니며 그림봉사를 하던 중 동생이 환자들에게 그림봉사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을 꺼낸 것이 계기가 됐다.
 
그렇게 세브란스병원 호스피스팀을 만났고 소아혈액종양병동을 찾기 시작했다. 처음 병동을 방문했을 때는 충격뿐이었다. 작은 아이들이 아픔에 절규하는 모습과 지친 부모들에 대한 안타까움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림 봉사 첫날에는 그림을 어떻게 그렸는지도 기억이 안날 정도다.
 
하루 이틀 방문이 이어지니 아이들도 최 화백을 반가워했고 이것저것 일거리를 주기 시작했다. "이 그림이 뭔지 아시겠어요? 피카츄인가, 뽀로로인가. 아직도 헷갈리네요. 제가 원래 이런 유치한 그림을 그렸던 사람은 아녜요.(웃음)"
 
아이들은 로봇부터 만화 주인공, 자신이 기르던 강아지 등 다양한 그릴 거리를 주문했다. 그는 모든 그림을 크레파스로 그린다. 다른 재료는 아픈 아이들에게 혹시 좋지 않을까 우려되는 데다 휴대가 불편했고, 무엇보다 크레파스가 아이들에게 익숙한 재료기 때문이다. 알록달록한 만화캐릭터 그림들을 보며 그는 연신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최 화백은 호스피스 자원봉사를 시작한 이후 바쁜 생업 속에서도 매순간을 소중히 대한다. "사실 누구나 그렇듯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힘든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힘들어하는 아이들과 가족들을 보고나니 현재의 삶이 소중해지더군요. 그래서 주위사람들에게 당신의 삶을 행복하게 하려면 돈을 더 벌기보다 자원봉사를 해보라고 권합니다."
 
두시간을 훌쩍 넘긴 그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웰다잉은 어쩌면 웰빙과 같은 의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니위크 박효주 기자 [email protected]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0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