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말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매매체결 업무에 대한 한국거래소의 독점체제가 사실상 막을 내렸다. 한국거래소(KRX)와 가격경쟁을 벌일 수 있는 대체거래소(ATS: Alternative Trading System) 설립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대체거래소는 기존 거래소와 마찬가지로 주식거래 체결업무가 가능한 곳으로 증권사들이 모여 설립할 수 있다. 투자자는 거래소와 ATS의 수수료를 비교해 거래할 곳을 선택할 수 있다. 이미 미국에서는 우리나라보다 15년 앞선 1998년 ATS를 도입해 실시하고 있으며 유럽과 호주, 일본 등도 ATS 설립을 일찌감치 허용했다.


대체거래소, '5%룰 진입장벽' 너무 높나?
▲사진=머니위크 류승희 기자

업계에서는 늦게나마 우리나라도 ATS 설립이 가능해진 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특히 그간 문제가 됐던 거래소의 독점구도가 깨진다는 사실을 높이 평가했다. 증권사들 역시 수익구조 다변화가 가능하다는 측면에서 ATS 설립 허용을 반기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설립 허가 후 3개월여가 지났지만 처음과는 달리 증권사들의 반응은 미온적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ATS가 허용된 9월쯤에는 ATS 설립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지만 요즘에는 언급조차 안되고 있다"면서 "금융위에서 설립규정이나 운영방법 등과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이 더 나와야 증권사들도 움직임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ATS 설립이 지지부진한 이유를 놓고 전문가들과 금융위원회의 의견은 엇갈린다. 전문가 사이에서는 금융위에서 거래소의 독점구조를 풀었다는 생색내기로 법을 만들었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수익성 낮아… 대체거래소 설립 '글쎄'

지난 8월19일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이 시행령에 따르면 앞으로 자기자본 200억원 이상인 증권사는 ATS 설립이 가능하다. 하지만 한 곳당 ATS 지분소유한도를 15%로 제한함에 따라 적어도 7개 증권사가 모여야만 한개의 ATS를 설립할 수 있다.

설립 후에는 거래량에 제한을 받는다. 금융위는 거래량을 증권시장 전체의 5%를 초과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그리고 이 기준을 넘어설 경우 정규 거래소로 전환하도록 했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ATS 설립의 문제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손미지 신한금융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ATS는 올 상반기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설립이 가능해졌지만 5%룰로 인해 증권사들이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준석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도 "국내 자본시장 구조를 감안할 경우 5%룰은 지나친 감이 있다"며 "증권사 입장에서는 막대한 비용이 발생하는 거래소 설립을 피하기 위해서는 5% 미만 규정을 지켜야 하는데 이 경우 거래수수료 수익이 낮아 ATS 운용에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증권사들이 ATS를 운용할 때 발생할 수수료 수익은 지난해 KRX의 거래수수료 수익을 통해 유추가 가능하다. 지난해 KRX의 거래수수료 수익은 2566억원이다. 이 중 주식거래수수료는 1100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5%를 적용할 경우 각 ATS들이 벌어들일 수 있는 수수료 수익은 대략 50억원 수준이다. ATS설립이나 운용에 따른 비용을 감안하면 순이익 규모는 더 줄어든다.

전문가들은 규제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해외의 경우 거래정보가 드러나는 '리트풀'(Lit Pool)에 대해서는 규제가 거의 없는 반면 기관투자자간에 대량매매가 이뤄지는 '다크풀'(Dark Pool)에 대해서는 규제가 엄격한데, 우리나라는 반대라는 것.

실제로 거래 체결내용 등 거래정보가 드러나지 않는 비경쟁매매에 대해서는 한도규제가 없다. 문병순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다른 나라의 경험에 비춰볼 때 대체거래소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경쟁매매보다는 거래체결 내역을 공개하지 않는 비공개주문시장(Dark Pool)에 대한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ATS의 거래량이 5%를 넘어설 경우도 문제다. 이 경우 정식거래소로 전환해야 하는데, ATS의 법정 최저자기자본이 200억원이지만 정식 거래소가 되면 자기자본을 1000억원 이상으로 확충해야 하기 때문에 자기자본이 낮은 증권사에는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5%룰을 상향조정하거나 ATS에 자율성을 좀 더 보장해줘야만 ATS 설립이 활성화될 수 있다고 말한다. 김준석 연구위원은 "성공적인 ATS 도입사례로 미국이 꼽히는데, 그중 대표적인 ATS가 골드만삭스"라며 "이처럼 미국에서 ATS가 안착할 수 있었던 건 자율성이 보장된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연구소 연구원 역시 "현행법은 법을 만든 사람이 시장구조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만든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며 "만약 이 구조가 유지된다면 ATS설립 허용이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고 쓴소리를 했다.

금융위, "규제완화 없다"

반면 금융위원회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거래량 5% 제한이 사실상 중요한 기준이 아니라는 것. 김성준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과 사무관은 "일반적인 주식거래를 놓고 볼 때 ATS가 설립되면 시가총액이 큰 종목위주로 거래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면서 "현재 거래량만 5% 제한을 둔 상태이고 거래대금에는 제한이 없어 크게 문제될 사항이 아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거래량에 5% 제한을 둬도 시가총액이 큰 종목을 거래하면 거래금액은 5% 이상으로 늘어나 수익은 예상보다 커질 수 있다는 논리다.

그리고 비경쟁매매를 통해서도 충분히 수익을 달성할 수 있다고 말한다. 김 사무관은 "경쟁매매에 대해서는 한도를 두고 있지만 비경쟁매매는 규제하지 않는다"며 "비경쟁매매에서 수익을 낼 수 있는 방안이 있는데 증권사들이 찾으려고 하지 않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증권사들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사실상 국내 자본시장에서는 비경쟁매매가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는 데다 과거 거래소도 한번 시도를 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어서다.

이런 상황이지만 규제완화에 대한 금융위의 입장은 완강하다. ATS 설립 의도 자체가 증권사의 수익구조 다변화가 아닌 투자시장에서의 거래비용 절감에 있기 때문에 규제완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김 사무관은 "현재 ATS 설립이 이뤄지지 않는 이유는 5%룰이 아닌 시장업황이 좋지 않은데 있다"며 "따라서 현재 상황에서 규제완화 계획은 없으며 설립 이후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그때 논의하면 된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0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