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즐겨 마시는 사람이라면 좋던 나쁘던 간에 에스프레소에 관한 에피소드 한 편쯤은 있을 것이다. 

부분은 이름이 독특해 주문했다가 작은 잔에 놀라고 독하게 쓴 커피 맛에 다시 한 번 소스라쳤을 것. 나 역시 에스프레소를 처음 만났을 때 키스처럼 달콤하고 찌릿하지는 않았다. 

에스프레소는 오히려 첫 사랑처럼 슬픈 결말을 맺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부족한 경험과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때 만나 어설프게 흐지부지 끝을 맺었다.

무지한 내 탓도 있었지만, 10여 년 전 당시만 해도 서울에 에스프레소를 맛있게 내오는 까페가 드물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누구에게나 에스프레소는 첫 사랑처럼 다가온다.
▲ 에스프레소 커피 (사진제공=구대회 커피테이너)

운이 좋아 에스프레소를 맛있게 뽑는 까페를 갔다 하더라도 처음 에스프레소를 접하는 커피 초보자들은 독한 양주를 처음 마셨을 때가 떠올랐을 것이다. “아이쿠, 왜 사람들은 이렇게 독하고 톡 쏘는 술을 마실까?”

까페에 여러 메뉴가 있지만, 에스프레소 만큼 고객을 당황케 하는 메뉴도 없다. 아직도 에스프레소를 주문하는 고객 중 일부는 그 커피의 정체를 모르고 주문한다. 

문을 받는 입장에서도 고객을 배려해야 하므로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고객이 “에스프레소 한 잔 주세요”라고 주문을 한 경우, 순간적으로 대응을 잘 해야 하다. 고객이 알고 주문했는지 아니면 모르고 했는지 파악하지 않고 에스프레소를 내오면 고객과 직원 모두 당황케 된다.

에스프레소 주문을 받는 경우, 고객을 존중하면서 메뉴 실수를 하지 않는 나만의 방법이 있다. 

고객이 에스프레소를 주문하는 경우, ‘솔로’ 인지 ‘도피오’ 인지 물어보면 된다. 혹시 고객이 못 알아들으면 ‘싱글’ 인지 ‘더블’ 인지 다시 물어본다. 그래도 못 알아듣는 경우, 그 고객은 에스프레소의 정체를 모를 확률이 무척 높다. 

난감한 경우는 ‘솔로’ 라고 해서 에스프레소 솔로를 내왔는데, 고객이 “이게 뭐예요?” 라는 황당한 표정을 짓는 경우다. 그럴 경우 뜨거운 물 한잔을 가져다 드리면 고객과 직원 모두 위기를 모면할 수 있다.

에스프레소는 이탈리아어로 ‘빠른’ 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에스프레소는 빠르게 추출한 커피라는 의미다. 

보다 정확한 에스프레소의 정의는 밀가루 보다는 굵고 설탕보다는 가는 커피가루 7~8그램을 9기압의 압력과 섭씨 92도씨의 물로 20~30초 동안 추출한 20~30cc의 커피원액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에스프레소 도피오는 커피가루가 두 배인 만큼 추출량도 두 배가 되는 것이다.

에스프레소는 ‘데미타세’ 라는 잔에 내오는데, 이 잔의 특징은 다른 커피 잔에 비해 두툼하다는데 있다. 그 이유는 적은 양의 커피인 만큼 잘 식지 않기 위함이다. 

데미타세 잔은 약 섭씨 65~70도씨로 뜨겁게 데워야 추출된 에스프레소가 식지 않은 상태에서 커피를 맛있게 즐길 수 있다. 안타깝게도 일부 까페에서는 데미타세 잔을 워머에 뜨겁게 데우지 않고 심지어 차가운 상태로 내오는 경우가 있다.

커피의 ph는 약 5.5~6정도로 약산성에 속한다. 에스프레소는 다른 커피와 마찬가지로 추출 후 산화가 진행된다. 즉 시간이 지날수록 쓴맛과 신맛이 강해진다. 멋을 위해 에스프레소를 빨리 마시는 것이 아니라 맛을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다.

에스프레소에 설탕을 넣지 않아야 멋있게 커피를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 어디까지나 취향이니 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설탕을 한 두 스푼 넣어 마시는 것도 커피 초보자뿐 아니라 마니아에게도 에스프레소를 맛있게 즐기는 방법 중 하나다.

내게 맛있는 한 잔의 에스프레소는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기상나팔처럼 무딘 신경과 혼탁한 정신을 맑게 한다. 또한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운 몸에 기운을 불어 넣는다. 내가 에스프레소를 첫 사랑처럼 그냥 떠나 보냈다면 나의 삶은 지금보다 2할 정도 덜 행복했을 것이다. 붙잡기를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