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이 '남'안되려면 '나'부터 노력
#. 결혼생활 30년째인 A씨 부부가 있다. 행복한 노년을 꿈꿔야 할 이들 부부는 지금 인생에서 가장 큰 위기에 놓였다. 아내 B씨의 이혼선언 때문이다. 이 부부의 갈등은 결혼 초부터 지속돼온 남편의 폭력에서부터 시작됐다. 지금껏 자식들을 위해 참고 살아왔다는 B씨는 완강한 이혼의지를 보였다. 남편은 이를 받아들이지 못했고, 매일 술을 마시고 들어와 술주정을 일삼았다. 아내는 이러한 남편에게 무관심으로 일관했고, 부부는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또 하루를 보냈다. 과연 이 부부는 어떻게 됐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사례의 주인공들은 '소통'으로 가족간 갈등을 극복했다. 전문가들의 상담과 코칭을 받기는 했지만 각자의 노력과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A씨 부부는 전문가와의 개인상담을 통해 서로의 과거 상처에 대해 알게 됐다. 남편 A씨는 기센 어머니 밑에서 억눌리며 자랐다. 어린 시절 A씨의 기억 속 아버지의 모습은 어머니에게 무시당하는 존재감 없는 남편이었다. 아내 B씨는 결혼 초부터 시작된 시어머니의 '못났다'는 독설에 자존감이 사라지고 말았다. B씨는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고등학교를 마치지 못했는데, 그 이유로 시어머니의 멸시가 반복되자 끝없는 분노가 생겼다.
 
전문가는 이 부부의 상태에 대해 "A씨는 어머니에게 받은 압박감을 아내에게 화풀이하듯 해소했고, B씨는 자신이 분노하는 이유를 오로지 남편의 탓으로만 돌렸다"고 평가했다. 이런 진단은 부부 각자를 혼란스럽게 했다.
 
30년이 지나 서로를 탓하며 타인에 의해 좌지우지 됐던 자신들의 결혼생활을 되돌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오랜시간 서로에게 쌓였던 감정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이에 전문가는 이 부부에게 각자가 실천해야 할 두가지를 제시했다. 남편에게는 아내와 하는 말의 마디 수를 늘리라는 것과 본인 스스로에게 좀 더 유연해지라는 것이었다. 아내에게는 남편이 원하는 행동에 동행해주도록 노력하라는 것과 자신만을 위한 동적인 취미생활을 하라고 주문했다.
 
전문가의 치료는 3개월간 심리극과 상담을 통해 지속됐고 부부는 마음의 물꼬를 트기 시작했다. 아내는 30년만에 처음으로 진정어린 사과를 했고, 남편은 힘들었을 아내가 먼저 다가와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현재 이 부부는 누구보다도 행복한 제2의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님'이 '남'안되려면 '나'부터 노력

◆ 가족이어서 더 어려운 '소통'
 
'은둔형 외톨이', '묻지마 범죄자' 등 최근 심각한 사회문제로 지적되는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순탄치 못한 가정환경을 겪었다는 점이다.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치닫지 않더라도 가족과의 불화는 분명 치유하기 힘든 상처로 남게 된다. 더욱이 가족 간의 갈등은 누구에게나 있는 일이라고 치부해버리기 쉬워 상처가 더 덧나게 된다.
 
박상천 연리지가족부부연구소장은 가정의 행복을 지키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소통'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가장 가까워야 할 가족간 소통이 오히려 남보다도 힘들 때가 있다. 자신의 마음을 전하려고 하지만 결국엔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는 말들을 쏟아내며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지게 된다. 때문에 가족간 소통에도 방법이 필요하다.
 
 Interview/ 최남숙 EBS <달라졌어요> 책임PD
"출연 결심 순간 '갈등의 반'은 해결"

사진=머니위크 류승희 기자
사진=머니위크 류승희 기자
최남숙 EBS <달라졌어요> 책임 PD는 올해로 3년째 프로그램을 지휘하고 있다. 지난 2011년부터 현재까지 약 150여건의 가족 갈등을 지켜봤고, 이들의 관계개선을 위해 노력해왔다.
 
- 기획 배경은?
▶EBS에서 <60분 부모>라는 정보전달 프로그램을 4~5년간 진행했다. 당시 프로그램에서 시청자들과 상담하는 코너가 있었는데, 막상 이야길 들어보니 정보제공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실질적인 개선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됐다.
 
- <달라졌어요>라는 프로그램 제목처럼 정말 가족들이 달라지나?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사실 프로그램 초반에는 정말 개선될까 하는 의문이 제작진에게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출연자들이 변화되는 모습에 제작진도 확신이 생겼다. 그들이 변할 수밖에 없는 진짜 이유는 제작진도, 전문가의 도움도 아닌 출연자 각자의 용기다. 스스로 말하지 않으면 누구도 알 수 없는 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내야 하는 방송에 출연하는 것은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이들이 (출연을) 결심한 순간부터 이미 갈등의 반은 해결된 셈이다.

- 프로그램 제작과정은?
▶섭외와 설득을 거쳐 관찰하고 전문가들의 솔루션을 거쳐 마무리될 때까지 약 3개월간 진행된다.

- 특히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다면?
▶지금까지 약 150여편의 사례를 접했다. 하지만 어느 한 가정도 갈등의 정도가 약하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하기 어렵다.
 
- 프로그램 운영 중 힘들었던 점은?
▶프로그램은 가족 중 한사람의 신청을 통해 이뤄진다. 때문에 다른 가족 구성원이 동의하지 않을 때 제작진이 아무리 설득해도 찰영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가 생긴다. 또한 제작진이 위험에 처해지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본인들이 요청해 시작했지만 막상 방송제작이 진행되면 대부분 두려워한다. 그때 격렬히 항의하는 출연자들도 있다.
 
- 가족간 불화와 치유과정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점이 많을 것 같다. 최 PD에게도 개인적인 변화가 있었나.
▶타인에 대해 비난하거나 판단하는 것을 자제하게 됐다. 그들이 왜 그런 행동을 보일 수밖에 없는지 이해하게 됐으니까. 실제 당사자의 입장이나 자라온 환경에 처해지지 않고는 그 사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됐다. 이러한 변화를 담아 앞으로 더욱 진정성 있는 솔루션프로그램을 만들도록 노력하겠다.
 
◆ 가족 소통 위한 5가지 방법
 
EBS 관계개선프로그램 <달라졌어요>를 3년간 진행해온 최남숙 책임PD는 다섯가지 가족과의 소통법을 제안했다.
 
①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하라
 
갈등 해소를 위해 서로의 입장을 헤아리고 이해하는 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 이때는 대화법이 중요하다. 서로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상대방의 입장을 알고자 노력해야 한다. 또한 상대방의 말을 듣고 평가하거나 비난하기보다는 그 이야기 자체에 집중하고, 또 상대방에게 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전달해야 한다.
 
② 서로가 원하는 것을 목록으로 작성하라
 
상대방의 입장이 돼 상대방의 생각을 온전히 알아낼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이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때는 상대방이 원하는 내용을 목록으로 작성해 서로 교환하면 많은 도움이 된다. 다만 목록 작성 시 솔직하고 정확한 내용을 적어야 한다.
 
③ 장점과 단점을 서로 말하라
 
가족간에 서로의 장점과 단점을 말하는 것도 관계개선에 도움이 된다. 장점은 더욱 키우고 단점은 보완하면 된다. 특히 상대방이 단점으로 지적한 것을 고쳐나가면 상대방에게 신뢰를 줘 관계가 긍정적으로 변할 수 있다.
 
④ 타임아웃을 적절히 활용하라
 
대화 도중 상대방의 말을 중간에 끊거나 감정을 앞세워 이야기하는 등 잘못된 방법으로 대화에 임하면 오히려 새로운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처럼 대화가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갈 경우 타임아웃을 발동해 대화를 잠시 쉬는 것도 좋다.
 
⑤ 이중메시지를 전하는 표현방식을 바꿔라
 
원하는 것을 제대로 말하지 않고 상대방이 알아서 해주기를 바라면 자신의 의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따라서 상대방에게 원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말해야 한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1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