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업체만 1400여곳…한숨만 나오는 쌍용건설 '딸린 식구'
해외수주·공사차질 불가피 '전전긍긍'
차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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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쌍용건설의 협력업체인 A사. 직원 150여명이 근무하고 있는 이 회사의 사장 하모씨는 최근 들어 출근을 못하고 있다. 직원들 볼 염치가 없어서다. 지난해 초부터 쌍용건설로부터 공사대금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아 직원들의 월급이 밀린데다 최근 쌍용건설이 법정관리 신청을 하면서 불안해하는 직원들의 모습을 눈 뜨고 볼 수가 없다. 그동안 자신과 쌍용건설을 믿고 고생을 함께 한 직원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그는 새해에도 출근하지 못하고 돈을 빌리기 위해 이곳저곳을 다니고 있다.
#2. 쌍용건설의 협력업체인 B사. 조그만 중소 건설업체인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최모씨는 새해부터 머리가 아프다. 그동안 쌍용건설의 워크아웃이 개시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안고 월급이 밀려도 묵묵히 일을 해왔지만, 지난해 12월30일 쌍용건설이 결국 법정관리를 신청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더욱이 이제는 경제적 여력도 없어 당장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나서야 할 형편이다. 고민을 거듭하던 그는 결국 사직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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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머니투데이 DB |
쌍용건설이 결국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선택하면서 국내 건설업계가 충격에 휩싸이고 있다. 쌍용건설은 국내 시공능력평가순위 16위로 그룹에 소속되지 않은 단일 건설사로는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인데다 내실 면에서도 알짜로 꼽히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법정관리 신청으로 가장 직접적인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되는 곳은 1400개에 달하는 협력업체다. 쌍용건설이 협력업체에 지불해야 할 전자어음 및 외상매출채권담보대출(B2B대출), 외상공사 및 미지급금 규모는 3000억원에 달한다. B2B대출이란 협력업체가 원청업체로부터 받을 돈을 은행에서 대신 받고 쌍용건설이 이를 은행에 상환하는 방식이다. 법정관리가 개시되면 모든 채권·채무가 동결되기 때문에 당장에 금융권이 협력업체에 대금 지급 중단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현재 진행 중인 국내외 공사가 차질을 빚고 1400여 협력업체가 도산 위험에 처하게 됐다.
◆ 부도 내몰리는 1400여 협력업체
쌍용건설의 법정관리 신청은 채권자인 군인공제회가 공사 현장 7곳을 가압류해 자금 흐름이 막힌 데다 채권단이 추가 자금지원에 난색을 표하면서 유동성 위기가 커진 탓이다. 특히 지난해 말까지 협력업체에 갚아줘야 하는 외상매출채권담보대출 600억원을 마련할 여력이 없는 게 크게 작용했다.
쌍용건설은 보유 현금이 190억원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유동성 위기에 놓여 있다. 쌍용건설 관계자는 “회사 자체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위기 상황에 채권단의 자금지원이 불투명해지자 부득이하게 법정관리를 신청했다”고 말했다.
법원의 회생절차 개시 결정이 나오면 쌍용건설의 자산과 부채는 동결되며 법원의 회생계획안에 따라 부채를 상환하게 된다. 그러나 법정관리 신청에 따른 파장 자체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먼저 채권단과 쌍용건설의 경영개선 계획을 믿고 일해왔던 협력업체 1400여곳의 피해가 우려된다.
이들 협력업체가 쌍용건설로부터 받아야 할 전자어음과 외상공사대금, 미지급금 등은 3000억원에 이른다. 쌍용건설 협력업체(전문건설업체)인 A사 관계자는 "지난해 초부터 대금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아 자체 자금까지 동원해 견뎌왔다"며 "이제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는 협력업체들이 도산하면 쌍용건설 현장뿐만 아니라 이들이 공사 중인 다른 건설사 현장까지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 쌍용發 ‘법정관리 공포’에 건설업계 ‘비상’
쌍용건설의 법정관리 신청으로 건설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업계가 특히 촉각을 세우고 있는 부분은 쌍용건설 협력업체의 도산이 다른 업체의 현장에까지 영향을 끼쳐 공사가 멈출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공사 중인 현장의 협력업체 상당수가 쌍용건설과 겹치는 부분이 있어 확인 중”이라며 “정부의 부동산 대책 이후 조금씩 살아나던 국내 건설업계에 찬물을 끼얹지 않을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쌍용건설 협력업체 도산이 여타 건설현장으로 번진다면 업계 전반의 손실도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다. 인건비와 중장비 대여비 등으로 공기가 늘어나면 자연히 투입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이 건설업의 특징이기 때문. 그룹 계열의 일부 건설사도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이어서 이번 사태가 업계 전반에 큰 타격을 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근래 건설업계 위기는 외환위기 당시 상황보다 더 심각하다"며 "쌍용건설 같은 대형 업체가 쓰러지면 업계 전반에 큰 파장이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한 부실이 금융권으로 옮아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상황이 얼마나 악화돼야 당국이 손을 쓸지 모르겠다"며 정책당국의 적극적인 대응을 요구했다.
◆ 해외현장 '올스톱' 위기…신인도 악영향 우려
쌍용건설의 법정관리가 가져올 파장은 국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쌍용건설은 부동산 경기 침체 이후에도 국내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을 털어내기 위해 해외에서 3000억원 유동성을 공급할 만큼 해외 부문에 강점을 가진 건설사다. 현재 8개국 18개 프로젝트에서 3조원가량의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워크아웃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다수의 해외 발주처로부터 사전입찰 초청을 받을 만큼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기도 했다.
쌍용건설은 2022년 월드컵 개최를 위해 기간시설 공사가 한창인 카타르 도하 지하철 프로젝트의 핵심라인에서 터키 기업과 컨소시엄을 구성,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돼 1조2000억원의 수주액 달성을 눈앞에 뒀었다. 하지만 이번 법정관리 신청으로 상당수 해외 프로젝트의 수주도 무산될 가능성이 커졌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쌍용건설의 법정관리로 우리 건설업계 전체의 해외 신인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올해 싱가포르 육상교통청은 지하철 한개 공구를 시공하던 오스트리아 업체가 법정관리에 들어가자 수주전에 나선 한국 업체들에게도 수주 금액 100%에 해당하는 보증을 요구한 바 있다.
쌍용건설이 싱가포르에서만 현재 1조7000억원의 공사를 수행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자칫 한국 건설사 중 상당수가 아예 입찰에서 배제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해외건설협회 관계자는 "쌍용건설은 싱가포르 '마리나샌즈호텔' 등 고난도 건물과 고급 호텔, 리조트 등 부가가치가 높은 분야에서 높은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데, 이런 기술력과 역사를 가진 업체를 잃는 것은 국내 건설업계를 넘어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라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1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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