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무죄'에 폭발한 민심
'황제노역 판사' 법복도 벗겨… 양형 불평등 바로잡을 때
이건희 재테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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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역(勞役)은 몹시 괴롭고 힘들게 일하는 노동으로 정의된다. 로마시대에 전쟁포로 출신인 노예들이 논밭이나 공방·광산에서 일하던 노역, 왕이 있던 시절에 궁궐을 짓는 데 동원됐던 백성들의 고단한 노역, 일제강점기에 한국인들이 강제로 동원돼 시달렸던 노역 등 부정적인 이미지가 떠오른다.
지난 2월 전남 신안군의 염전으로 팔려가 강제노역에 시달린 사람들 얘기가 알려지면서 사회적으로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시각장애인 김씨는 1년6개월 동안, 지적장애인 채씨는 5년2개월 동안 하루 5시간도 못자고 소금 내는 일과 농사일·집 공사 일에 동원됐다.
각목이나 쇠파이프로 맞고 욕설과 함께 폭력에 시달렸음에도 섬에 있는 면사무소와 파출소는 이를 외면했다. 월급은 한푼도 받지 못했다. 견디다 못해 3차례나 섬에서의 탈출을 시도했지만 동네사람들의 신고로 실패했다.
◆일당 5억원 황제노역…국민들 '분개'
그런데 지난 3월 이와 대조되는 노역에 대한 이야기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강제노역'이 아닌 '황제노역'이다. 허재호 전 대주건설 회장이 일당 5억원에 해당하는 노역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분개했다.
허 전 회장은 2007년 대주그룹을 경영하면서 법인세 500억원 탈루에 100억원의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기소돼 2010년 1월 항소심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 벌금 254억원을 선고받았다. 판결은 2011년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하지만 허 전 회장은 벌금을 내지 않아 2012년 3월부터 수배됐으며 뉴질랜드 카지노에서 도박을 하며 호화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형법에 의하면 벌금을 납입하지 않은 경우에는 노역장에 유치할 수 있고 그 유치를 3년까지 할 수 있도록 돼 있다.
하지만 법원은 허 전 회장의 노역장 유치기간을 최대 3년보다 훨씬 짧은 49일로 줄였다. 따라서 일당이 무려 5억원으로 환산됐다. 일반인은 어떨까. 환산금액을 1일 5만~10만원으로 정하는 것이 통상이며 몇백만원을 못 내서 노역장에 유치된 사람도 많다.
뉴질랜드로 도피를 했던 허 전 회장은 49일만 일하면 249억원을 탕감 받는 사상 초유의 '특혜 판결'을 받기 위해 자진 귀국, 광주교도소에 수감됐다. 귀국한 토요일 저녁에는 교도소에 들어가 그냥 잤고 다음 날 일요일은 노역장이 쉬었으며, 월요일은 건강검진만 한 채 일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3일 만에 벌금 15억원을 탕감 받았다.
더욱이 노역이라는 것도 쇼핑백 만들기, 두부 만들기 등이었다고 한다. 황제노역에 대한 비난이 사회적으로 거세지자 검찰은 닷새 만에 허 전 회장의 노역장 유치집행을 정지했다. 허 전 회장은 노역중단으로 노역장에서 풀려났고 검찰은 벌금집행에 착수할 방침이다.
교도소 안에서 총 6일치 노역비 30억원이 탕감돼 현재는 224억원이 남았다. 사실혼 부인은 골프장을 담보로 허 전 회장이 내야 할 벌금을 마련할 것이며, 여의치 않을 경우 처분을 해서라도 돈을 마련해 미납한 벌금(224억원)을 납부하겠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제노역 재벌들 꼽아보니…
거액의 일당에 해당하는 황제노역의 판결은 재벌을 대상으로 여러번 나왔다. 지금까지 최고기록은 시도상선 회장인 '선박왕' 권혁 회장이었다. 수천억원의 세금을 포탈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4년, 벌금 2340억원을 선고받은 권 회장의 노역 일당은 3억원이었다.
특검 이후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에게 선고된 벌금은 1100억원이었는데 1일 환산액을 1억1000만원으로 조정했다. 실제 노역을 한다면 1000일이며 이는 법적으로 정해진 최대 노역기간 3년인 1095일에 거의 근접한다.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은 2005년 분식회계 및 부당이득 등의 혐의로 징역 3년, 벌금 400억원을 선고받았으며 노역 일당은 1억원으로 책정됐다.
신상길 삼화저축은행 명예회장은 2009년 벌금 150억원을 일당 3000만원의 노역으로 환산하는 판결을 받았다. 이외에도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이 1500만원, 박용오·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이 1000만원으로 노역 일당이 정해진 바 있다.
지금까지 황제노역의 판결을 받았던 재벌기업 회장들은 그 누구도 노역을 하지는 않았다. 돈이 매우 많은 기업체 회장들이 벌금 내는 것 대신 교도소 안에서 잡일 하는 것을 선택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당이 얼마에 해당하는 노역의 판결을 받았는지 사람들은 잘 몰랐고 관심을 갖지도 않았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유죄가 확정된 지 한달 남짓 만에 벌금 1100억원을 한꺼번에 납부했으며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은 선고유예로 벌금마저 면제된바 있다. 권혁 회장은 노역을 하지 않고 벌금을 내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허재호 회장은 노역을 하겠다며 교도소로 직접 걸어 들어갔기 때문에 하루 일당이 얼마인지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이다.
노역 일당(환형유치금액)이 엄청난 경우는 재벌이 아닌 일반인에게도 있었다. 대구에서 고물상을 하던 사람들이 무자료로 비철금속을 매입하거나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부가가치세 57억여원을 포탈한 혐의로 기소됐을 때 2012년 2월 대구지법 서부지원은 벌금 대신 노역을 하면 1일 2000만원으로 환산한다고 판결했다.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벌금 60억원'과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 벌금 60억원'을 각각 선고받은 이들은 형이 확정된 뒤 벌금을 내지 않고 도주했다가 붙잡혀서 일당 2000만원으로 노역장에서 일했다.
일반인으로서 1일 노역금이 가장 많았던 사례는 밀수범 K씨다. 2011년 금괴 550억원어치를 일본에 밀수출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2년6개월, 벌금 548억원, 추징금 537억원을 선고받은 그는 벌금을 내지 않으면 1억원을 1일로 환산해 노역장에 유치하도록 했다.
◆일일 환산액 근거 없어… 경제력 형벌효과 생각해봐야
최근 황제노역이 논란이 된 근본적 이유는 현행법 상 벌금을 노역으로 대신할 수 있는 기간만 최장 3년 이하로 규정돼 있을 뿐 일일 환산액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법관의 재량에 의해 정해지다보니 노역장 유치기간을 49일로 하면서 일당 5억원에 달하는 황제노역이 생길 수 있었던 것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몇몇 국회의원이 형법 개정안을 발의함에 따라 앞으로 환형유치의 명확한 내부기준이 만들어질 전망이다.
벌금을 제때 내지 못하고 노역장 유치나 재산압류 처분을 받는 사람은 한해 3만명을 넘어섰다. 2008~2012년에 벌금 미납으로 유치처분을 받은 경우는 총 18만2549건으로 연평균 3만6500명 수준이다(노철래 새누리당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제공받아 공개한 자료).
이들 중 상당수는 노역 일당이 몇만원 수준임에도 노역장행을 택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벌금 낼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은 노역장에 있는 동안 일을 하지 못해 생계가 더욱 어려워지는 악순환을 겪는다. 경제력에 따른 형벌효과의 불평등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2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지난 2월 전남 신안군의 염전으로 팔려가 강제노역에 시달린 사람들 얘기가 알려지면서 사회적으로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시각장애인 김씨는 1년6개월 동안, 지적장애인 채씨는 5년2개월 동안 하루 5시간도 못자고 소금 내는 일과 농사일·집 공사 일에 동원됐다.
각목이나 쇠파이프로 맞고 욕설과 함께 폭력에 시달렸음에도 섬에 있는 면사무소와 파출소는 이를 외면했다. 월급은 한푼도 받지 못했다. 견디다 못해 3차례나 섬에서의 탈출을 시도했지만 동네사람들의 신고로 실패했다.
◆일당 5억원 황제노역…국민들 '분개'
그런데 지난 3월 이와 대조되는 노역에 대한 이야기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강제노역'이 아닌 '황제노역'이다. 허재호 전 대주건설 회장이 일당 5억원에 해당하는 노역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분개했다.
허 전 회장은 2007년 대주그룹을 경영하면서 법인세 500억원 탈루에 100억원의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기소돼 2010년 1월 항소심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 벌금 254억원을 선고받았다. 판결은 2011년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하지만 허 전 회장은 벌금을 내지 않아 2012년 3월부터 수배됐으며 뉴질랜드 카지노에서 도박을 하며 호화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형법에 의하면 벌금을 납입하지 않은 경우에는 노역장에 유치할 수 있고 그 유치를 3년까지 할 수 있도록 돼 있다.
하지만 법원은 허 전 회장의 노역장 유치기간을 최대 3년보다 훨씬 짧은 49일로 줄였다. 따라서 일당이 무려 5억원으로 환산됐다. 일반인은 어떨까. 환산금액을 1일 5만~10만원으로 정하는 것이 통상이며 몇백만원을 못 내서 노역장에 유치된 사람도 많다.
뉴질랜드로 도피를 했던 허 전 회장은 49일만 일하면 249억원을 탕감 받는 사상 초유의 '특혜 판결'을 받기 위해 자진 귀국, 광주교도소에 수감됐다. 귀국한 토요일 저녁에는 교도소에 들어가 그냥 잤고 다음 날 일요일은 노역장이 쉬었으며, 월요일은 건강검진만 한 채 일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3일 만에 벌금 15억원을 탕감 받았다.
더욱이 노역이라는 것도 쇼핑백 만들기, 두부 만들기 등이었다고 한다. 황제노역에 대한 비난이 사회적으로 거세지자 검찰은 닷새 만에 허 전 회장의 노역장 유치집행을 정지했다. 허 전 회장은 노역중단으로 노역장에서 풀려났고 검찰은 벌금집행에 착수할 방침이다.
교도소 안에서 총 6일치 노역비 30억원이 탕감돼 현재는 224억원이 남았다. 사실혼 부인은 골프장을 담보로 허 전 회장이 내야 할 벌금을 마련할 것이며, 여의치 않을 경우 처분을 해서라도 돈을 마련해 미납한 벌금(224억원)을 납부하겠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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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노역 재벌들 꼽아보니…
거액의 일당에 해당하는 황제노역의 판결은 재벌을 대상으로 여러번 나왔다. 지금까지 최고기록은 시도상선 회장인 '선박왕' 권혁 회장이었다. 수천억원의 세금을 포탈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4년, 벌금 2340억원을 선고받은 권 회장의 노역 일당은 3억원이었다.
특검 이후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에게 선고된 벌금은 1100억원이었는데 1일 환산액을 1억1000만원으로 조정했다. 실제 노역을 한다면 1000일이며 이는 법적으로 정해진 최대 노역기간 3년인 1095일에 거의 근접한다.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은 2005년 분식회계 및 부당이득 등의 혐의로 징역 3년, 벌금 400억원을 선고받았으며 노역 일당은 1억원으로 책정됐다.
신상길 삼화저축은행 명예회장은 2009년 벌금 150억원을 일당 3000만원의 노역으로 환산하는 판결을 받았다. 이외에도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이 1500만원, 박용오·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이 1000만원으로 노역 일당이 정해진 바 있다.
지금까지 황제노역의 판결을 받았던 재벌기업 회장들은 그 누구도 노역을 하지는 않았다. 돈이 매우 많은 기업체 회장들이 벌금 내는 것 대신 교도소 안에서 잡일 하는 것을 선택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당이 얼마에 해당하는 노역의 판결을 받았는지 사람들은 잘 몰랐고 관심을 갖지도 않았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유죄가 확정된 지 한달 남짓 만에 벌금 1100억원을 한꺼번에 납부했으며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은 선고유예로 벌금마저 면제된바 있다. 권혁 회장은 노역을 하지 않고 벌금을 내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허재호 회장은 노역을 하겠다며 교도소로 직접 걸어 들어갔기 때문에 하루 일당이 얼마인지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이다.
노역 일당(환형유치금액)이 엄청난 경우는 재벌이 아닌 일반인에게도 있었다. 대구에서 고물상을 하던 사람들이 무자료로 비철금속을 매입하거나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부가가치세 57억여원을 포탈한 혐의로 기소됐을 때 2012년 2월 대구지법 서부지원은 벌금 대신 노역을 하면 1일 2000만원으로 환산한다고 판결했다.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벌금 60억원'과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 벌금 60억원'을 각각 선고받은 이들은 형이 확정된 뒤 벌금을 내지 않고 도주했다가 붙잡혀서 일당 2000만원으로 노역장에서 일했다.
일반인으로서 1일 노역금이 가장 많았던 사례는 밀수범 K씨다. 2011년 금괴 550억원어치를 일본에 밀수출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2년6개월, 벌금 548억원, 추징금 537억원을 선고받은 그는 벌금을 내지 않으면 1억원을 1일로 환산해 노역장에 유치하도록 했다.
◆일일 환산액 근거 없어… 경제력 형벌효과 생각해봐야
최근 황제노역이 논란이 된 근본적 이유는 현행법 상 벌금을 노역으로 대신할 수 있는 기간만 최장 3년 이하로 규정돼 있을 뿐 일일 환산액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법관의 재량에 의해 정해지다보니 노역장 유치기간을 49일로 하면서 일당 5억원에 달하는 황제노역이 생길 수 있었던 것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몇몇 국회의원이 형법 개정안을 발의함에 따라 앞으로 환형유치의 명확한 내부기준이 만들어질 전망이다.
벌금을 제때 내지 못하고 노역장 유치나 재산압류 처분을 받는 사람은 한해 3만명을 넘어섰다. 2008~2012년에 벌금 미납으로 유치처분을 받은 경우는 총 18만2549건으로 연평균 3만6500명 수준이다(노철래 새누리당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제공받아 공개한 자료).
이들 중 상당수는 노역 일당이 몇만원 수준임에도 노역장행을 택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벌금 낼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은 노역장에 있는 동안 일을 하지 못해 생계가 더욱 어려워지는 악순환을 겪는다. 경제력에 따른 형벌효과의 불평등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2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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