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반 과자반' 국산에 등 돌린 소비자
'텃밭' 위협하는 수입산의 역습 / 맥주도 외산 할인공세에 '비틀'
박성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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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주부 김은희씨(39)는 마트에 들르면 국산과자보다 수입과자코너를 찾는다. 가격이 비싸다는 생각에 몇달 전부터 국내과자코너는 들여다보지도 않는다. 아이들도 수입과자를 먼저 찾는다. 수입과자코너에 가까워지면 두 아이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걸음에 내달린다. 아직 계산도 안 했건만 아이들은 양손에 들고 있는 수입과자를 뜯고 싶어 안달이다.
지난해 국내제과업체들이 가격인상에 동참하면서 국산과자를 외면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롯데제과, 오리온, 해태제과 등은 과자값을 10% 안팎으로 인상했다. 제과업계는 원자재가격 상승이 과자값 인상의 원인이라며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호소한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이미 귀를 닫았다. 국산과자를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며 수입과자로 갈아타는 추세다.
◆가격경쟁력에서 밀린 국산과자
국산과자에 대한 소비자의 불만은 '질소과자'라는 신조어까지 탄생시켰다. 큰 포장에 비해 들어 있는 과자량이 적어서다. 오히려 과자가 부서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채워진 질소가 더 많아 질소과자라는 이름을 붙인 것. 심지어는 '질소를 샀더니 과자가 덤으로 온다'는 말까지 회자된다. 국산과자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가 떨어지고 있는 건 이 때문이다.
국산과자가 수입과자보다 가격경쟁력에서 밀리는 부분도 소비자의 선택에 한몫한다. 대표적인 수입과자는 미국의 감자칩 프링글스. 꽤 오래 전부터 눈에 띄었지만 '같은 감자칩이라면 가격이 싼 국산을 사겠다'는 소비자가 더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이마트 왕십리점에서는 프링글스오리지널(74g)을 780원에 판매한다. 10g당 105원인 셈이다. 반면 오리온 포카칩오리지널(60g)은 1180원이다. 10g당 197원으로 프링글스오리지널보다 92원이나 비싸다. 농심 칩포테토오리지널(60g)도 마찬가지다. 1120원에 판매되는 이 상품은 10g당 187원이다. 해태제과 생생칩오리지널(65g)도 1190원에 판매된다. 10g당 183원으로 프링글스오리지널에 비해 크게 높은 가격을 내걸었다.
와플과자의 가격차이도 같은 선상에 있다. 롯데백화점 소공동 본점에서는 이탈리아 와플비스코티와 초코와플비스코티가 각각(350g) 5000원에 판매된다. 10g당 143원이다. 하지만 롯데제과 와플(40g)은 900원으로 10g당 225원에 소비자의 선택을 기다린다. 중량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82원이라는 가격차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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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류승희 기자 |
지난해 말 국내제과업체들이 과자가격 인상에 동참한 것은 실적부진을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 관측된다. 제과업체들은 원재료가격 상승이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공표했다. 하지만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에 따르면 설탕과 원맥, 버터 등의 원재료가격은 최근 3년 동안 10~42% 내려갔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12년 11월 이후 16개월 연속 '1%대'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제과업체들의 주장과 상반된다.
국내과자가격 인상의 실마리는 제과업체들의 실적부진에서 찾을 수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롯데제과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917억800만원, 순이익은 547억9000원이다. 전년대비 영업이익은 20.5%, 순이익은 39% 감소한 수치다.
오리온 역시 실적이 감소했다. 지난해 3분기까지의 누적 영업이익이 2122억원이다. 전년 같은 기간인 2447억원보다 325억원 줄었다. 순이익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3월까지 1336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는데 전년도에는 1574억원이었다. 해태제과도 사정은 비슷했다. 지난해 100억2000만원의 순이익을 올렸지만 218억원을 기록했던 2012년에 비해서는 실적이 반토막 났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제과업체들의 실적부진이 과자가격 인상이라는 카드를 꺼내게 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하지만 이는 국산과자들이 가격경쟁력에서 밀려 수입과자에 안방 문을 열어주게 된 배경이 되고 말았다.
업계에 따르면 오픈마켓에서는 1년여 만에 수입과자 판매량이 두배 이상 급증했다. 한 대형마트는 전체 과자코너 4분의 1을 수입과자로 진열했다. 수입산이 인기제품이긴 했어도 그동안 국산과자가 이들에 밀리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수입과자에게 안방을 내줄 판국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제과업체들이 가격인상이라는 눈앞의 이익만 쫓으려다 스스로 시장을 내준 꼴"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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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류승희 기자 |
수입과자에 이어 맥주시장도 외국산에 영역을 뺏기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아직까지는 국산맥주의 가격경쟁력이 우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일부 수입맥주들은 저가 공세를 펼치면서 소비자의 선택을 이끌고 있다.
이마트 왕십리점은 독일캔맥주 5.0오리지널필스와 바이젠, 엑스포트 500㎖를 1550원에 판매한다. 드라이피니시d, 오비골든라거 등 국내캔맥주 500㎖ 가격인 1790원보다 240원 저렴하다. 맥주애호가들 사이에서 맛을 놓고 호불호가 갈리긴 하지만, 간단한 안주와 함께 가볍게 마시기에 적합하다는 의견이 많다. 여기에 가격까지 저렴하니 소비자의 선택이 늘어나는 건 당연하다.
물론 대부분의 수입맥주는 국산맥주보다 비싸다. 하지만 수입맥주는 대대적인 할인행사를 통해 소비자에게 빠르게 접근하고 있다. 수입맥주를 정상가 대비 20~30% 할인해 판매하다보니 500㎖ 한캔에 2000원이 안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 국산맥주는 이 같은 할인판매가 어렵다. 국산맥주는 국세청의 행정명령에 따라 출고가격 이하로 판매하는 게 금지돼 있다. 반면 수입맥주는 출고가격 정보가 없어 자유롭다.
이 같은 특권(?)으로 소비자를 공략한 결과 수입맥주시장은 2011년 5만8993㎘에서 지난해 9만5210㎘까지 61% 고성장했다. 최근 3년간 연평균 성장률이 20%나 된다. 특히 지난해 수입맥주 매출은 29.8% 증가한 반면 국산맥주 매출은 9.2% 떨어졌다.
여기에 올 여름에는 국산맥주의 가격이 인상될 가능성이 높다. 원재료가격 부담이 가중되고 있어서다. 국내맥주업체들이 가격인상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하는 이유도 외국산의 역습 때문이다. 과자와 마찬가지로 국내주류업체들의 최대 난관이 예고된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2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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