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시설공단, 하루 벌어 먹고사는 일용직 임금 등 37억 미지급

올 초 국민적 공분을 샀던 ‘매교역 할머니’ 이야기. 쓰러져 가는 집에 지지대를 세워놓고 거주하던 81세 노인에게 나가 살라던 사건이 일어난 곳. 주민 편의와 지역경제 발전을 위해 한국철도시설공단이 추진한 오리~수원 간 복선전철 매교역 출입구 공사는 지역민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돌아왔다. 부도난 시공사 선정으로 시작된 이 사업은 부실공사로 인한 지반침체와 주택붕괴, 그리고 지역경제 파괴라는 병폐를 낳고 있다. 지역민들은 매교역 주변을 걸을 때면 행여 넘어질까 땅바닥을 보며 다녀야 하고, 인근 자영업자들은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을까. 취재 결과 매교역 공사는 첫삽부터가 잘못 뜬 것이었다. 매교역 부실공사의 문제점과 그것이 불러온 지역 및 주민 피해 현장을 <머니위크>가 낱낱이 짚어봤다.


<글 싣는 순서>
①'부실 삽질'에 무너진 자영업자의 삶
②지역경제 죽인 매교역 공사
③부실공사가 남긴 지반침체, 쓰러지는 매교역 주변

'시민의 발'이 되겠다고 시작한 국책사업이 시민들의 눈물이 돼 돌아왔다. 지난해 11월30일 개통한 오리-수원 간 복선전철사업 중 일부 구간인 매교역 출입구 공사. 이 공사에 참여해 일을 했다는 이유로, 물건을 납품했다는 이유로, 인근에 위치했다는 이유만으로 아직까지 고통 속에 나날을 보내는 이들이 있다. 하루 벌어먹고 사는 일용직 노동자부터 매일 새벽에 일어나 빵을 구워 파는 영세 자영업자들까지…. 공사는 끝나고 전철이 다니기 시작한 지 반년이 지나가지만 이들의 삶은 아직도 고통이다.
 
/사진=머니위크DB
/사진=머니위크DB
◆ 지하철 출입구 공사가 몰고 온 ‘빚잔치’

<머니위크> 제326호에 실린 ‘부실 삽질에 무너진 자영업자의 삶’ 보도 이후 다시 찾은 매교역. 꼬박 한주가 지나 방문한 이곳엔 여전히 적막이 흘렀다.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공사를 미처 끝내지 못해 정비가 안 된 보도블록이며, 주민들의 어두운 표정도 별반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감상에 젖어 있을 틈이 없었다.

아직도 발주처인 철도시설공단으로부터 공사대금과 납품대금 등 총 37억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 이들을 만나기 위해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 현장에서 굴삭기 공사를 진행한 김갑중씨를 먼저 만났다.

그는 기자를 만나자마자 억울함을 토로했다. 지난해 8월부터 12월까지 개통날짜(11월30일)를 맞춰야 한다는 시공사(동양건설산업)와 발주처(철도시설공단)의 압박으로 밤낮없이 굴삭기를 몰았다고 했다. 그 사이 김씨가 받아야 할 중장비 사용료 대금은 2300만원에 이르렀다. 일부라도 입금해달라고 수차례 시공사와 발주처에 요청했지만 “공사가 끝나는 즉시 지급해준다”는 약속만 들었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단돈 1원도 받지 못했다.

김씨는 그동안 잠도 제대로 못 이뤘다고 했다. 김씨는 “공사를 진행하면서 다 같이 먹고 살았으면 하는 마음에 중장비 일을 하는 동료들을 이곳 현장에 소개했다. 하지만 아무도 돈을 받지 못해 동료들을 볼 면목이 없다”며 그동안 고충을 털어놨다. 그가 소개시켜 이곳에 투입된 중장비는 총 77대. 공사대금은 적게는 27만5000원부터 많게는 3600만원까지 총 2억1000만원에 달한다.

사실 김씨도 이번 공사 때문에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자녀 2명 모두가 대학생인데, 등록금을 낼 방법이 없는 거에요. 휴학을 하겠다는 자식들을 말려 학자금 대출을 받아 등록금을 냈습니다. 아비로서, 가장으로서 면목이 없더군요”

김씨는 나랏일을 하는 철도시설공단을 믿고 기다렸지만 그들의 행태를 보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고 했다. 지난해 10월 갑자기 투입된 N건설사 A레미콘회사에 지난달 8000만원과 6000만원의 공사대금을 철도시설공단이 지급한 사실을 알고는 말문이 막힌 것.

그는 곧바로 동료들과 주변에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철물점, 주유소, 빵집, 식당 등을 모아 시위에 나서기로 했다. 이 사실을 안 철도시설공단은 그제서야 집회를 말리며 담당자가 찾아왔고,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만류했다고 한다. 김씨는 “나랏일 하는 공단이 원칙도 없고 예의도 없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행태에 치가 떨린다”고 격분했다. 김씨와 이들은 한번 더 철도시설공단의 거짓말을 지켜보기로 했다. “어디까지 사람을 벼랑으로 모는지,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것인데 과연 지키는지 보겠습니다.”

한국철도시설공단의 중장비 사용료 대금 중 세금계산서 일부(왼쪽), 철도시설공단 측에서 제6공구 2차 유출 당시 하청업자들에게 보낸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한국철도시설공단의 중장비 사용료 대금 중 세금계산서 일부(왼쪽), 철도시설공단 측에서 제6공구 2차 유출 당시 하청업자들에게 보낸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 “법적으로 아무 문제 없다”

이번에도 역시 취재를 마친 뒤 발주처의 답변과 대책을 듣기 위해 철도시설공단 측에 연락을 취했다. 담당부서인 수도권사업본부 현장책임자에게 N건설사와 A레미콘회사에 공사대금이 어떻게 결제됐는지를 물었다. 그는 “동양건설이 이들 회사에 직불제 계약을 맺어 지급하게 됐다”며 “원도급사가 직불제 계약을 맺은 만큼 우선 결제하는 것이 맞다”고 설명했다.

철도시설공단의 답변을 들은 후 동양건설에 직불계약 경위를 알아봤다. 하지만 철도시설공단 측의 답변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동양건설 측 관계자는 “법정관리에 들어가 있는 상태라 직불제를 신청해주고 할 여유가 없다”며 “철도시설공단 측이 유도해 3자 합의를 통한 직불제 계약을 지난 2월 맺었다”고 주장했다.

너무 상반된 주장이라 다시 철도시설공단 현장책임자에게 물었다. 동양건설이 맺은 직불제 계약이 아닌 철도시설공단에서 종용한 계약이 아니냐고. 이에 대해 현장책임자는 “그게 그거 아닌가. 동양건설이 계약한 것”이라고 말했다. 도무지 이해가 안돼 되묻는 기자에게 그는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이처럼 기자의 사실여부를 묻는 질문에도 ‘아’ 다르고 ‘어’다르게 대답하는 철도시설공단.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대답하고, 사실이 드러나면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꾸는 이들. 매교역 공사로 인해 고통 받는 피해자들에게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철도시설공단의 이야기가 과연 진심인지, 아니면 면피용 대답인지 궁금해진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2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