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00년 세월 동안 조선시대 서민의 거리이자 해방 후에는 먹자골목으로 변모해 샐러리맨들의 애환을 달래주던 피맛골이 고층빌딩숲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이와 함께 주목할 점은 올 초 청진동으로 이사 온 GS건설을 비롯한 업계 10위권 내 대표건설사들이 대거 이 일대로 모이면서 이른바 '컨스트럭션(건설) 밸리'를 형성한 점이다.

서울의 중심인 종로로 건설사들이 모인 까닭은 저마다 다르다. 어디는 자금사정이 어려워져 사옥을 이전하기 위해, 또 어디는 대규모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 이곳에 모였다.

중요한 건 메이저건설사들이 모두 한곳에 모인 이상 비교 역시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특히 올해를 기점으로 옛 피맛골 일대에 새롭게 오피스빌딩을 선보이는 건설사 간 눈에 보이지 않는 신경전도 예상돼 이목이 집중된다. 건설 밸리 속 국내 대표건설사들의 자존심을 건 한판승부를 조명해본다.
 
[커버스토리] 먹자골목서 건설밸리로… '환골탈태' 피맛골

 
◆건설사들, 줄줄이 종로 한복판으로

종로 일대 건설 밸리를 형성에 있어 무게감을 더한 건 역시 업계 맏형 현대건설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의 건설부문 계열사인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 현대엠코는 그동안 뿔뿔이 흩어져 있다가 지난 3월 초 계동 사옥으로 모두 집결했다. 특히 현대엔지니어링과 현대엠코의 합병효과가 더욱 극대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GS건설도 청진동 그랑서울빌딩으로 사옥을 이전하면서 역전타워와 GS강남타워에 분산돼 있던 부서를 한 데 모았다. 플랜트본부와 발전환경사업본부 등의 부서를 새 사옥으로 집결시키면서 지난해 침체됐던 분위기를 전환하는 것은 물론 플랜트 분야와의 긴밀한 협조를 이끌어낸다는 전략이다.

이로써 종로구 일대에 계동(현대건설), 청진동(GS건설), 인사동(SK건설), 수송동(대림산업), 신문로(대우건설) 등 업계 10위권 내 대형건설사들의 본사가 밀집된 건설 밸리가 조성됐다. 주요 건설사들이 한곳으로 모이면서 경쟁력과 집중력이 강화될 것이라는 기대심리도 작용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현장업무가 중요시되는 건설업의 특성상 본사가 한곳에 모인 것에 대한 눈에 띄는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업체 간 연결된 프로젝트가 많은 만큼 긴밀한 교류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커버스토리] 먹자골목서 건설밸리로… '환골탈태' 피맛골

 
◆종로구 신축현장, 조용한 건축대전

건설 밸리 속 최근 가장 이목이 집중되는 곳은 옛 피맛골을 중심으로 한 청진동개발구역이다. GS건설과 신세계건설, 대림산업 등이 종각역에서 광화문역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도로변에 나란히 대형오피스빌딩을 선보이면서 일대 부동산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천편일률적인 빽빽한 성냥갑 스타일의 오피스빌딩촌을 탈피해 각자 개성 넘치는 디자인과 첨단 공간 활용 공법으로 무장한 오피스빌딩들을 선보이면서 각축의 장이 펼쳐졌다.

GS건설의 '그랑서울', 대림산업의 'D타워', 신세계건설의 '청진8지구오피스빌딩' 등 피맛골 위에 지어지는 신축 오피스빌딩들의 공통점은 '커튼월'(curtain wall) 방식으로 외벽을 마감했다는 점이다.

커튼월 공법은 건축용어로 '비내력 칸막이벽'이라고도 불린다. 건물의 하중을 지지하지 않는 칸막이 같은 바깥벽이란 뜻이다. 유리, 금속판 등 외장재를 건물의 외벽에 커튼을 치듯이 판 형태로 붙여놓은 것으로, 일반적인 창문과 달리 하중을 지지하지 않아 자유로운 외관을 만들 수 있다. 또 철근이나 콘크리트로 벽을 시공하지 않아 그만큼 건물내부의 활용공간도 늘어난다.

건물모양이 'U자형'을 띠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얼핏 쌍둥이빌딩으로도 보이는 이 공법은 지하부터 일정부분 지상층까지는 하나로 이어져 있다가 위에서부터 두개동으로 분리되는 형태다. 경관을 위해 건물폭을 55m로 제한하는 서울시의 건축규제 때문에 이 같은 건축법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피맛골 살린 오피스빌딩, 상권도 '들썩'

GS건설이 청진동 12~16지구를 정비해 준공한 그랑서울은 24층 고층건물로 3층부터 6층까지는 하나로 이어져 있고 7층부터 두개동으로 분리됐다. 한개동의 크기는 가로 53.52m, 세로 45.92m에 높이는 105.2m에 달하고, 연면적이 17만㎡를 넘는 대규모 오피스빌딩이지만 상층부를 두개동으로 분리하면서 시야를 확보하고 답답함을 해소했다.

여기에 건물 사이로 '식객촌'이라 불리는 테라스형 상가를 조성해 벌써부터 인근 샐러리맨들과 관광객으로부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 같은 테라스형 상가촌은 대림산업과 신세계건설에서 짓고 있는 오피스빌딩에도 비슷하게 적용될 예정이다.

대림산업이 청진동 2~3지구를 정비해 올해 준공을 앞두고 있는 D타워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건물로 지었으면 101m에 달하는 높이지만 각각 46m의 두개동으로 짓고 있다. 지상 24층 높이로 1∼5층은 상업시설이 들어오며 한개동으로 구성되고, 6층부터는 두개동으로 나뉜다.

D타워는 특히 독특한 외관 디자인으로 지나가는 이들의 시선을 한눈에 사로잡는다. 블록쌓기 형태의 디자인으로 오브제를 쌓은 듯한 유니크한 디자인 콘셉트로 설계됐다. 외관은 나무, 하늘, 땅과 같은 자연의 고유색상 및 질감과 일치한다. 초고층빌딩숲 사이에서 따뜻하고 친숙한 외관을 갖기 위해 자연 그대로를 담았다는 게 업체 측의 설명이다.

촘촘하게 박힌 창문도 독특한데 이는 컴퓨터를 많이 사용하는 오피스 업무환경을 고려해 모니터 빛 반사를 최소화하기 위해 설계된 것이다. 밀집된 인근 건물로부터 프라이버시를 보호받을 수 있는 장점도 있다.

한편 이미 들어선 GS건설을 비롯해 이들 오피스빌딩을 중심으로 다양한 기업이 들어설 것으로 예상되면서 주변상권 형성에 촉매제 역할을 톡톡히 하는 분위기다.

인근 H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옛 피맛골 만큼의 상권이 형성되지는 않겠지만 이들 고층빌딩 모두 피맛골을 현대적으로 복원할 계획이어서 의미가 있다"며 "역사를 품었다는 점에서 단순한 오피스빌딩을 넘어 가치를 인정받을 것이다. 직장인 수요에 관광객 유동인구까지 흡수하면 상가 임대료도 급등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4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