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이요? 학생 때 막연히 꿈을 꾼 적은 있었죠. 구체적으로 실천할 용기는 없었어요. 대학 졸업과 동시에 직장에 들어가고, 아이들이 태어난 후론 다른 데 눈 돌릴 여유없이 살아온 게 대한민국 가장들의 삶이잖아요. 남들보다 뒤떨어지지 않으려 밤낮없이 치열하게 살다보니 어느덧 30년이 흘렀더라고요. 지금이요? 나이 들어서 카메라 앞에 서려니 처음엔 어색했지만 행복합니다. 젊어진 느낌이랄까요?”

◆2년차 초보 모델의 삶

모두가 은퇴했을 나이인 65세. 평생 가족들만 바라보고 산 가장의 입장에선 몸담던 직장에서 퇴직한 후 인생의 공허함에 빠질 시기다. 하지만 뒤늦게 새로운 도전을 통해 자신을 찾고 꿈을 이룬 사람이 있다. 바로 서울 양천구 목동에 사는 소남섭씨다.

“대한항공에서 23년 일을 하다 2009년 퇴직했어요. 당장 무엇을 할까 고민했고 인터넷 교육 사업을 시작했죠. 처음엔 매스컴도 많이 타고 잘 되나 싶더니, 경쟁이 심해지면서 결국엔 살아남지 못하고 정리를 하게 됐고요. 무기력한 날들을 보내던 어느 날, 시니어 모델을 접하게 됐고 ‘이거다!’ 싶어 지원을 하게 됐어요.”

소씨는 현재 서울강남시니어클럽에서 노인일자리 사업으로 운영 중인 시니어 모델이다. 2년 전 오디션을 통해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선발됐다. 젊은 모델들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180㎝의 훤칠한 키와 세련된 이미지가 높이 평가된 것이다. 틈틈이 실천해온 몸매 관리도 도움이 됐다.

모델 등록 후 소씨와 같은 이미지를 찾는 곳의 러브콜이 이어졌고, 소씨는 남자들의 ‘로망’이라는 시니어 남성정장 모델에서부터 노인 CF, 뮤직비디오 등 다방면에서 경력을 쌓고 있다.

“소속감이 있다는 게 제일 행복하죠. 누군가 나를 찾아주면 기분이 좋고 화보를 찍은 후 결과물을 보면 마냥 즐거워요. CF는 단역이지만 연기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정식으로 연기를 배워보고 싶은 욕심도 생기고요. 모델 일을 하면서 다시 새롭게 꿈을 꾸는 기분이에요.”

그는 고령화 사회를 맞아 방송과 기업 광고, 공공기관의 홍보에 노인의 등장이 많아지면서 앞으로 시니어 모델을 찾는 곳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없는 개성을 살리는 것보다 본인들이 가진 이미지와 주어진 주제에 잘 맞춰나가는 모델이 향후 경쟁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 같은 경우는 당당한 체격을 유지하면서 흐트러지지 않는 이미지를 꾸준히 유지하고 싶고요. 나중에는 패션쇼 무대에도 서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연중기획 I♥100세] 65세 늦깎이 모델, 당당하게 서다

◆주례봉사와 재능기부까지

소씨는 현재 모델 외 다른 활동으로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주말에는 결혼식 주례 봉사를 나가고, 퇴직 후 배운 역학공부를 통한 재능기부에도 앞장서고 있다. 



주례봉사는 코엑스에서 열린 노인일자리 박람회를 찾았다 인연을 맺게 됐고, 역학공부는 이명박 정부 시절 세대간 소통 프로젝트였던 ‘청춘다방’에 시니어 봉사자로 참여하면서 시작됐다.

“청춘다방은 당시 60세 이상 시니어들이 대학교 내 커피숍에서 서빙도 하고 학생들에게 인생 상담, 진로상담 등을 해주는 취지로 만들어졌어요. 그러나 생각보다 고민을 상담해오는 친구들이 없어 역학을 공부해서 접목해 보면 어떨까 생각했죠. 1년을 공부했고 자격증을 땄어요. 그 후론 연애상담, 진로문제 등을 상담하러 오는 친구들이 줄을 섰고요.(웃음)”

가장 인기 있는 ‘멘토’가 된 소씨는 이후에도 역학 공부를 계속했다. 이런 장점을 살려 올해 초 광명시민을 대상으로 한 ‘신년 운세풀이’에 재능기부자로 참가했고, 내년에도 참여가 예정돼 있다. 



하나 둘 하고 싶은 일들을 실천해 나가다 보니 소씨는 어느새 여러 개의 꿈을 실천한 시니어들의 귀감이 되는 은퇴모델이 돼 있었다. 


“여러 가지 활동을 통해 제 삶을 되돌아보면서 되레 제가 치유 받는 기분이에요. 시니어 모델은 먼 훗날 좋은 모델이 됐으면 좋겠다는 희망으로, 주례는 새로운 삶의 시작을 열어주는 봉사자의 마음으로, 재능 기부는 배움을 이웃과 함께 나누는 의미로 계속해 나갈 예정이에요.” 


소씨는 은퇴 후 무엇을 해야 할지, 불안한 인생설계를 걱정하는 이들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100세 시대라고 하죠. ‘가만히 있으면서 누가 나를 불러주겠지’라고 생각하면 아무 것도 못합니다. 뭘 해야겠다고 마음의 결정을 내렸으면, 어떤 곳에서 그런 일들을 할 수 있는지 찾아보고, 상담도 받아보고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 중요하죠. 그게 바로 행복한 황혼으로 가는 첫 걸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