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7주년] 북촌에 '보물'이 있었네
건축에 '古'를 입히다 / 한옥마을 둘러보기
김병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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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옛 것이 좋다. 불편하고 촌스럽고 구식이지만 옛 것에서만 느낄 수 있는 투박한 푸근함이 좋다. 한옥이 딱 그렇다. 현대식 아파트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전통 한옥만의 멋이 있다. 한옥은 진화하고 있다. 고유의 멋을 살리면서 현대건물의 편리성을 접목시켜 ‘최신식’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고풍스러운 한옥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보존방법 등을 찾아봤다.
“아빠, 한옥이 뭐예요?”
“한옥은 전통과 문화가 고스란히 담긴 보물이지.”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직접 눈으로 보고 느껴야 한옥의 진정한 가치를 알 수 있다. 지난 12일 아들 손을 꼭 잡고 북촌한옥마을을 찾은 이유다.
대학시절 이후 딱 10년만에 이곳을 다시 찾았다. 단아하고 격조있는 한옥의 경관과 곳곳에 숨어있는 사적·문화재, 그리고 수많은 외국인관광객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고풍스런 모습은 예전 그대로였다.
서울 계동 현대사옥 옆, 한옥마을 입구에서부터 추억의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이게 ‘달고나’라는 것인데 아빠도 어렸을 때 자주 만들어 먹곤 했어. 할머니께 하나 만들어달라고 해봐.” 별 모양이 찍힌 달고나 하나를 아들 손에 쥐어주고 본격적인 한옥마을 보물찾기를 시작했다.
◆ ‘북촌문화센터’부터 시작되는 북촌여행
계동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니 좌측으로 ‘북촌문화센터’가 보인다. 서울시가 운영하고 연중무휴로 개방하는 이곳은 북촌 도보 관광지도 및 전통문화체험 등 관련 자료를 받아볼 수 있어 북촌 보물찾기의 필수코스다.
북촌문화센터는 1921년 대궐목수가 비원의 연경당을 본떠 지은 한옥으로 건축적인 가치도 크다. ‘ㄷ’자형의 구조로 문간채를 지나 사랑채와 안채로 이어진다. 안채 뒤로 마련된 아담한 정자는 원래 사당이었지만 지금은 휴식공간으로 제공하고 있다. 단아한 한옥의 정취를 느끼며 전통 차 한잔을 마시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빨리 보물을 찾으러 가자는 아들의 성화에 못 이겨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예스러운 길을 따라 올라가니 우측으로 인촌 김성수의 옛집이 보인다. 중앙고보(중앙고등학교)의 주인이자 경성방직, 동아일보와 고려대학을 세운 김성수의 구옥(舊屋)은 옛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었다. 이 곳은 3·1운동을 위해 기독교, 천도교계, 불교계가 규합을 합의했던 역사적인 장소기도 하다.
김성수 옛집을 나오자 맞은 편 골목 끝자락에 가회동 한씨가옥이 눈에 띈다. 이 가옥은 조선 후기~일제시대 초기에 지어진 한옥으로 행랑대문채와 본채로 구성돼 있다. 본채는 사랑채 부분과 건넌방 부분이 복도를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배치돼 있는데 사랑채는 왼쪽에 현관과 홀을 내었고 서남쪽에 대청을 둬 정원을 내다볼 수 있게 했다. 대청 왼쪽에는 온돌방을, 그 앞쪽에는 주인실을 배치하고 툇마루를 돌렸다. 서양과 일본풍의 현대식 생활기능을 도입해 지은 건축물로 개화기 이후 문화주택의 초기 양식에 속한다.
◆역사 담은 ‘중앙고’, 한옥의 정감 '한옥게스트하우스'
계동길 끝자락에 다다르자 1983년 사적으로 지정된 중앙고등학교가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일제 치하 당시 중앙고보 교사였던 송진우·현상윤 선생 등이 이 학교 숙직실에서 3·1운동 거사를 준비한 것으로 유명하단다.”
학교 앞마당에는 숙직실이 당시 모습대로 복원돼 3·1운동의 정신을 기념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중앙고등학교는 드라마 <겨울연가>의 촬영지로도 유명해 일본인관광객들이 다수 눈에 띄었다.
중앙고를 지나 좌측 골목으로 들어서자 ‘한상수 자수공방’, ‘가회 민화공방’, ‘동림매듭공방’ 등 다수의 전통 공방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사실 북촌에서는 골목 곳곳에 숨어 있는 공방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북촌은 조선시대 왕실과 관청에 필요한 생필품을 만들던 경공방들이 밀집된 곳인 만큼 지금도 그 맥을 이어가는 후예들의 공방 20~30곳이 운영 중이다.
한복·옻칠·천연염색·인형·금박·연 등 분야도 다양하다. 북촌 골목을 호젓하게 걷다가 눈에 띄는 공방에 들어서면 장인들의 작업하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 일부 공방에선 간단한 체험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었다. 신기한 듯 눈을 크게 뜨고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이것저것 바라보는 아들의 모습에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올 걸’하는 후회도 밀려온다.
공방 골목길을 따라 내려오던 길에 문을 열어 놓은 게스트하우스로 들어갔다. 게스트하우스 관리인이 외국인들에게 설명을 하는 동안 아들과 나란히 마루에 걸터앉아 휴식을 취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북촌의 고즈넉한 정경을 즐기고 있자니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따뜻한 온돌방과 바람에 흔들리는 창호문도 정겨웠다.
“이곳 온돌방은 보일러로 물을 끓여 순환하는 방식인데 옛날에는 직접 나무를 때서 열을 냈단다. 그리고 그 불로 밥을 짓고, 찌개도 끓였지.”
한옥의 포근함 때문일까. 대청마루 위에서 그대로 잠이 든 아들을 안고 골목길을 따라 내려왔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한옥의 기와지붕들이 이루는 곡선이 장관을 이룬다. 현재 북촌에는 1000여동의 한옥이 남아 있는데 특히 이곳 한옥은 근대적 도시주택 유형으로 발전한 만큼 보존 가치가 높다. 주민들 스스로 한옥을 보존할 수 있도록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짧은 시간 급하게 둘러봤지만 깊은 감동을 선사한 북촌한옥마을. 그 고즈넉한 매력이 변치않길 바랄 뿐이다.
한편 일각에서는 아쉬움을 나타내는 목소리도 있었다. 가족들과 함께 나들이를 왔다고 밝힌 박모씨(32)는 "좁은 골목길 사이사이로 주차된 차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며 "북촌을 찾는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만큼 주차장 등의 주민생활편의시설 확충이 시급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입장료를 내지 않으면 굳게 문을 걸어 잠그는 한옥이 많다는 점도 아쉽다"고 덧붙였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5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한옥은 전통과 문화가 고스란히 담긴 보물이지.”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직접 눈으로 보고 느껴야 한옥의 진정한 가치를 알 수 있다. 지난 12일 아들 손을 꼭 잡고 북촌한옥마을을 찾은 이유다.
대학시절 이후 딱 10년만에 이곳을 다시 찾았다. 단아하고 격조있는 한옥의 경관과 곳곳에 숨어있는 사적·문화재, 그리고 수많은 외국인관광객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고풍스런 모습은 예전 그대로였다.
서울 계동 현대사옥 옆, 한옥마을 입구에서부터 추억의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이게 ‘달고나’라는 것인데 아빠도 어렸을 때 자주 만들어 먹곤 했어. 할머니께 하나 만들어달라고 해봐.” 별 모양이 찍힌 달고나 하나를 아들 손에 쥐어주고 본격적인 한옥마을 보물찾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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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류승희 기자 |
◆ ‘북촌문화센터’부터 시작되는 북촌여행
계동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니 좌측으로 ‘북촌문화센터’가 보인다. 서울시가 운영하고 연중무휴로 개방하는 이곳은 북촌 도보 관광지도 및 전통문화체험 등 관련 자료를 받아볼 수 있어 북촌 보물찾기의 필수코스다.
북촌문화센터는 1921년 대궐목수가 비원의 연경당을 본떠 지은 한옥으로 건축적인 가치도 크다. ‘ㄷ’자형의 구조로 문간채를 지나 사랑채와 안채로 이어진다. 안채 뒤로 마련된 아담한 정자는 원래 사당이었지만 지금은 휴식공간으로 제공하고 있다. 단아한 한옥의 정취를 느끼며 전통 차 한잔을 마시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빨리 보물을 찾으러 가자는 아들의 성화에 못 이겨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예스러운 길을 따라 올라가니 우측으로 인촌 김성수의 옛집이 보인다. 중앙고보(중앙고등학교)의 주인이자 경성방직, 동아일보와 고려대학을 세운 김성수의 구옥(舊屋)은 옛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었다. 이 곳은 3·1운동을 위해 기독교, 천도교계, 불교계가 규합을 합의했던 역사적인 장소기도 하다.
김성수 옛집을 나오자 맞은 편 골목 끝자락에 가회동 한씨가옥이 눈에 띈다. 이 가옥은 조선 후기~일제시대 초기에 지어진 한옥으로 행랑대문채와 본채로 구성돼 있다. 본채는 사랑채 부분과 건넌방 부분이 복도를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배치돼 있는데 사랑채는 왼쪽에 현관과 홀을 내었고 서남쪽에 대청을 둬 정원을 내다볼 수 있게 했다. 대청 왼쪽에는 온돌방을, 그 앞쪽에는 주인실을 배치하고 툇마루를 돌렸다. 서양과 일본풍의 현대식 생활기능을 도입해 지은 건축물로 개화기 이후 문화주택의 초기 양식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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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류승희 기자 |
◆역사 담은 ‘중앙고’, 한옥의 정감 '한옥게스트하우스'
계동길 끝자락에 다다르자 1983년 사적으로 지정된 중앙고등학교가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일제 치하 당시 중앙고보 교사였던 송진우·현상윤 선생 등이 이 학교 숙직실에서 3·1운동 거사를 준비한 것으로 유명하단다.”
학교 앞마당에는 숙직실이 당시 모습대로 복원돼 3·1운동의 정신을 기념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중앙고등학교는 드라마 <겨울연가>의 촬영지로도 유명해 일본인관광객들이 다수 눈에 띄었다.
중앙고를 지나 좌측 골목으로 들어서자 ‘한상수 자수공방’, ‘가회 민화공방’, ‘동림매듭공방’ 등 다수의 전통 공방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사실 북촌에서는 골목 곳곳에 숨어 있는 공방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북촌은 조선시대 왕실과 관청에 필요한 생필품을 만들던 경공방들이 밀집된 곳인 만큼 지금도 그 맥을 이어가는 후예들의 공방 20~30곳이 운영 중이다.
한복·옻칠·천연염색·인형·금박·연 등 분야도 다양하다. 북촌 골목을 호젓하게 걷다가 눈에 띄는 공방에 들어서면 장인들의 작업하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 일부 공방에선 간단한 체험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었다. 신기한 듯 눈을 크게 뜨고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이것저것 바라보는 아들의 모습에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올 걸’하는 후회도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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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류승희 기자 |
공방 골목길을 따라 내려오던 길에 문을 열어 놓은 게스트하우스로 들어갔다. 게스트하우스 관리인이 외국인들에게 설명을 하는 동안 아들과 나란히 마루에 걸터앉아 휴식을 취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북촌의 고즈넉한 정경을 즐기고 있자니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따뜻한 온돌방과 바람에 흔들리는 창호문도 정겨웠다.
“이곳 온돌방은 보일러로 물을 끓여 순환하는 방식인데 옛날에는 직접 나무를 때서 열을 냈단다. 그리고 그 불로 밥을 짓고, 찌개도 끓였지.”
한옥의 포근함 때문일까. 대청마루 위에서 그대로 잠이 든 아들을 안고 골목길을 따라 내려왔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한옥의 기와지붕들이 이루는 곡선이 장관을 이룬다. 현재 북촌에는 1000여동의 한옥이 남아 있는데 특히 이곳 한옥은 근대적 도시주택 유형으로 발전한 만큼 보존 가치가 높다. 주민들 스스로 한옥을 보존할 수 있도록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짧은 시간 급하게 둘러봤지만 깊은 감동을 선사한 북촌한옥마을. 그 고즈넉한 매력이 변치않길 바랄 뿐이다.
한편 일각에서는 아쉬움을 나타내는 목소리도 있었다. 가족들과 함께 나들이를 왔다고 밝힌 박모씨(32)는 "좁은 골목길 사이사이로 주차된 차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며 "북촌을 찾는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만큼 주차장 등의 주민생활편의시설 확충이 시급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입장료를 내지 않으면 굳게 문을 걸어 잠그는 한옥이 많다는 점도 아쉽다"고 덧붙였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5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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