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울 관악구의 한 재래시장. 몇년 새 이곳을 찾는 손님의 발길이 부쩍 뜸해지면서 시장 내부는 한산하다 못해 썰렁한 모습이다. 가게를 운영하는 상인들은 매출이 형편없이 줄어 살기가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10년 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이곳에서 옷가게를 운영한다는 김모씨(48)는 장사가 안되는 탓에 하루 1만원 벌기도 힘들다고 토로한다. 김씨는 "3~5년 전까지만 해도 네가족이 먹고 살 정도는 됐는데 지금은 그때의 4분의 1도 못 벌고 있다"며 "하루라도 빨리 가게 문을 닫고 인력시장에 나가 막노동이라도 해야 할 판"이라고 씁쓸해했다.


#2. 퇴직 후 치킨집을 운영하는 이모씨(55)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한동안 밀려드는 손님에 빚까지 내 가게를 증축했다가 지금은 이자도 제대로 갚지 못할 지경이 됐다. 장사가 잘된다는 소문이 돌아 인근에 치킨집이 하나둘 들어서면서 과열경쟁이 벌어진 탓이다. 이씨는 손님을 끌기 위해 '맥주 무료', '안주서비스' 등 각종 할인혜택을 내걸었고 이로 인해 손에 쥐는 매출은 절반으로 줄었다. 그렇다고 2억원 넘게 대출받아 투자한 가게 문을 닫을 수도 없는 상황. 이씨는 "은행 대출이자까지 부담하다보니 상황이 더욱 열악하다"며 "지금은 내 인건비는 고사하고 배달 아르바이트생 일당 주기도 벅차다"고 토로했다.


 

/사진=머니투데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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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에게는 잘 알려진 공식 하나가 있다. '사원→대리→차장→부장→닭튀김 사장'이라는 이른바 '닭튀김 수렴공식'. IT업계에서 처음 쓰인 이 공식은 이제 무엇을 전공했든 일단 사회에 뛰어들면 결국 같은 경로를 걷게 된다는 의미로 통용된다. 열악한 근무여건, 어려운 취업난을 뚫는 대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포화상태에 이른 '자영업 블랙홀'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처지를 함축적으로 담아낸 말이기도 하다.


◆빚 속으로 침몰하는 자영업자

닭튀김 수렴공식은 누구나 될 수 있는 현실. 자조 섞인 한탄으로만 치부하기에는 국내 자영업자들이 맞닥뜨린 현실은 냉혹하기만 하다. 최근 수년간 자영업 과잉현상이 심해졌고 이들의 퇴출 역시 가속화되고 있다.


중소기업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 '자영업 정책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따르면 올 7월 소상공인 경기실사지수는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직후와 버금가는 수준의 45.4를 기록했다. 전통시장의 총 매출은 지난해 20조7000억원으로 지난 2001년(40조1000억원)에 비해 48% 급감했다.

자영업자 수는 2000년대 초반을 정점으로 하락하는 추세였지만 베이비붐세대(1955~1963년생)의 자영업자 편입으로 지난 2010년 이후 자영업 과잉심화 재연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베이비붐세대인 50대 자영업자 비중은 지난 2009년 27.4%에서 지난해 30.8%로 증가했다. 이 중 생계형창업 비중은 지난 2007년 79.2%에서 지난 2010년 80.2%, 지난해 82.6%로 이어지며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다.


너도나도 창업에 뛰어들다보니 자영업자의 생존율은 갈수록 떨어졌다. 창업 이후 생존하는 비율 역시 1년 후는 83.8%로 높았지만 창업 3년 후 40.5%로 떨어졌고 창업 5년 후에는 29.6%에 불과했다.

자영업자 150만명이 최저임금도 못 번다는 조사결과도 나왔다. 전순옥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의원에 따르면 국내 자영업자 4명 중 1명은 최저임금 미만을 버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저임금 미만 임금근로자 비율인 11.4%보다 두배 이상 높은 수치다. 이는 다시 자영업자를 빚더미에 앉히는 구조적인 악순환을 야기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자영업자의 1인당 대출은 지난해 3월 말 평균 1억2000만원으로 임금근로자 4000만원의 3배였다.


 

[커버스토리] '오상식 과장'보다 못한 사장님

◆동종업종 과당경쟁 심각

자영업자가 비정규직보다 부채와 노동시간은 많지만 소득은 비슷한, 사실상 사회적으로 가장 열악한 계층으로 전락했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자영업자들이 무너지는 가장 큰 원인으로 '과밀화'와 '과당경쟁'을 꼽았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서울시에 미용실은 1㎢당 평균 35.9개가 집중돼 있고 일반학원은 12.6개, 치킨집 6.3개, 제과점 5.1개가 들어서 있다. 특별한 재주 없이도 진입장벽이 낮아 '남들이 하는' 업종을 선택했다가 특별한 재주가 없어 경쟁에서 밀려나는 셈이다.

특히 퇴직 후 아무런 대책 없이 자신감 하나로 창업했다간 낭패 보기 일쑤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창업하다 보니 어제 넥타이를 매고 온 손님이,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가 옆 가게 주인이 돼 경쟁하는 경우가 생길 정도다. 그만큼 과열경쟁에서 살아남을 나만의 차별성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렇지 못할 경우 폐업으로 가는 길이 한층 빨라질 수 있다.

이대규 서울신용보증재단 상담사는 "과거의 유통구조시스템이 많이 무너지고 대기업들이 들어서면서 영세자영업자들은 살아남기 힘든 게 사실"이라며 "창업에 앞서 창업의 기본요소와 차별화된 경쟁력을 두루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자영업자 생존 대안법은?

이대규 상담사는 구체적인 대안으로 서울신용보증재단 경영지도프로그램인 ▲서민자영업 특별지원 ▲슈퍼닥터 ▲찾아가는 현장컨설팅 ▲자영업 협업화 지원 등을 제시했다.

서민자영업자 특별지원프로그램은 생활밀접형 30업종을 지정, 생계위협을 받고 있는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무료 경영개선교육과 컨설팅, 멘토링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현재 선발된 270여 업체가 이 지원을 받고 있다.

슈퍼닥터는 기업형 슈퍼마켓(SSM)의 진출로 경영애로를 겪고 있는 중소슈퍼마켓을 대상으로 전문가의 맞춤형 컨설팅 및 장치나 인테리어 등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자영업 협업화는 공동이익을 추구하는 3개 이상의 자영업자 대상 공동판매장·공동브랜드·공동운영시스템 구축 등에 소요되는 사업비의 90%를 무료로 지원해주는 특별지원프로그램으로, 최고 2000만원까지 지원한다.

이대규 상담사는 "30~40대 창업은 항상 가장 많은 분포를 차지했는데 앞으로는 50대 이상 자영업자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며 "자영업시장에 뛰어들었다면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잘 고려해 정부로부터 받을 도움은 어떤 것이 있는지, 생존포인트는 무엇인지 등 맞춤형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5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