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조 모신 ‘용인 심곡서원’, 국가지정 문화재 된다
강인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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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곡서원 전경 |
‘용인 심곡서원’은 조선 중종 때 사림파의 영수였던 정암 조광조(1482~1519년)를 주향(主享)으로 하는 서원이다. 주향이란 서원에 신위를 봉안할 때 가운데에 첫 번째로 모시는 것을 말하며, 두 번째 이후로 봉안하는 것은 배향이라고 한다.
용인은 조광조가 부친의 시묘(侍墓)살이를 한 곳이자 조광조의 묘소가 있는 지역으로, 1605년 그의 묘소 인근에 사우(祠宇)가 조성되었다. 사우란 선조(先祖) 또는 선현의 신주(神主)나 영정(影幀)을 모셔 두고 연 수차례에 걸쳐 제향을 행하는 장소를 만하는데, 이 사우가 조선 효종 원년(1649)에 ‘심곡(深谷)’이라는 이름과 현판, 토지, 노비 등을 받으면서, 사우를 현 위치로 옮기고 강당(講堂) 등을 중창한 것이 현재의 심곡서원이다.
강당이 전면에 위치하고, 사우가 뒤쪽에 배치된 전학후묘(前學後廟) 형식을 갖춘 심곡서원은 조선 시대 서원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심곡서원은 1871년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시 조광조를 모신 서원 중 유일하게 훼손되지 않고, 현재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어 가치가 있다.
사우와 강당은 각각 1636년과 1657년 작성된 상량문(上樑文, 건물을 새로 짓거나 고친 내력을 적은 글)이 최근 발견되었으며, 우암 송시열이 지은 심곡서원 강당기(講堂記, 강당 건축을 기념하여 지은 기문 / 1673년)를 비롯하여 ▲ 심곡서원 학규(學規, 서원 등에서 독자적으로 정하여 지키고자 한 규칙 / 1747년) ▲ 숙종 대왕 어제(御製, 임금이 지은 글 / 1740년) 등이 전하고 있어 심곡서원의 역사와 내력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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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조가 직접 심었다 전해지는 느티나무 |
한편 문화재청은 30일간의 예고 기간을 통해 의견을 수렴한 후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지정 여부를 최종적으로 확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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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귀 기자
머니S 강인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