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의 도산대로 사거리에 있는 한 수입차 전시장. 30대로 보이는 부부가 찾아와 중형세단을 둘러보며 구매상담을 받고 있다. 밝은 표정으로 차에 대한 브리핑을 듣는 아내와 달리 남편의 표정은 어딘가 불편해 보인다.

남편은 이미 타사 브랜드의 차가 눈에 들어온 상태. 며칠 전 시운전을 해본 뒤 확실히 마음을 정했다. 탄탄한 주행성능과 기본기에 충실한 퍼포먼스까지 흠잡을 데가 없이 완벽했던 것. 깔끔한 디자인에 가격마저 부담스럽지 않으니 다른 차를 더 볼 것도 없었다.

하지만 아내는 남편의 마음을 사로잡은 차가 영 탐탁잖다. 아이들을 태우고 다니기에 비좁은 뒷좌석과 트렁크 공간이 눈에 거슬렸다. 매장에 들어서기 바쁘게 카탈로그를 펼쳐놓고 계산기를 두드리며 본인이 제시할 수 있는 '최저가격'이라며 들이미는 영업사원의 행동도 불만이었다.

이에 비해 뒤이어 찾은 매장의 직원은 차를 사려는 목적, 여유자금, 향후 가족계획, 예상수입 등을 꼼꼼하게 물어본 뒤 맞춤형 차량을 추천했다. 게다가 매달 차량을 관리해주는 서비스도 제공한다고 덧붙였다. 무언가에 꽂히면 '올인'하는 스타일인 남편은 흔들리는 아내를 보며 "앞서 본 차의 장점이 더 많다"고 설득에 나섰다. 과연 이 부부는 어떤 차를 샀을까.

 

/사진=뉴스1 박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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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W 한독모터스 분당전시장 및 서비스센터. /사진=머니투데이 DB
BMW 한독모터스 분당전시장 및 서비스센터. /사진=머니투데이 DB
[커버스토리] 남편이 고른 차 vs 아내가 고른 차, 뭘 샀을까

◆'여심=성공' 필수공식

정답은 아내가 '꽂힌' 후자의 차다. 아내의 마음을 훔치는 데 성공한 영업사원은 "부부가 함께 오면 무조건 아내를 공략하는 게 나만의 영업비법"이라고 귀띔했다.

여성의 마음, 즉 여심(女心) 을 잡아야 성공이 보인다. 여성이 막대한 사회적 영향력을 끼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소비시장에서는 남성보다 더욱 큰 존재로 자리매김했기 때문. 일부 마케팅전문가 사이에선 "모든 소비재의 80% 이상은 여성이 구매한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다. 여성소비시장이 중국시장보다 더 크다고 진단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최근에는 전통적으로 여성고객을 주 타깃으로 마케팅을 펼친 패션·뷰티·온라인쇼핑 분야는 물론이고 전자·자동차·위스키와 같이 남성미가 물씬 풍기는 품목과 IT기기로도 여풍이 번지고 있다.

마케팅업계 한 관계자는 "요즘 남자들은 어떤 상품을 구매할 때 대부분이 '와이프한테 물어보고요'라고 대답한다"며 "그만큼 구매에 있어 여성의 권한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는 여성의 구매스타일이 훨씬 효율적이고 구매 후 만족도가 높다는 것을 남성들도 인정한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사진=뉴스1 박지혜 기자
/사진=뉴스1 박지혜 기자
삼성전자가 여성 고객들을 잡기 위해 출시했던 갤럭시S2 바비 브라운 리미티드 에디션. /사진=머니투데이 DB
삼성전자가 여성 고객들을 잡기 위해 출시했던 갤럭시S2 바비 브라운 리미티드 에디션. /사진=머니투데이 DB
기아차가 여성 고객을 위해 실시했던 뷰티시네마데이. /사진=머니투데이 DB
기아차가 여성 고객을 위해 실시했던 뷰티시네마데이. /사진=머니투데이 DB

◆전문직 늘고 소득도 증가

이렇듯 여성이 핵심소비 집단으로 떠오른 배경은 무엇일까. 우선 과거에 비해 여성의 경제활동이 활발하고 사회·문화적 활동도 증가하면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됐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52.6%. 이 중 20대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62.1%로 20대 남성(61.1%)을 1%포인트 앞섰다. 지난 2002년만 해도 남성보다 9.8%포인트 낮았던 20대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지난 2012년 2분기에 처음으로 남성을 추월한 이후 단 한번도 역전을 허용하지 않았다.

30대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 역시 지난해 사상최고를 기록했다. 지난 2009년 54.2%에서 2010년 55.3%, 2011년 55.5%, 2012년 56.0%에 이어 지난해 57.0%로 꾸준히 상승추세를 보였다. 고용은 소득으로, 소득은 다시 구매력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증가하면서 전문직 비율도 점차 늘어났다. 통계청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여성취업자 1049만4000명 가운데 전문직·관리직 종사자가 234만8000명으로 22%에 이르렀다. 이는 지난 1995년 93만9000명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여성의 경제적 지위는 앞으로 더 높아질 전망이다. 지난해 서울시내 여학생의 대학진학률은 59.7%로 남학생(51.9%)보다 높았는데 지난 2008년부터 여학생의 진학률이 남학생을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 관계자는 "전문직 중에서도 의사, 판사, 변호사 등 고임금 전문직 진출 여성이 10년 전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며 "대학진학 여성이 꾸준히 급증함에 따라 여성의 전문직 진출도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커버스토리] 남편이 고른 차 vs 아내가 고른 차, 뭘 샀을까
[커버스토리] 남편이 고른 차 vs 아내가 고른 차, 뭘 샀을까

◆가정경제 주도권도 '아내가'

물론 결혼과 출산의 영향으로 기혼여성들의 사회참여는 저조한 편이다. 하지만 이것이 구매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결혼 후 부부의 경제주도권을 대부분 여성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실제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기혼 직장인을 대상으로 '가정경제 주도권'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남성의 63%가 아내에게 경제권이 있다고 응답했다. 남성직장인 중 절반은 아내에게 용돈을 받아 생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흐름은 여성들의 구매영역까지 바꿨다. 특히 주택이나 자동차, 전자제품 등과 같은 고관여제품(소비자가 구매과정에서 많은 고민을 하는 제품)의 구매 결정도 남성이 아닌 여성이 주도한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이는 여성고객을 대상으로 한 창업은 물론이고 앞으로는 남성고객을 대상으로 한 창업을 생각할 때도 여심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기업들은 너도나도 '여심 잡기'에 나서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 여성이란 키워드는 구매력뿐 아니라 활발한 입소문까지 기대할 수 있는 매개체다. 여성을 통해 지인이나 가족, 연인 등의 동반소비 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서다.

또 비교하고 따져보는 여성들의 까다로운 구매성향은 오히려 충성도 높은 고객층을 만들어 한번 만족한 상품에 대해 지속적인 재구매·재방문 효과를 볼 수 있다. 기업들로서는 당연히 여성에게 어필할 수 있는 다양한 마케팅전략을 선보이며 여심공략을 펼칠 수밖에 없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6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