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꿈마저 송두리째 앗아간 '갑의 횡포'
뿔난 미생들, '완생'의 조건 / <인터뷰> 정규직 미술감독보조의 하소연
정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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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대한민국 청춘들이 열정을 빌미로 노동력을 착취하는 사회에서 신음하고 있다. 원하는 일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저임금 감수'라는 비정상적 공식이 우리 사회 내면에 뿌리 깊게 박혀버린 것이다. <머니위크>는 청춘의 꿈을 선택한 대신 잔인한 대가를 강요하는 청년 취업의 문제점이 어디까지 확산돼 있는지 그 실태를 낱낱이 들여다봤다.
“미술감독을 꿈꾸며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지금은 그 열정이 다 사라졌어요.”
대한민국 청년들이 아프다.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만큼 힘들다는 취업문을 뚫어도 그 문 너머에는 ‘쥐꼬리’만큼의 월급에 그 이상의 열정을 요구하는 회사가 넘쳐나서다. 이른바 ‘열정페이’로 고통 받은 청년들은 꿈에 대한 열정마저 사라졌노라고 말한다.
기자가 만난 강선아씨(27·가명)도 그랬다. 대학에서 실내디자인을 전공한 강씨는 대학시절부터 꿈꿔온 미술감독을 위해 졸업하자마자 곧바로 하청 광고업체의 미술팀에 입사했다. 3개월의 인턴직을 포함해 1년3개월간의 정규직까지 총 1년6개월간 꿈을 좇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1년6개월, 열정이 고갈되는 시간
“원래 (방송·디자인) 이쪽 업계가 근무환경이 열악한 것은 알고 있었어요. 학부생 때 선배들의 경험담도 들었고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상상 이상이었어요. 1년여간 일하면서 근무량에 비해 지나치게 적은 월급에 버티지 못하고 퇴사한 직장동료가 12명이나 됐어요.”
일은 고됐다. 정규근무시간은 주5일제로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하지만 무대설치가 필요한 프로젝트 일정이 잡히면 새벽 첫차도 없는 시간에 나가 다음날 새벽 첫차가 다닐 즈음 끝나는 날이 계속됐다. 공휴일도 예외는 없었다.
“새벽 6시에 집합하라고 하면 새벽 5시 이전에 집을 나서야 해요. 첫차도 안 다니는 시간에 출근해야 함에도 회사에서는 ‘근처 찜질방에서 자면 되잖아’란 식이었어요. 이른 출근에도 퇴근이 빨라지지도 않았죠. 다음날 새벽 4시에 끝나는 날도 많았어요. 구인 당시 사측은 주5일로 공지했지만 워낙 변수가 많은 동네(방송·디자인업계)다 보니 주말과 공휴일에도 근무하는 것은 당연했어요. 실제 근무하는 동안 주말·공휴일 개념 없이 거의 한달 내내 일했고 집에 들어가는 건 연례행사에 가까웠어요.”
강씨의 말대로라면 정규근무시간인 9시간 외 초과근무가 8시간 이상이었다. 보통의 정규직이라면 짭짤한 초과근무수당을 기대해도 됐을 터. 하지만 기대는 실망으로 이어졌다.
“야근수당을 받았으면 지금 아마 엄청 풍족하게 살고 있을 걸요? 초과근무수당은 전혀 지급된 바 없습니다. 인턴 3개월 당시에는 기본급 100만원이었고 정규직으로 넘어가면서 10만원 오른 110만원을 받았어요. 이마저도 세금을 떼고 나면 103만원. 구인 당시 사측은 ‘충분한 인센티브가 있다’고 밝혔지만 이는 사실과 달랐어요. 야근수당 대신 프로젝트 건당 인센티브가 지급되기는 했어요. 연차에 따라 5만원에서 최대 30만원씩. 하지만 업계 특성상 대부분의 근로자들이 연차가 낮았기 때문에 일한 것에 비하면 터무니없는 급여를 받았습니다.”
근무형태는 정규직이었지만 비정규직과 다를 바 없었다. 기본급은 100만원을 상회했지만 식대와 차비를 제하면 강씨의 급여에는 ‘88만원 세대’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열정만 있으면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어요. 일이 고되더라도 나중을 생각하면 ‘그래, 뭐라도 될 수 있겠지’라며 버티고 버텼던 건데 정말 아니었어요.”
강씨 주장에 따르면 그녀가 일한 회사를 비롯해 해당업계의 몇몇 업체는 많은 인력이 필요한 프로젝트에 소수의 인력을 투입했다. 특히 인턴을 채용함으로써 비용을 낮추는 데 톡톡한 효과를 봤다. 사측은 프로젝트가 끝날 무렵 무언의 압박을 가해 인턴들이 회사를 관두도록 종용했다고 그녀는 주장했다.
“회사는 적은 인력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려고 해요. 한명이 붙을 일이 아닌데…. 대학 갓 졸업한 친구들을 인턴으로 고용해서 3개월 내 지쳐 나가게 하는 시스템이라고 해야 하나? 순진한 사회초년생들을 끌어들여서 노동력을 값싸게 착취하고 일정기간이 지나 일감이 줄면 직원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면서 스스로 질려 퇴사하게 만드는 회사가 많더라고요.”
◆88만원 세대의 복불복 미래
강씨가 3개월 인턴으로 시작할 당시 회사의 대표(미술감독)는 이렇게 말했다. “처음엔 다 이렇게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시작해도 나중엔 나처럼 (성공해) 미술감독으로 올라갈 수 있다”라고. 열정 대신 지불받은 달콤한 미래에 강씨를 비롯한 그의 동료들이 20대의 꽃같은 시간을 88만원 세대로 보냈다.
그러나 달콤한 미래는 복불복이었다. 오지 않을 미래에 쓸 열정이 더 이상 없었다. 강씨는 지난 2013년 겨울, 1년6개월의 회사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퇴사 후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15일치의 급여와 퇴직금은 지급할 수 없다”는 회사 측의 통보였다. 그리고 근로기간 만큼의 법적 공방이 그녀를 기다렸다.
“퇴직 후 14일이 지나도 15일치 월급과 퇴직금이 지급되지 않았어요. 사측에 연락하니 ‘줄 이유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받아야 하는 권리라고 생각해서 진정서를 제출했는데 합의가 안돼 고용노동부에 신고했어요. 사측이 지급할 수 없다고 버티면서 퇴사 후 1년간의 법적 공방을 거치고서야 퇴직금 200만원을 손에 쥐었어요.”
200만원과 바꾼 1년이란 시간 동안 강씨는 심리적인 압박감에 힘이 부쳤다고 토로했다. 그녀는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지만 피해자인데 피의자가 된 현 상황이 너무 억울해서 근로자의 정당한 권리를 찾기 위해서라도 소송을 포기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최악의 시간이었어요. 업계가 좁다 보니 처음에는 두려워서 여러 가지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다시는 이곳에 발을 들이지 못하겠다’, ‘이 돈 받아서 뭘 어쩌겠다고’ 수많은 생각이 스쳤죠. 다른 동기들은 ‘더러워서 안 받겠다’며 퇴직금을 포기했지만 지금 피하면 앞으로 어떤 일에도 당당하게 대처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소제기를 했어요. 후회는 없어요. 지난 1년간의 소송으로 스물여섯을 악몽처럼 보냈지만 소송 후에는 앞으로 당당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강씨는 다시 또 새로운 꿈을 꾼다. 1년간을 끌어온 법적 공방도 끝났고 올 한해는 취업준비생으로 다른 분야에서 다시 도전할 계획이다. 그런 그녀가 자신을 비롯한,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이 땅의 ‘미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단다.
“이전까지는 ‘갑의 횡포’ 관련 기사가 쏟아져도 읽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었어요. 하지만 제가 당하고 나니 남의 일이 아니더라고요. 회사는 노동을 착취해 이익을 얻지만 정작 근로자에게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꿈을 위해서라도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6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대한민국 청년들이 아프다.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만큼 힘들다는 취업문을 뚫어도 그 문 너머에는 ‘쥐꼬리’만큼의 월급에 그 이상의 열정을 요구하는 회사가 넘쳐나서다. 이른바 ‘열정페이’로 고통 받은 청년들은 꿈에 대한 열정마저 사라졌노라고 말한다.
기자가 만난 강선아씨(27·가명)도 그랬다. 대학에서 실내디자인을 전공한 강씨는 대학시절부터 꿈꿔온 미술감독을 위해 졸업하자마자 곧바로 하청 광고업체의 미술팀에 입사했다. 3개월의 인턴직을 포함해 1년3개월간의 정규직까지 총 1년6개월간 꿈을 좇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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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기사내용과 무관. /사진=머니위크 |
◆1년6개월, 열정이 고갈되는 시간
“원래 (방송·디자인) 이쪽 업계가 근무환경이 열악한 것은 알고 있었어요. 학부생 때 선배들의 경험담도 들었고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상상 이상이었어요. 1년여간 일하면서 근무량에 비해 지나치게 적은 월급에 버티지 못하고 퇴사한 직장동료가 12명이나 됐어요.”
일은 고됐다. 정규근무시간은 주5일제로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하지만 무대설치가 필요한 프로젝트 일정이 잡히면 새벽 첫차도 없는 시간에 나가 다음날 새벽 첫차가 다닐 즈음 끝나는 날이 계속됐다. 공휴일도 예외는 없었다.
“새벽 6시에 집합하라고 하면 새벽 5시 이전에 집을 나서야 해요. 첫차도 안 다니는 시간에 출근해야 함에도 회사에서는 ‘근처 찜질방에서 자면 되잖아’란 식이었어요. 이른 출근에도 퇴근이 빨라지지도 않았죠. 다음날 새벽 4시에 끝나는 날도 많았어요. 구인 당시 사측은 주5일로 공지했지만 워낙 변수가 많은 동네(방송·디자인업계)다 보니 주말과 공휴일에도 근무하는 것은 당연했어요. 실제 근무하는 동안 주말·공휴일 개념 없이 거의 한달 내내 일했고 집에 들어가는 건 연례행사에 가까웠어요.”
강씨의 말대로라면 정규근무시간인 9시간 외 초과근무가 8시간 이상이었다. 보통의 정규직이라면 짭짤한 초과근무수당을 기대해도 됐을 터. 하지만 기대는 실망으로 이어졌다.
“야근수당을 받았으면 지금 아마 엄청 풍족하게 살고 있을 걸요? 초과근무수당은 전혀 지급된 바 없습니다. 인턴 3개월 당시에는 기본급 100만원이었고 정규직으로 넘어가면서 10만원 오른 110만원을 받았어요. 이마저도 세금을 떼고 나면 103만원. 구인 당시 사측은 ‘충분한 인센티브가 있다’고 밝혔지만 이는 사실과 달랐어요. 야근수당 대신 프로젝트 건당 인센티브가 지급되기는 했어요. 연차에 따라 5만원에서 최대 30만원씩. 하지만 업계 특성상 대부분의 근로자들이 연차가 낮았기 때문에 일한 것에 비하면 터무니없는 급여를 받았습니다.”
근무형태는 정규직이었지만 비정규직과 다를 바 없었다. 기본급은 100만원을 상회했지만 식대와 차비를 제하면 강씨의 급여에는 ‘88만원 세대’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열정만 있으면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어요. 일이 고되더라도 나중을 생각하면 ‘그래, 뭐라도 될 수 있겠지’라며 버티고 버텼던 건데 정말 아니었어요.”
강씨 주장에 따르면 그녀가 일한 회사를 비롯해 해당업계의 몇몇 업체는 많은 인력이 필요한 프로젝트에 소수의 인력을 투입했다. 특히 인턴을 채용함으로써 비용을 낮추는 데 톡톡한 효과를 봤다. 사측은 프로젝트가 끝날 무렵 무언의 압박을 가해 인턴들이 회사를 관두도록 종용했다고 그녀는 주장했다.
“회사는 적은 인력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려고 해요. 한명이 붙을 일이 아닌데…. 대학 갓 졸업한 친구들을 인턴으로 고용해서 3개월 내 지쳐 나가게 하는 시스템이라고 해야 하나? 순진한 사회초년생들을 끌어들여서 노동력을 값싸게 착취하고 일정기간이 지나 일감이 줄면 직원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면서 스스로 질려 퇴사하게 만드는 회사가 많더라고요.”
◆88만원 세대의 복불복 미래
강씨가 3개월 인턴으로 시작할 당시 회사의 대표(미술감독)는 이렇게 말했다. “처음엔 다 이렇게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시작해도 나중엔 나처럼 (성공해) 미술감독으로 올라갈 수 있다”라고. 열정 대신 지불받은 달콤한 미래에 강씨를 비롯한 그의 동료들이 20대의 꽃같은 시간을 88만원 세대로 보냈다.
그러나 달콤한 미래는 복불복이었다. 오지 않을 미래에 쓸 열정이 더 이상 없었다. 강씨는 지난 2013년 겨울, 1년6개월의 회사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퇴사 후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15일치의 급여와 퇴직금은 지급할 수 없다”는 회사 측의 통보였다. 그리고 근로기간 만큼의 법적 공방이 그녀를 기다렸다.
“퇴직 후 14일이 지나도 15일치 월급과 퇴직금이 지급되지 않았어요. 사측에 연락하니 ‘줄 이유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받아야 하는 권리라고 생각해서 진정서를 제출했는데 합의가 안돼 고용노동부에 신고했어요. 사측이 지급할 수 없다고 버티면서 퇴사 후 1년간의 법적 공방을 거치고서야 퇴직금 200만원을 손에 쥐었어요.”
200만원과 바꾼 1년이란 시간 동안 강씨는 심리적인 압박감에 힘이 부쳤다고 토로했다. 그녀는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지만 피해자인데 피의자가 된 현 상황이 너무 억울해서 근로자의 정당한 권리를 찾기 위해서라도 소송을 포기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최악의 시간이었어요. 업계가 좁다 보니 처음에는 두려워서 여러 가지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다시는 이곳에 발을 들이지 못하겠다’, ‘이 돈 받아서 뭘 어쩌겠다고’ 수많은 생각이 스쳤죠. 다른 동기들은 ‘더러워서 안 받겠다’며 퇴직금을 포기했지만 지금 피하면 앞으로 어떤 일에도 당당하게 대처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소제기를 했어요. 후회는 없어요. 지난 1년간의 소송으로 스물여섯을 악몽처럼 보냈지만 소송 후에는 앞으로 당당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강씨는 다시 또 새로운 꿈을 꾼다. 1년간을 끌어온 법적 공방도 끝났고 올 한해는 취업준비생으로 다른 분야에서 다시 도전할 계획이다. 그런 그녀가 자신을 비롯한,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이 땅의 ‘미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단다.
“이전까지는 ‘갑의 횡포’ 관련 기사가 쏟아져도 읽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었어요. 하지만 제가 당하고 나니 남의 일이 아니더라고요. 회사는 노동을 착취해 이익을 얻지만 정작 근로자에게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꿈을 위해서라도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6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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