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누굴 위한 '건보료 개편'입니까
'오락가락' 건보료 개편 / 정부 갈지자에 국민 신뢰 '곤두박질'
박성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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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을 놓고 정부가 오락가락하다 보니 제도가 제대로 고쳐질지 의문이다. 현행 건보료 부과체계는 공정성과 형평성 차원에서 허점이 많다. 잘못된 것은 뜯어 고치는 게 상식이다. <머니위크>는 현행 건강보험료 부과체계의 문제점과 앞으로의 개선방향을 살펴봤다.
“올해 안에는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안을 만들지 않기로 했습니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기획단의 개선안 공식발표를 하루 앞둔 지난 1월28일 서울 마포구 국민건강보험공단 기자실에서 폭탄선언을 했다. 38년 만에 대대적인 손질을 하던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사업은 이렇게 기약 없이 미뤄지는 듯했다.
문 장관은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을 연기해 시간을 두고 검토하겠다”고 해명했지만 내년 4월 총선이 예정돼 있어 다시 추진하기 쉽지 않다. 일부 중상층과 고소득층에게 부담을 더 지우는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안 폐지는 박근혜 정부의 기조인 ‘증세 없는 복지’를 실천하려는 것으로 포장됐지만 사실상 백지화된 셈이었다.
하지만 현행 건보료 부과체계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재추진이 논의됐다. 새누리당 지도부의 반대로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안은 9일 만에 폐기 방침을 번복했다. 불과 9일 사이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안은 ‘발표 예정→사실상 백지화→부분 개편→원점 재추진’ 등으로 오락가락했다.
앞서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이 주민세·자동차세 인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가 정치권의 반대에 부딪혀 하루 만에 말을 바꾼 데 이어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사업까지 우왕좌왕하면서 국민은 매우 혼란스럽다.
◆‘불씨 또 꺼질라’ 꼬꾸라진 정부 신뢰
새누리당은 지난 2월25일 국회에서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을 위한 첫 당정협의체 회의를 열었다. 지난 2월6일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안 발표가 번복되면서 당정협의체를 구성해 새 개선안을 만들기로 한 것. 첫 회의인 만큼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기획단이 만든 방안을 보고받고 복지부 입장과 그동안의 경과를 검토하는 자리였다.
정부가 올해 상반기 안에 개선안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밝히면서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사업은 다시 불이 붙었다. 하지만 과연 얼마나 충실히 개선될지는 미지수다. 앞서 지난 1월8일 복지부는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기획단이 1년6개월 동안 활동한 결과를 내놓기 위한 최종 회의를 연기했다.
지난 2013년 7월 발족한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기획단은 불공평한 건보료 부과체계를 뜯어고치기 위해 민간과 학계 전문가들로 꾸려졌다. 기획단은 소득 중심의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안의 7가지 모형을 만들었다. 하지만 복지부는 공식발표를 하루 앞둔 같은 달 28일 돌연 정책을 포기했다.
비난 여론에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사업을 다시 재추진키로 했지만 그동안 정책이 오락가락했던 걸 고려하면 불씨가 언제 또 꺼질지 모른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만큼 국민들의 신뢰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넘쳐나는 민원…방치된 현행 건보료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안의 백지화를 놓고 여론의 비난이 쏟아진 것은 당연한 결과다. 실제로 지난 2월25일 복지부 홈페이지 게시판에 글을 올린 한 화물차운전사는 “죽음으로 내모는 듯한 독촉장을 받았다”고 호소했다. 그는 “아내와 나의 연소득이 총 315만8189원인데 국민건강보험료를 연 284만9040원 내라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다”고 토로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접수된 민원도 건보료 관련 내용이 대부분이다. 김성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건보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연도별 민원접수 현황자료에 따르면 건보료 부과체계개선과 관련된 민원은 전체 민원의 80%를 차지한다. 지난해는 민원 7만6343건 중 6만399건이 건보 가입자격, 부과기준, 징수 관련 민원이다.
김 의원은 “일정한 소득이 없는 저소득층이나 지역가입자에게 고액의 건보료를 물리는 현행 건보료 체계에 대한 불만이 상당하다”며 “고소득자와 자산가들의 건보료 회피와 제도의 허점은 건강보험에 대한 국민 불신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정부, 처음부터 의지 없었다”
이처럼 국민의 불만이 빗발치고 있음에도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사업은 한때 백지화될 뻔했다. 더구나 개선안 폐지라는 결과를 끄집어 낸 속사정도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증세 논란과 연말정산 등으로 여론이 악화되자 아예 취소해버린 것인데 ‘지나친 눈치 보기’라는 지적이 난무한다.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안의 특징은 소득 중심의 단일한 보험료 부과기준을 적용한다는 점이다. 이 개선안을 시행하면 자칫 연말정산으로 분노한 직장인들을 더 자극할 수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월급 외에 임대사업이나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별도의 소득에 대한 보험료를 내야 한다. 따라서 저소득 지역가입자는 보험료가 줄고 고소득 직장인은 보험료가 올라간다.
따라서 정부가 연말정산으로 인한 분노가 가라앉을 것으로 예상되는 시기에 개선안을 발표하려다 여의치 않자 아예 백지화시킨 것 이라는 비난에 직면했다.
심지어 건보료 부과체계를 개선할 의지가 처음부터 없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사업이 우왕좌왕하자 “박근혜 정부가 처음부터 의지가 없었던 게 아니냐”며 강도 높은 질타를 퍼부었다.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사업은 박 대통령이 대선과정에서 공약했고 당선 후 1년6개월 동안 준비한 국정과제다. 복지부 장관이 청와대와 상의 없이 혼자 판단해 사실상 백지화 결정을 했다는 점이 의문스럽다는 게 안 의원의 주장이다. 결국 증세 논란에 연말정산 후폭풍까지 겹쳐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청와대의 지시를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해석이다.
안 의원은 지난 2월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국민들은 복지부 장관의 무능을 확인했고 정부와 대통령도 가장 중요한 대국민 신뢰를 잃었다”고 비판했다.
결국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사업은 우여곡절 끝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정부가 이를 다시 제대로 추진할지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많다. 현행 건보료 체계는 공정성과 합리성 측면에서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를 바로잡는 일이 개혁의 일환이자 공약사항인 만큼 정부가 소신과 신념을 갖고 신속히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얼렁뚱땅했다가는 정부에 대한 불신만 더 키울 수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7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기획단의 개선안 공식발표를 하루 앞둔 지난 1월28일 서울 마포구 국민건강보험공단 기자실에서 폭탄선언을 했다. 38년 만에 대대적인 손질을 하던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사업은 이렇게 기약 없이 미뤄지는 듯했다.
문 장관은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을 연기해 시간을 두고 검토하겠다”고 해명했지만 내년 4월 총선이 예정돼 있어 다시 추진하기 쉽지 않다. 일부 중상층과 고소득층에게 부담을 더 지우는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안 폐지는 박근혜 정부의 기조인 ‘증세 없는 복지’를 실천하려는 것으로 포장됐지만 사실상 백지화된 셈이었다.
하지만 현행 건보료 부과체계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재추진이 논의됐다. 새누리당 지도부의 반대로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안은 9일 만에 폐기 방침을 번복했다. 불과 9일 사이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안은 ‘발표 예정→사실상 백지화→부분 개편→원점 재추진’ 등으로 오락가락했다.
앞서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이 주민세·자동차세 인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가 정치권의 반대에 부딪혀 하루 만에 말을 바꾼 데 이어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사업까지 우왕좌왕하면서 국민은 매우 혼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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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스1 허경 기자 |
◆‘불씨 또 꺼질라’ 꼬꾸라진 정부 신뢰
새누리당은 지난 2월25일 국회에서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을 위한 첫 당정협의체 회의를 열었다. 지난 2월6일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안 발표가 번복되면서 당정협의체를 구성해 새 개선안을 만들기로 한 것. 첫 회의인 만큼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기획단이 만든 방안을 보고받고 복지부 입장과 그동안의 경과를 검토하는 자리였다.
정부가 올해 상반기 안에 개선안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밝히면서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사업은 다시 불이 붙었다. 하지만 과연 얼마나 충실히 개선될지는 미지수다. 앞서 지난 1월8일 복지부는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기획단이 1년6개월 동안 활동한 결과를 내놓기 위한 최종 회의를 연기했다.
지난 2013년 7월 발족한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기획단은 불공평한 건보료 부과체계를 뜯어고치기 위해 민간과 학계 전문가들로 꾸려졌다. 기획단은 소득 중심의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안의 7가지 모형을 만들었다. 하지만 복지부는 공식발표를 하루 앞둔 같은 달 28일 돌연 정책을 포기했다.
비난 여론에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사업을 다시 재추진키로 했지만 그동안 정책이 오락가락했던 걸 고려하면 불씨가 언제 또 꺼질지 모른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만큼 국민들의 신뢰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넘쳐나는 민원…방치된 현행 건보료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안의 백지화를 놓고 여론의 비난이 쏟아진 것은 당연한 결과다. 실제로 지난 2월25일 복지부 홈페이지 게시판에 글을 올린 한 화물차운전사는 “죽음으로 내모는 듯한 독촉장을 받았다”고 호소했다. 그는 “아내와 나의 연소득이 총 315만8189원인데 국민건강보험료를 연 284만9040원 내라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다”고 토로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접수된 민원도 건보료 관련 내용이 대부분이다. 김성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건보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연도별 민원접수 현황자료에 따르면 건보료 부과체계개선과 관련된 민원은 전체 민원의 80%를 차지한다. 지난해는 민원 7만6343건 중 6만399건이 건보 가입자격, 부과기준, 징수 관련 민원이다.
김 의원은 “일정한 소득이 없는 저소득층이나 지역가입자에게 고액의 건보료를 물리는 현행 건보료 체계에 대한 불만이 상당하다”며 “고소득자와 자산가들의 건보료 회피와 제도의 허점은 건강보험에 대한 국민 불신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정부, 처음부터 의지 없었다”
이처럼 국민의 불만이 빗발치고 있음에도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사업은 한때 백지화될 뻔했다. 더구나 개선안 폐지라는 결과를 끄집어 낸 속사정도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증세 논란과 연말정산 등으로 여론이 악화되자 아예 취소해버린 것인데 ‘지나친 눈치 보기’라는 지적이 난무한다.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안의 특징은 소득 중심의 단일한 보험료 부과기준을 적용한다는 점이다. 이 개선안을 시행하면 자칫 연말정산으로 분노한 직장인들을 더 자극할 수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월급 외에 임대사업이나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별도의 소득에 대한 보험료를 내야 한다. 따라서 저소득 지역가입자는 보험료가 줄고 고소득 직장인은 보험료가 올라간다.
따라서 정부가 연말정산으로 인한 분노가 가라앉을 것으로 예상되는 시기에 개선안을 발표하려다 여의치 않자 아예 백지화시킨 것 이라는 비난에 직면했다.
심지어 건보료 부과체계를 개선할 의지가 처음부터 없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사업이 우왕좌왕하자 “박근혜 정부가 처음부터 의지가 없었던 게 아니냐”며 강도 높은 질타를 퍼부었다.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사업은 박 대통령이 대선과정에서 공약했고 당선 후 1년6개월 동안 준비한 국정과제다. 복지부 장관이 청와대와 상의 없이 혼자 판단해 사실상 백지화 결정을 했다는 점이 의문스럽다는 게 안 의원의 주장이다. 결국 증세 논란에 연말정산 후폭풍까지 겹쳐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청와대의 지시를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해석이다.
안 의원은 지난 2월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국민들은 복지부 장관의 무능을 확인했고 정부와 대통령도 가장 중요한 대국민 신뢰를 잃었다”고 비판했다.
결국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사업은 우여곡절 끝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정부가 이를 다시 제대로 추진할지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많다. 현행 건보료 체계는 공정성과 합리성 측면에서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를 바로잡는 일이 개혁의 일환이자 공약사항인 만큼 정부가 소신과 신념을 갖고 신속히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얼렁뚱땅했다가는 정부에 대한 불신만 더 키울 수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7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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