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풍전등화' 포스코, 정준양의 불편한 유산
김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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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가 위태롭다. 포스코건설의 비자금 수사로 촉발된 '윗선 부패' 논란이 탄탄대로를 걷던 ‘국민 철강기업’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포스코 입장에서는 지금의 논란이 과거의 행보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당황스럽다. 검찰은 이번 비리 의혹의 몸통으로 정준양 전 회장(67)을 지목하면서 그에게 출국금지 조치까지 내렸다. 지난 2009~2013년 포스코를 지휘했던 정 전 회장과 포스코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100억대 비자금… '몸통'된 정준양
현재 검찰은 포스코건설이 진행한 4700억원 규모의 베트남 건설공사와 관련해 포스코가 100억원대의 비자금을 챙긴 것으로 수사방향을 잡았다. 특히 포스코건설 협력업체인 흥우산업과 그 계열사가 비자금 조성창구로 활용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이들 회사를 압수수색하며 증거찾기에 나섰다.
검찰 등에 따르면 포스코건설은 지난 2009년 3월 노이바이와 라오까이를 연결하는 고속도로 1~3공구 건설 계약을 베트남고속도로공사(VEC)와 체결했다. 계약 금액은 4700억원. 포스코건설은 이 가운데 1200억원 규모의 공사 30건에 대한 하도급 계약을 흥우산업과 그 계열사 용하산업·흥우건설에 몰아줬다.
의심스런 대목은 포스코건설이 VEC와 고속도로 건설 사업을 따낸 지 4개월 만인 그해 7월 흥우산업이 ‘흥우비나’라는 베트남 현지법인을 설립했다는 점. 흥우산업에 있어 포스코건설은 전체 매출의 16%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발주처다.
따라서 검찰은 포스코건설이 지난 2009~2012년 베트남 고속도로 공사 과정에서 흥우비나를 주축으로 한 하도급업체에 지급하는 대금을 부풀려 비자금을 만든 것으로 추정한다.
검찰이 이번 비자금 사태의 몸통으로 정 전 회장을 지목한 데는 베트남 공사를 수주할 당시 포스코그룹의 경영을 총괄하고 있었던 점이 작용했다. 여기에 정 전 회장이 재임 시절 부실기업을 다수 인수해 포스코에 거액의 손해를 입힌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도 확인 중이다.
◆ 화려했던 M&A, 그러나 곳간은…
정 전 회장은 지난 2009년 2월부터 5년 가까이 포스코 경영을 총괄했다. 2012년 3월 연임에 성공했지만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인 2013년 9월 국세청이 포스코를 상대로 특별세무조사에 착수하자 그해 11월 갑작스레 사퇴 의사를 밝혔다.
비자금 사태로 포스코가 쌓아온 대내외적 신뢰와 기업이미지에 타격을 입은 것도 문제지만 현재 정 전 회장을 둘러싼 논란은 그가 재임하던 ‘5년’ 동안 무리한 인수합병(M&A)으로 포스코의 재무구조가 크게 악화됐다는 점에서도 들끓는다.
정 전 회장은 지난 2009년 2월 취임해 지난해 3월 퇴직 전까지 대우인터내셔널과 성진지오텍 등 11건의 대규모 지분 투자와 인수·합병을 단행했다. 지난 2009년 스테인리스 업체인 대한ST를 600억원에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2010년 성진지오텍(1600억원), 대우인터내셔널(3조3700억원), 2011년에는 NK스틸(377억원), 나인디지트·리코금속(180억원) 등을 인수했다. 2012년에도 삼창기업 원전사업부문을 1400억원에 인수했다.
해외시장에도 눈을 돌려 호주 로이힐 광산에 1조2000억원을 투입한 것을 비롯해 인도네시아 일관제철소 건립에 3조원, 동국제강과의 브라질 제철소 건립에도 5000억원을 썼다. 그동안 보수적인 이미지가 강했던 포스코였던 점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행보였다.
자연스레 포스코의 몸집은 커졌다. 정 전 회장은 재임기간 동안 포스코 계열사를 31개에서 71개까지 늘렸다. 인수·합병에 쓰인 금액만도 무려 7조4102억원. 매년 2조원에 가까운 돈을 기업사들이기에 쓴 셈이다.
하지만 상당수 기업을 지나치게 비싼 가격에 인수했고 이는 결국 포스코의 재무구조와 현금흐름을 약화시켜 '독'으로 돌아왔다.
지난 2010년 3월 인수한 양플랜트 업체 성진지오텍만 해도 포스코는 이 회사 지분 40%를 1593억원에 사들였다. 주당 1만2900원이었던 인수가격은 당시 주가(9030원)보다 40% 이상 높은 수준이었다. 더군다나 성진지오텍은 지난 2008년과 2009년 순손실액이 각각 1910억원, 64억원에 달해 부실기업 평가를 받았다.
◆ 차입↑ 신용↓… '인수 트라우마' 현재형
포스코 최대의 M&A 역사로 회자되는 대우인터내셔널 인수도 기업가치보다 비싸게 샀다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지난 2010년 포스코는 대우인터내셔널 지분 60.3%를 3조3724억원에 사들였는데 이는 경쟁업체보다 2000억원이나 많은 금액이었다. 특히 대우인터내셔널은 한국자원광물공사의 마다가스카르 암바토비 니켈광산 프로젝트에도 투자(지분 4% 보유)했지만 현재까지 수천억원대의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치밀하지 못했던 정 전 회장의 외형확대 행보는 결국 포스코의 재무 기반을 흔들었다. 지난 2009년 8조2000억원에 달했던 포스코의 현금성 자산(현금 및 금융상품)은 정 전 회장이 물러난 2013년 7조2000억원 수준이었고 지난해는 5조2000억원 수준으로 급감했다.
그러는 사이 지난 2009년 4조원에 못미쳤던 순차입금은 2011년 20조원, 2012년 18조 5000억원으로 급증했다. 정 전 회장 재임기간 동안 늘어난 차입금만 10조원에 이른다.
재무구조가 나빠지니 신용등급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지난 2011년 스탠다드앤푸어스(S&P)는 포스코의 신용등급을 'A'에서 'A-'로 낮췄고 2012년 10월 'BBB+'로 다시 내렸다. 무디스 역시 지난 2011년 신용등급을 'A2'에서 'A3'로 내린데 이어 2012년에는 'BBB1'으로 강등했다.
정 전 회장이 포스코를 떠난 지 1년여가 지났지만 포스코는 여전히 정준양의 ‘불편한 유산’에 신음하고 있다. 비자금 문제가 시발점이 됐지만 다시금 텅텅 빈 곳간과 허약해진 재무구조가 도마 위에 올랐다. 정준양 재임시절 5년간의 악몽. 포스코로서는 지금 ‘잃어버린 5년’이 더욱 뼈아프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7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 100억대 비자금… '몸통'된 정준양
현재 검찰은 포스코건설이 진행한 4700억원 규모의 베트남 건설공사와 관련해 포스코가 100억원대의 비자금을 챙긴 것으로 수사방향을 잡았다. 특히 포스코건설 협력업체인 흥우산업과 그 계열사가 비자금 조성창구로 활용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이들 회사를 압수수색하며 증거찾기에 나섰다.
검찰 등에 따르면 포스코건설은 지난 2009년 3월 노이바이와 라오까이를 연결하는 고속도로 1~3공구 건설 계약을 베트남고속도로공사(VEC)와 체결했다. 계약 금액은 4700억원. 포스코건설은 이 가운데 1200억원 규모의 공사 30건에 대한 하도급 계약을 흥우산업과 그 계열사 용하산업·흥우건설에 몰아줬다.
의심스런 대목은 포스코건설이 VEC와 고속도로 건설 사업을 따낸 지 4개월 만인 그해 7월 흥우산업이 ‘흥우비나’라는 베트남 현지법인을 설립했다는 점. 흥우산업에 있어 포스코건설은 전체 매출의 16%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발주처다.
따라서 검찰은 포스코건설이 지난 2009~2012년 베트남 고속도로 공사 과정에서 흥우비나를 주축으로 한 하도급업체에 지급하는 대금을 부풀려 비자금을 만든 것으로 추정한다.
검찰이 이번 비자금 사태의 몸통으로 정 전 회장을 지목한 데는 베트남 공사를 수주할 당시 포스코그룹의 경영을 총괄하고 있었던 점이 작용했다. 여기에 정 전 회장이 재임 시절 부실기업을 다수 인수해 포스코에 거액의 손해를 입힌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도 확인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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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머니투데이 DB |
◆ 화려했던 M&A, 그러나 곳간은…
정 전 회장은 지난 2009년 2월부터 5년 가까이 포스코 경영을 총괄했다. 2012년 3월 연임에 성공했지만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인 2013년 9월 국세청이 포스코를 상대로 특별세무조사에 착수하자 그해 11월 갑작스레 사퇴 의사를 밝혔다.
비자금 사태로 포스코가 쌓아온 대내외적 신뢰와 기업이미지에 타격을 입은 것도 문제지만 현재 정 전 회장을 둘러싼 논란은 그가 재임하던 ‘5년’ 동안 무리한 인수합병(M&A)으로 포스코의 재무구조가 크게 악화됐다는 점에서도 들끓는다.
정 전 회장은 지난 2009년 2월 취임해 지난해 3월 퇴직 전까지 대우인터내셔널과 성진지오텍 등 11건의 대규모 지분 투자와 인수·합병을 단행했다. 지난 2009년 스테인리스 업체인 대한ST를 600억원에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2010년 성진지오텍(1600억원), 대우인터내셔널(3조3700억원), 2011년에는 NK스틸(377억원), 나인디지트·리코금속(180억원) 등을 인수했다. 2012년에도 삼창기업 원전사업부문을 1400억원에 인수했다.
해외시장에도 눈을 돌려 호주 로이힐 광산에 1조2000억원을 투입한 것을 비롯해 인도네시아 일관제철소 건립에 3조원, 동국제강과의 브라질 제철소 건립에도 5000억원을 썼다. 그동안 보수적인 이미지가 강했던 포스코였던 점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행보였다.
자연스레 포스코의 몸집은 커졌다. 정 전 회장은 재임기간 동안 포스코 계열사를 31개에서 71개까지 늘렸다. 인수·합병에 쓰인 금액만도 무려 7조4102억원. 매년 2조원에 가까운 돈을 기업사들이기에 쓴 셈이다.
하지만 상당수 기업을 지나치게 비싼 가격에 인수했고 이는 결국 포스코의 재무구조와 현금흐름을 약화시켜 '독'으로 돌아왔다.
지난 2010년 3월 인수한 양플랜트 업체 성진지오텍만 해도 포스코는 이 회사 지분 40%를 1593억원에 사들였다. 주당 1만2900원이었던 인수가격은 당시 주가(9030원)보다 40% 이상 높은 수준이었다. 더군다나 성진지오텍은 지난 2008년과 2009년 순손실액이 각각 1910억원, 64억원에 달해 부실기업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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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스1 유승관 기자 |
◆ 차입↑ 신용↓… '인수 트라우마' 현재형
포스코 최대의 M&A 역사로 회자되는 대우인터내셔널 인수도 기업가치보다 비싸게 샀다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지난 2010년 포스코는 대우인터내셔널 지분 60.3%를 3조3724억원에 사들였는데 이는 경쟁업체보다 2000억원이나 많은 금액이었다. 특히 대우인터내셔널은 한국자원광물공사의 마다가스카르 암바토비 니켈광산 프로젝트에도 투자(지분 4% 보유)했지만 현재까지 수천억원대의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치밀하지 못했던 정 전 회장의 외형확대 행보는 결국 포스코의 재무 기반을 흔들었다. 지난 2009년 8조2000억원에 달했던 포스코의 현금성 자산(현금 및 금융상품)은 정 전 회장이 물러난 2013년 7조2000억원 수준이었고 지난해는 5조2000억원 수준으로 급감했다.
그러는 사이 지난 2009년 4조원에 못미쳤던 순차입금은 2011년 20조원, 2012년 18조 5000억원으로 급증했다. 정 전 회장 재임기간 동안 늘어난 차입금만 10조원에 이른다.
재무구조가 나빠지니 신용등급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지난 2011년 스탠다드앤푸어스(S&P)는 포스코의 신용등급을 'A'에서 'A-'로 낮췄고 2012년 10월 'BBB+'로 다시 내렸다. 무디스 역시 지난 2011년 신용등급을 'A2'에서 'A3'로 내린데 이어 2012년에는 'BBB1'으로 강등했다.
정 전 회장이 포스코를 떠난 지 1년여가 지났지만 포스코는 여전히 정준양의 ‘불편한 유산’에 신음하고 있다. 비자금 문제가 시발점이 됐지만 다시금 텅텅 빈 곳간과 허약해진 재무구조가 도마 위에 올랐다. 정준양 재임시절 5년간의 악몽. 포스코로서는 지금 ‘잃어버린 5년’이 더욱 뼈아프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7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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