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굴지의 대기업 삼성전자에게도 '넘사벽'(넘을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 있다. 바로 선풍기시장. 수년간 신제품을 내놓고 광고를 해봐도 1,2위 자리를 빼앗는 게 쉽지 않다. 이 시장은 ‘신일 선풍기’로 유명한 신일산업이 독보적 1위 자리를 굳혔다.

56년 업력을 보유한 신일산업의 선풍기시장 점유율은 35% 내외. 그 뒤를 한일전기와 삼성전자가 따르는 추세다. 외부적으로 보이는 경영성적도 좋은 편이다. 신일산업은 지난 2013년 사상최대 매출인 1202억원을 달성하며 생활가전 분야의 대표 중견기업으로 승승장구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내부적으론 심각한 경영권 분쟁을 겪어왔다.

신일산업은 개인투자자 황귀남씨와 경영권을 놓고 다툼을 벌여왔다. 황씨가 대주주에 버금가는 지분을 획득하면서 적대적 M&A를 시도했기 때문. 황씨는 현재 신일산업 지분 16.4%를 보유해 신일산업 김영 회장의 지분인 14.22% 보다 많은 상태다. 이후 양측은 법원 송사를 거듭하며 급기야 한 지붕 두 주총을 여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지난 3월30일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신일산업이 경영권 방어에 성공하면서 겨우 한숨 돌린 분위기지만 황씨 측이 계속 M&A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보이면서 분쟁은 장기화 될 조짐이다. 조용하던 신일산업에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사진=뉴스1 서송희 기자
/사진=뉴스1 서송희 기자

◆슈퍼개미의 선전포고

신일산업의 경영권 분쟁이 촉발된 것은 지난해 2월. 공인노무사로 일하던 황씨가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신일산업 주식 260만주를 대거 사들인 후 경영에 참여하겠다고 선언하면서 부터다. 그는 자신을 포함한 3인의 특수관계인과 신일산업 지분 11.27%를 사들였다. 다음달 열린 주총에서 그는 이 지분을 바탕으로 적대적 M&A를 시도했지만 의결권 행사에 제약을 받아 실패했다.

신일산업이 적대적 M&A 논란에 휩싸이게 된 결정적 계기는 지난 2004년 자본잠식에 빠진 경영상태를 개선하는 와중에 김 회장 등 최대주주의 지분이 크게 낮아진 탓이다. 당시 회사를 살리는 과정에서 옛 사옥을 팔고 오너가 사재까지 출연하다보니 김 회장 등 오너의 특수관계인 지분이 9.90%로 크게 떨어졌다.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들 역시 황씨가 경영권 참여 대상으로 신일산업을 선택한 것이 최대주주인 김 회장의 지분율이 너무 낮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 회사의 최대주주 지분율이 10% 이하로 떨어지면 적은 지분으로도 경영권을 위협받을 수 있어 적대적 M&A의 타깃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물러설 곳 없는 양측의 향배는 결국 소송으로 번졌다. 주주총회 결의 취소,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임시 주총 소집 등 경영권 분쟁과 관련한 가처분 신청과 소송이 1년이 넘도록 이어졌다. 이 사이 신일산업은 분식회계 의혹과 경영진 횡령·배임 혐의 의혹 등에 연루되기도 했다.

황씨 측은 김 회장의 사익추구 20년 무배당 등 소액주주를 배제한 경영 등을 문제삼아 경영권을 접수하려 들었고, 신일산업 측은 이번 사태를 기업사냥꾼이 연루된 사태로 규정하며 경영권 방어에 주력했다.


신일산업 적대적 M&A를 추진중인 황귀남씨. /사진= 머니투데이 김도윤 기자
신일산업 적대적 M&A를 추진중인 황귀남씨. /사진= 머니투데이 김도윤 기자

◆실적 뚝뚝… 개미 투자자 ‘울상’

경영권 분쟁이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실적도 악화됐다. 신일산업의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액은 1143억원으로, 전년 동기(1202억원)보다 4.9%나 줄었다. 영업이익은 69억원에서 2억원 손실로 적자전환했다. 순손실도 17억원이나 발생했다.

개인 투자자도 경영권 분쟁에 따른 ‘롤러코스터 주가’ 변동으로 직간접적 피해를 입었다고 호소한다. 실제 지난해 2월 경영권 분쟁이 시작되기 전 1200원이던 신일산업의 주가는 경영권 분쟁이 본격화된 지난해 5월 2990원까지 올라갔다. 이후 경영권 분쟁 상황에 따라 주가가 급등락을 오갔다.

법원의 판결도 엎치락뒤치락을 거듭했다. 지난해 말까지만해도 황씨의 일부 의결권이 금지되면서 신일산업 경영진의 승리로 끝날 것 같더니, 지난 2월 신일산업 현 경영진이 직무집행정지를 받으면서 판세가 다시 황씨 쪽으로 기울었다. 곳곳에서 적대적 M&A의 성공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하지만 결과는 또 반전. 최종 주인을 결정한 지난 3월30일 주총에서 사내이사에 재선임 된 주인공은 김 회장이었다. 이날 김 회장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은 투표에 참여한 4715만3532주 중 2436만9799주의 찬성을 받아 가결됐다. 김 회장이 경영권 방어에 성공하면서 신일산업 측은 일단 한숨을 돌리게 됐다.

다만 황씨가 여기서 물러나지 않겠다는 입장이 분명하고, 아직 황씨와 김 회장 간에 여러건의 고소 및 고발 조치로 인한 조사가 진행되고 있어 그 끝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적대적 M&A의 명과 암

전문가들은 적대적 M&A의 타깃이 되는 기업은 지배구조가 취약하거나 회사의 경쟁력, 자산운용의 효율성 등 어딘가 부족하기 때문에 표적이 된다고 지적한다.

신일산업의 경우처럼 긴 소송전에 따른 경영 부담, 또 여기에 뒤따르는 부정적 여론과 주가의 비정상적 움직임 등 부작용도 크지만 한편으론 기회로 삼을 필요도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M&A업계 한 전문가는 “적대적 인수합병이 논란은 되지만 사실 자본시장에선 비일비재하게 일어날 수 있으며 필요하기도 하다”며 “공들여 키운 기업을 누군가 빼앗아 간다는 인식을 버리고 경쟁력을 키우는 기회로 삼아야 신일산업과 같은 사례가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7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