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호 상장건설사 경남기업이 42년 만에 주식시장에서 퇴출된 데 이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채권단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채권단이 경남기업에 빌려준 돈은 총 1조3000억원에 달한다. 법정관리기업 채권 원금회수율이 10~20%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채권단은 무려 1조여원의 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은행별로는 한국수출입은행이 5107억원으로 가장 많다. 주채권은행인 신한은행이 1761억원으로 뒤를 이었고 ▲KDB산업은행 600억원 ▲NH농협은행 522억원 ▲수협중앙회 455억원 ▲KB국민은행 421억원 ▲우리은행 356억원 순이다.

특히 이들 채권단은 이미 800억원대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3월 경남기업 대출금 1000억원을 업체 지분으로 전환할 당시 액면가인 주당 5000원으로 가치를 매겼다. 그러나 상장폐지 후 정리매매기간의 채권단 평균 매각가는 주당 666원으로 매입가의 8분의 1에 그쳤다.

이 과정에서 수출입은행은 무려 201억원의 손실을 봤다. 수출입은행은 지난해 3월 약 232억원의 대출금을 출자전환하면서 463만주를 주당 5000원에 사들였다. 건진 돈은 고작 31억원이다. 산업은행도 보유주식 290만주를 매입가 146억원에 크게 모자라는 18억원만 받고 처분했다. 순식간에 127억원을 손해 봤다.

앞서 신한은행과 국민은행도 각각 298만주와 115만주를 주당 674원에 매각하면서 손해금액만 총 180억여원에 달했다. 농협은행과 우리은행 등도 주식 일부를 갖고 있어 채권단 손실액은 최소 8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이처럼 경남기업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채권단의 손실에 대한 금융당국과 개별은행들의 책임론이 눈덩이처럼 커졌다. 여기에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불법로비 의혹까지 더해져 금융당국과 채권단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엄중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막대한 손해를 입은 은행들이 결국 예금금리를 더 낮추고 대출금리는 높여 고객 주머니에서 손해를 메우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빗발친다.


 

/사진=뉴스1 손형주 기자
/사진=뉴스1 손형주 기자

◆금감원의 부당개입 의혹

경남기업에 대한 채권단의 대출 결정에 과연 외압이 작용했을까. 경남기업은 지난 2013년 10월 두차례의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이후 세번째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지난 4월23일 감사원이 공개한 금융감독원에 대한 기관운영 감사결과 등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주채권은행인 신한은행에 금감원이 부당하게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남기업의 3차 워크아웃 과정에서 실사를 맡은 A회계법인은 경남기업의 재무구조개선을 위해 출자전환이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이를 위해 대주주인 성 전 회장의 지분을 2.3대 1의 비율로 무상감자해야 한다고 보고했다. 출자전환은 채권자인 금융기관이 채무자인 기업에 빌려준 대출금을 주식으로 전환해 기업부채를 조정하는 것이다.

신한은행도 실사 결과에 특별한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고 무상감자 후 출자전환키로 결정했다. 이 내용을 신한은행으로부터 보고받은 금감원 팀장은 ‘대주주의 입장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것’을 요구하고 이후 진행상황을 수시로 확인했다. 감사원 관계자는 “담당 국장은 팀장이 요구한 지 나흘 뒤인 지난해 1월13일 A회계법인 담당자들을 불러들여 대주주의 입장을 잘 반영해 처리하라는 2차 압박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신한은행은 채권금융기관협의회를 통해 무상감자 없이 출자전환키로 결정했고 지난해 3월 1000억원 규모의 출자전환이 이뤄졌다. 무상감자를 피한 성 전 회장은 덕분에 158억원의 특혜를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감사원 관계자는 “금감원이 부당개입하면서 애초 대주주 무상감사 조건의 출자전환 토의안건 내용이 무상감자 없는 출자전환으로 변경됐다”며 “대주주에게는 특혜가 제공됐지만 채권금융기관은 손실을 떠안는 불공정한 결과가 초래됐다”고 지적했다.

◆신한은행 치부 감추기용?

주채권은행인 신한은행은 오로지 외압에 의해서만 대출결정을 내렸을까. 스스로 치부를 감추기 위해 경남기업에 특혜를 제공했을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신한은행은 금감원의 압력 이외에 또 다른 이유로 경남기업에 특혜를 제공했다는 관측이 흘러나온다. 지난 2013년 당시 고객계좌 불법조회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대출채권의 부실가능성은 고려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지원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고객계좌 불법조회사건은 신한은행이 지난 2010년 4월부터 12월까지 정치인, 법조계, 금융당국과 금융권 고위간부 등을 대상으로 자사가 보유 중인 고객정보를 무단 조회했다는 의혹을 말한다. 당시 신한은행은 예적금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이 있음에도 은행이 고객정보를 조회해 비판을 받자 서진원 전 행장을 비롯한 고위임원들이 정치권 로비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성 전 회장은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의원으로 금융권에 미치는 영향이 막강했다. 그는 부실기업으로 판명 나 구조조정대상이 된 경남기업을 살리기 위해 당시 서 행장을 따로 만난 것으로 전해졌다. 성 전 회장의 다이어리에 적힌 면담일정에도 서 전 행장의 이름이 적혀 있다.

고객계좌 불법조회사건 이전에는 서 전 행장이 성 전 회장을 최대한 피했을 수 있지만 이후에는 두 사람의 입장이 바뀌었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다시 말해 성 전 회장과 서 전 행장이 경남기업 지원문제를 수시로 협의했을 수 있고 이는 특혜성 대출의혹의 발단이 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29일 참여연대는 보도자료를 통해 “신한은행이 이 같은 파문을 해소하기 위해 성 전 회장과 손을 잡았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에 따르면 성 전 회장은 자신이 대주주로 있던 경남기업에 대해 특혜성 대출을 만들 기회로 삼고 로비를 벌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 로비에 따라 12일 뒤 경남기업이 신한은행에 3차 워크아웃을 신청했고 이틀 뒤 신한은행은 이를 승인했다는 주장이다.

또 다른 눈여겨볼 만한 부분은 경남기업의 3차 워크아웃 전 성 전 회장이 서 전 행장뿐만 아니라 금융당국 및 금융권 인사들을 집중적으로 만났다는 점이다. 성 전 회장의 다이어리를 살펴보면 경남기업이 지난 2013년 10월 3차 워크아웃에 들어가기 전인 같은해 9월3일 김진수 전 금융감독원 기업금융개선국장을 만났다. 또 같은 날 렉싱턴호텔 양식당에서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만났다. 같은달 12일에는 임종룡 전 농협금융지주 회장을, 13일에는 김용환 전 수출입은행장과 접촉했다.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과의 만남 역시 다이어리에 기록돼 있다. 이들은 모두 경남기업에 돈을 빌려준 채권단의 최고경영자들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국회 정무위 소속 국회의원이었던 성 전 회장이 만난 인물들은 워크아웃을 담당하는 금감원 국장과 채권은행의 최고경영자들이었다”며 “성 전 회장이 압력을 행사해 경남기업에 대한 무리한 대출을 이끌어 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8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