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시대'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들. 천정부지로 오른 전셋값에 가난한 세입자들은 등 떠밀리다시피 월세로 옮겨간다. 그동안 국내 임대차시장의 중심이었던 전세제도가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서민들 '월세 살이'가 눈물겹다.


일정한 수입이 있는 이들은 그나마 사정은 괜찮다. 문제는 아직 직장을 구하지 못한 20대 청년들이다. 취업이 부쩍 힘들어진 요즘, 20대 젊은이들에게 월세는 부담이자 압박이다.

올해 발표된 서울시의 '청년정책의 재구성 기획연구'에 따르면 서울의 주거빈곤 청년(만 19∼34세)은 청년 전체 인구 229만4494명의 22.9%인 52만3869명이다. 서울 전체 가구의 주거빈곤율 20%보다 높은 수치다.


이들은 부모의 지원에 전적으로 기댈 수밖에 없는 대학생, 부모의 지원이 어렵거나 눈치 보이는 고시생, 취업준비생 등이 대부분이다. 이들이 바라는 것은 그저 맘 편히 몸을 뉠 수 있는 공간이다. 청년 주거빈곤층의 실태는 과연 어느 정도일까. 현장을 찾아갔다.


/사진=머니위크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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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닭장'에 사는 20대 청년들

서울 노량진 학원가 인근 한 고시원. 1층 총무실을 지나 계단을 따라 2층에 오르니 입구 위에 붙여진 '여성전용층'이라는 팻말이 눈에 띄었다. 실례를 무릅쓰고 취재를 위해 내부로 들어서니 좁은 복도 사이로 방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 흡사 닭장을 연상케 했다.

이 중 차세영씨(24)의 방은 207호. 그녀의 방은 책상과 옷장, 한사람이 겨우 누울 수 있는 작은 침대, 샤워부스 등이 2평 남짓한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때 이른 더위에 땀이 흘렀지만 작은 선풍기 한대 놓을 여유 공간도 없었다.


대전이 고향이라는 차 씨가 이 방에서 지낸 지도 벌써 반년째. 경찰 공무원을 준비한 지는 1년이 조금 지났다고 했다. 차 씨는 지금 지내는 방에 창문이 있어 정말 좋다며 자랑을 늘어놨다. 한뼘이 조금 넘는 창문은 세상 밖이 아닌 복도로 나 있어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벽은 너무 얇아 휴대전화는 아예 고시원 밖으로 나가서 받아야 했다. 옆방에서 노트북의 팬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1인당 최저주거기준인 약 4평(13.86㎡)도 안 되는 열악한 환경임에도 차 씨가 현재 거주하는 방의 월세는 50만원. 고시원은 보증금이 없어 월세가 높고 학원이 가까울수록 비싸다는 게 그녀의 설명이었다.


월세와 학원비 등을 고려하면 매달 약 100만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중 방값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이나 됐다. 차 씨는 "자신의 꿈 때문에 부모에게 과도한 경제적 부담을 떠안긴 것이 죄송스러워질 때면 한없이 초라해져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차 씨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부모의 지원을 거의 받지 못하는 친구 중에는 자신과 같은 크기의 방에 2층 침대를 놓고 2명이 함께 거주한다고 했다. 책상이 한개밖에 없어 돌아가면서 책상에 앉아 공부한다고도 했다.

그런데도 이 방의 월세는 30만원으로 다른 방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2명이 한방을 쓰는 걸 고려하면 3.3㎡당 월세는 15만원인 셈이다. 이는 3.3㎡당 11만~12만원선인 강남권 프라임급 오피스의 월세보다 비싼 수준이다.

차 씨는 "사회적 약자인 청년 세대 중에서도 가장 빈곤층이 거주하는 고시원의 월세가 강남 대형 빌딩의 월세보다 비싼 현실을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주위에서 주거비 부담에 꿈을 포기하는 사례를 수도 없이 봤다.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최현일 열린사이버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에서 당장 청년주거빈곤층을 대상으로 주거비 등을 지원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 것"이라며 "이에 앞서 고시원에서 거주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요건을 갖추도록 정부가 강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진=머니위크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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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숙사 등 대학생 주거문제 심각

취업 준비생·사회 초년생뿐만 아니라 대학생에게도 주거 문제는 큰 고민거리다. 대학 직영 기숙사는 경쟁률이 높고 민영기숙사나 원룸·하숙집은 월세가 비싸 특별한 소득이 없는 대학생에게 엄청난 부담일 수밖에 없다.

신촌의 한 사립대학교에 다니는 박윤제씨(26)는 학교 옆 8평(26.4㎡) 반지하방에 산다.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는 30만원. 고시원보다는 나아 보였지만 주거 환경이 열악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지하실 특유의 눅눅함에 창문을 열어놓고 싶어도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이 많아 그러지 못한다고 했다.

박 씨는 "군 전역 후 부모에게 손을 벌리기가 부끄러워 아르바이트로 월세와 생활비를 충당하다 보니 학교생활이 녹록지 않다"고 말했다. 여름 방학에도 취업 준비를 위해 토익학원과 봉사활동, 아르바이트 등으로 박 씨는 본가가 있는 부산에 내려가는 건 꿈도 못 꿀 형국이었다.

그는 기숙사에 들어간 친구들도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얘기했다. 보통 기숙사에 들어가기 위해선 약 3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하는 데다 2인실을 기준으로 학기당 임대료가 100만원을 훌쩍 넘어 민간 임대와 큰 차이가 없어서다.

또한 여럿이 함께 살다 보니 크고 작은 의견 차이로 충돌이 불가피해 친구와 사이가 틀어져 힘들었던 일도 있었다며 1학년 시절을 회상했다. 박 씨는 "친구와 갈등이 있던 예전보다 지난해의 일이 더 기억에 남는다"고 운을 뗐다.

지난해 학교에서 기숙사를 신축하는 방안을 마련하자 신촌 일대 임대업자들이 "생존권을 위협한다"며 학교 인근에서 시위를 했다는 것. 기숙사 문제로 주민과 학교가 대립하면서 애먼 학생들에게도 불똥이 튀었다.

박 씨는 "지난해부터 일부 주민이 학생들에게 종종 섭섭함을 드러내는 등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엉뚱한 방향으로 비화하는 상황"이라며 "그분들의 심정은 어느 정도 이해하지만 학생의 주거권 보장이라는 공공의 목적이 우선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공공의 적극적이지 못한 태도가 갈등을 키웠다고 비판한다. 정남진 민달팽이 유니온 사무국장은 "서울시 등은 사실상 그동안 주민의 눈치만 살피면서 문제를 방치했다"면서 "공공이 적극 개입해 사회적 합의를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8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