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위스에 본사를 둔 한국노바티스가 지난 2일 문학선 대만 노바티스 사장을 최고경영자(CEO)로 선임했다. 한국노바티스에서 한국인 사장이 배출된 것은 한국 진출 32년 만에 처음이다.


#. 지난 1일 한국BMS제약은 새로운 수장으로 박혜선 사장을 임명했다. 지난해 9월 첫 여성 CEO로 발탁된 김은영 전 대표이사에 이어 박 사장이 한국BMS제약의 경영권을 쥔 것. 제약업계에서 2회 연속 한국인 및 여성 CEO가 탄생한 것은 이례적이란 평가다.

다국적제약회사에 한국인 CEO 바람이 거세다. 본사 출신 외국인 수장에서 한국인 CEO로 빠르게 바뀌는 추세다. 해당 회사의 임직원들은 이를 반기는 분위기다. 외국인 수장에 비해 소통이 원활하고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러스트레이터 임종철
/일러스트레이터 임종철

◆한국인 경영능력, 글로벌서 인정받다

한국다국적의약산업협회(KRPIA)에 따르면 다국적제약사 한국법인 35개 중 23개 회사의 수장이 한국인이다. 비중으로 따지면 전체의 66%다. 한국노바티스를 비롯해 한국화이자와 사노피 아벤티스코리아, GSK, 한국MSD 등 '빅5'(매출 기준) 다국적 제약사 CEO가 모두 한국인이다.

한국화이자는 지난 2009년 이동수 대표를 CEO로 선임한 이후 지금까지 맡기고 있으며 GSK 한국법인도 지난해 임명된 홍유석 사장이 이끌고 있다. 또 사노피 아벤티스코리아는 배경은 사장이, 한국MSD는 현동욱 사장이 한국법인 대표를 맡고 있다. 이밖에 한국얀센(김옥연 대표), 한국애보트(정유석 대표), 길리어드사이언스코리아(이승우 대표), 한국먼디파마(이종호 대표), 노보노디스크제약(강한구 사장) 등이 모두 한국인 수장을 두고 있다.


이처럼 다국적제약사에 한국인 CEO가 늘어난 것은 소통강화 차원이 크다. 과거 다국적제약기업은 본사와의 소통을 중시했지만 현재는 로컬기업 내의 소통 강화를 우선시한다. 여기에 한국 특유의 문화를 이해하기엔 토종 한국인이 적합하다는 계산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측면으론 글로벌제약시장에서 한국인들의 입지 강화다. 한국법인 수장은 각국 본사 오너 및 경영진이 임명하는 방식으로 선출되는데, 통상 한국에서 통용되는 학연과 지연 등이 통하지 않고 순수 능력만으로 평가받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한국인들의 경영 능력이 글로벌에서도 인정받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 문학선 한국노바티스 대표의 리더십은 국제적으로도 통하는 편이다. 그는 지난 2013년 9월부터 최근까지 대만 노바티스 사장을 역임했는데 이곳에서 2년 연속 사업목표를 초과 달성하는 성과를 이뤘다. 대만 노바티스가 대만 제약시장의 마켓리더로 자리매김하는 데에도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2012년엔 아시아태평양·남아프리카 리더십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B·C형간염 치료제, 면역조절항암제 등 스페셜티 케어 전문 바이오기업 전략 개발과 실행을 총괄하는 박혜선 한국BMS제약 사장은 18년 간 바이엘코리아, 한국애보트, 한국화이자 등 다국적제약사에서 비즈니스 사업부 총괄, 영업마케팅, 전략적 제휴 등 풍부한 경험을 쌓은 인물이다.

홍유석 GSK 한국법인 사장도 국내외 제약시장에서 다양한 경험을 보유한 제약전문가로 미국 일라이릴리에 입사한 후 한국릴리 사장, 한독테바 사장 등을 역임해 CEO로서 능력을 검증받았다.

제약업계에선 다국적제약사의 한국인 CEO 배출과 여성 CEO의 약진이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다국적제약사 한 관계자는 "올해 들어 외국인 사장에서 한국인 수장으로 바뀐 곳이 5곳에 이른다"면서 "빠른 현지화를 위해선 외국인보다 경영능력을 갖춘 한국인이 유리하다고 본사 측이 판단한 것 같다. 앞으로 한국인 CEO 바람은 당분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남의 벽 깨는 제약업계… 성별보다 '실력'

다국적제약사의 또 다른 변화는 여성 CEO의 약진이다. 그동안 한국법인 수장 자리가 남성의 전유물이었다면 지금은 여성 CEO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KRPIA에 따르면 현재 여성CEO는 9명으로 전체의 26%에 달한다.

김은영 한국BMS 대표를 비롯해 김옥연 한국얀센 대표, 유수연 한국멀츠 대표, 주상은 한국레오파마 대표, 배경은 사노피 아벤티스코리아 대표, 박희경 젠자임코리아 대표 등이 대표적이다. 손에 꼽을 만한 외국인 여성 CEO는 리즈 태트윈 한국아스트라제네카 대표가 유일하다.

이중 김옥연 대표는 KRPIA 회장도 맡고 있다. 배경은 사노피 아벤티스코리아 대표는 한국인 중 최초로 이 회사 사장에 선임됐으며 GSK와 노바티스가 합작해 설립한 GSK 컨슈머헬스케어 초대 한국 대표엔 김수경 전 상무가 임명됐다.

임원들의 활약도 두드러진다. 지난 3월 박봄뫼 한국베링거인겔하임 인사부 전무가 부사장으로 올랐고 지난 2월엔 황성혜 한국화이자 대외협력부 부서장이 헬스&밸류 부서장을 겸임하는 자리로 승진했다. 사노피 아벤티스 코리아의 김똘미 상무도 현재 회사의 의학부를 총괄하고 있다.

한편 국내제약기업들 사이에서도 여풍 바람이 서서히 강해지고 있다. 오너가인 김은선 회장이 보령제약그룹을 진두지휘하는 것을 비롯해 부광약품은 유희원 부사장이 새 대표이사로 승진했다. 양윤선 메디포스트 대표도 의사 출신의 여성 사장이다. 다만 이 회사를 직접 창업한 인물로 전문경영인과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중역을 맡은 여성임원도 있다. 동아쏘시오그룹에서 박수정 R&D 전략실장이 전무로 승진했다. R&D 분야에서 여성 임원이 나온 것은 동아쏘시오그룹 설립 이래 처음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0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