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도서정가제, 실패 아니다?
책 읽지 않는 사회 (3)
최윤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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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팔리지 않는 시대다. 읽지 않기 때문이다. 성인 1인당 월평균 독서량은 0.76권에 불과하다. 이처럼 멸종의 위기에 책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머니위크>는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출판산업을 살펴봤다. 조금씩 꿈틀대는 전자책시장과 새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의 변화, 출판사들의 자생전략을 알아봤다.
지난해 11월 ‘출판생태계 복원’을 목표로 새 도서정가제가 시행됐다. 대형서점과 온라인서점의 과도한 할인으로 동네서점이 몰락하고 출판사의 경영이 악화되는 것은 물론 작가와 번역인의 수입보장이 힘들어지는 등 출판사의 생태계 자체가 흔들리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함이다.
기존에는 출판사가 할인금액을 염두에 두고 책정된 정가에 더 높은 가격을 매기는 관행이 암암리에 존재했는데, 새 제도가 시행되면 이런 관행이 자연스레 사라질 것이란 전망도 이 제도의 도입을 부추겼다.
새 정가제가 시행되기 이전에도 도서정가제는 시행됐다. 당시는 최대 10% 할인과 할인 후 금액의 10%에 해당되는 포인트 적립을 허락해 최대할인율이 19%였다. 다만 이는 출간 18개월 이상의 구간, 실용서·학습서 등에는 적용되지 않아 전체 판매도서 중 약 13%에만 정가제가 효력을 미쳤다.
이를 개선하고자 개정도입한 도서정가제는 신간과 구간, 책의 분류 등을 가리지 않고 국내에서 발행된 모든 책의 최대할인율을 15%로 제한하고 기존에는 예외였던 도서관의 책 구매에도 정가제를 적용했다. 이런 개정 정가제가 시행된 지 10개월여가 흐른 현재 출판업계의 생태계는 과연 개선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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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교보문고. /사진=머니투데이 홍봉진 기자 |
판매량 줄이고 온라인서점만 배불렸다
한국출판저작권연구소는 새 도서정가제가 결과적으로 국내 도서판매량을 감소시키고 온라인서점의 영업이익만 늘려준 꼴이 됐다고 평가했다.
이 연구소가 지난 3일 발간한 ‘2015 상반기 출판산업 지표분석’에 따르면 새 도서정가제가 본격 시행된 올 상반기 서적출판업 생산지수는 역대 최악으로 나타난 반면 온라인서점의 영업이익은 대폭 늘어났다.
개정 도서정가제가 시행되며 올 상반기 서적 및 문구류 소매판매액, 서적류 온라인쇼핑 거래액 모두 줄었다. 책 소비가 위축된 것이다. 가구당 월평균 서적(도서) 구입비는 올 2분기 1만3330원으로 지난해보다 13.1% 줄어 사상 최초로 1만5000원 아래로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최대규모의 온라인서점인 예스24의 올 상반기 영업이익은 전년대비 5배나 증가했다. 예스24의 상반기 매출액은 별도 재무제표 기준 1733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 대비 2.8%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93억원으로 518%나 늘었다.
전체 도서시장이 줄었는데 온라인서점의 영업이익만 크게 늘었다는 것은 출판사와 오프라인 서점이 그만큼 힘들어졌음을 의미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개된 8개 출판법인의 올 상반기 매출액은 별도 재무제표 기준 8997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 대비 2.1% 감소했고 영업이익도 313억원으로 11.3% 줄었다. 대형출판사가 이 정도 실적이니 중소서점과 출판사의 경영난은 이보다 더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출판저작권연구소 측은 “온라인서점은 개정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도서판매량이 감소했으나 할인 폭이 줄어 권당 판매단가가 올라갔기 때문에 전체 도서 매출은 오히려 늘었거나 감소 폭이 적었다”며 “출판사로부터의 도서 매입률(공급률)은 변화가 없어 권당 마진이 늘어났기 때문에 영업이익이 큰 폭으로 증가한 것으로 분석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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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스1 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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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서울 시내 한 서점에 도서정가제 시행을 알리는 안내판이 놓여있다. /사진=뉴시스 박문호 기자 |
정가제, 실패뿐인 정책일까
그렇다면 개정 도서정가제는 실패한 정책일까. 업계에서는 문제가 많지만 분명 긍정적인 측면도 나타났다고 말한다.
우선 출판산업이 사상 최대의 위기인 것은 확실하다.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집계한 올 상반기 출판(납본 대행) 통계를 보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발행종수는 11.5%, 발행부수는 8.0% 감소했다. 서점계나 통계청의 유통·판매(소비자 구매) 통계치를 봐도 모두 마이너스 행진이다.
하지만 그 원인을 모두 정가제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이러한 지표들은 책의 매체경쟁력이 약화되는 상황이어서 지속적으로 마이너스 추세를 겪는 데다 올해 경제불황과 소비침체가 겹치면서 심화된 영향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지난해 대비 도서의 평균정가가 4.1% 하락한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최대할인율을 4%포인트 줄인 것이 그대로 정가인하로 반영됐다는 설명이다. 실상 책의 가격을 책정할 때는 할인 폭 만큼을 덧씌우던 것이 출판업계의 관행이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개정 정가제 시행 이전 책값에는 대략 20% 이상의 거품이 껴있었다고 보면 된다”며 “최대할인율 제한이 줄어들며 업계에서도 이런 거품가격을 낮추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온라인서점의 매출만 늘어난 현상이 제휴카드 청구할인, 각종 편법할인 등 제도상의 구멍을 이용한 할인이 온라인서점에서 자행되기 때문이라며 정가제를 더욱 강화해 이런 부분에 제재를 가하고 결국에는 할인을 원천금지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도서공급률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익순 한국출판저작권연구소장은 “도서공급률 마진 폭을 더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재정가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번 제도를 도입하며 구간에도 신간과 같은 최대할인폭을 적용하는 대신 ‘정가할인’ 규제를 없애 정가를 다시 매기는 ‘재정가’ 판매가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했는데 지난해 11월부터 올 6월 말까지 재정가 도서는 5921종에 불과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는 “출판사들이 2개월 전 사전통지와 절차상의 어려움으로 구간 재정가 작업을 꺼리는 추세”라며 “현재 2개월인 재정가 사전통지기간을 단축하고 절차와 방법을 간소화하는 등 출판사의 재정가 참여율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급률을 조정하고 구간 재정가 판매를 활성화해야 출판사나 서점 모두 손해 보지 않고 책값을 더 내리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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