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한 책도 출판계의 사회문화적 맥락에 따라 수용자의 감동이 달라진다. 그리고 출판되는 시점의 사회문화적 분위기가 책의 판매량을 좌우한다.” (A출판사 기획팀장)


사람이 책을 선택하는 것일까, 책이 사람을 선택하는 것일까. 돈을 지불하고 구매하는 사람이 책을 선택하는 것이 당연해 보이지만 시대의 흐름이나 경제적 여건, 그리고 계절의 변화 등 외부적인 여건에 따라 책의 판매량이 달라지는 것을 보면 마치 책이 사람을 선택한다는 느낌이 든다.

◆ 시대가 원하는 책은 따로 있다


2010년대 서점가를 들썩이게 한 베스트셀러를 살펴보면 매우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책이 사회현상을 대변한다는 점이다.

경기침체와 고물가시대, 그리고 사회적 문제가 된 청년실업 등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침체된 까닭인지 지난 2012~2013년 베스트셀러 1위는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2011년 1위는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각각 차지했다.


이외에도 <정의란 무엇인가>(하버드대 교수 마이클 샌델 저), 마음의 평화와 행복한 삶을 안내하는 <생각버리기 연습>(고이케 류노스케 스님 저), 창조적인 놀이의 힘을 대변하는 <노는만큼 성공한다>(김정운 저), 여행을 통해 즐겁게 배우고 행복하게 성공하는 비결을 알려주는 <여행하면 성공한다>(김영욱, 장준수 저) 등이 판매 돌풍을 일으켰다.

이들 모두 새로운 형식의 자기계발서로, 2010년 이후 많은 독자로부터 사랑받은 ‘화제의 서적’들이다. 당초 에세이, 인문학 서적, 자기계발서, 여행서 등 다양한 장르로 출간됐던 이 책들은 현재 많은 사람의 삶의 지침서로 활용되며 당당히 자기계발서로서의 입지를 굳히는 이례적인 결과를 낳았다.


올해 역시 이런 현상은 계속되고 있다. 예스24의 9월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를 살펴보면 기시미 이치로·고가 후미타케의 아들러 심리학 서적 <미움받을 용기>가 1위에 올라 총 29주간 1위를 기록했다. 이외에도 혼자 있는 시간의 소중함을 강조한 <혼자 있는 시간의 힘>, <하버드 새벽 4시 반>, <대화의 신>, <7번 읽기 공부법> 등 자기계발서가 많은 독자의 선택을 받았다.

광화문 교보문고. /사진=머니투데이 홍봉진 기자
광화문 교보문고. /사진=머니투데이 홍봉진 기자

◆ 선택받은 책 보면 역사가 보인다

책은 역사를 품어왔다. 1950년대 6.25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된 후 어렵고 굶주렸던 시대에는 희망을 북돋는 책들이 독자로부터 사랑받았다.

모윤숙의 <렌의 애가>, 정비석의 <자유부인>을 비롯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의사 지바고> 등이 이 시절의 베스트셀러였다.

특히 1953년의 베스트셀러였던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는 큰 상징성을 지닌다. 6·25 전쟁이 끝난 직후 암담했던 시대에 국민은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통해 위로받았고 희망을 엿봤다.

1960년대의 책은 당시 이데올로기적 갈등 속에서 민족주의 역사소설이 붐을 일으켰다. 1960년대 대표적 베스트셀러인 이어령의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는 ‘풍토론’을 통해 민족 본질론의 사고를 보여줬다.

1970년대에는 산업화와 미국의 대중문화가 우리나라 출판업계를 강타했다. 에릭 시걸의 <러브스토리>와 존 오스본의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이 이 시대의 베스트셀러였으며 난쟁이 가족이 강제철거를 당하는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급격한 산업화의 이면을 보여주며 많은 독자로부터 공감을 이끌어냈다.

1980년대는 민주화의 시대인 동시에 소비자본주의의 욕망이 대분출을 일으킨 시기였다. 김정빈의 <단>이 대표적이다. 정신·육체적 능력을 초인 수준으로 높일 수 있다는 유혹은 고단한 현실을 잊고 싶었던 대중의 마음을 크게 흔들었다.

또 죽지도 않고 악당들을 때려눕히는 <인간시장> 역시 큰 사랑을 받았다. 이외에도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자서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청년들의 야망에 기름을 부으며 센세이션을 일으키기도 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에 출간된 책에는 유독 재미있는 공통점이 있다. 당시 인기를 끈 책들은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살아 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등 모두 제목에 숫자가 포함됐다는 점이다.

1980년대 급격한 압축성장의 후유증 탓인지 1994년에는 성수대교가 무너졌고 1995년에는 삼풍백화점이 주저앉았으며 1997년에는 국가부도위기를 겪으면서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관리를 받던 시절이었다.

◆ 책은 계절을 품는다

책은 계절에 따라서도 색깔을 달리한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최근 5년간 계절별 베스트셀러 50위에 오른 책을 분야별로 살펴보면 매해 시작을 알리는 봄에는 자기계발서가, 가을에는 문학서적이 독자의 사랑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문학은 다른 장르에 비해 사계절 내내 인기가 높은 편이지만 특히 여름 휴가철부터 인기가 상승세를 타기 시작해 바람이 차가워지는 가을에 절정을 누리는 것으로 파악됐다.

같은 문학분야의 도서 중에서도 선선해지는 가을에는 국내문학이, 날씨가 추운 겨울에는 해외문학이 강세를 보이는 것이 눈길을 끈다. 겨울철인 12~2월의 베스트셀러 서적 50위 중에는 국내문학이 13권으로 전체의 26%를 차지한 가운데 해외문학 도서가 10권(20%)을 기록해 다른 계절(봄·여름·가을 각각 14%)보다 유독 비중이 높았다.

겨울에는 자기계발서도 10권이 베스트셀러에 올라 대중으로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학년이 바뀌어 신학기가 시작되는 봄철에는 특히 어린이와 유아 부문의 도서 판매가 다른 계절에 비해 많았다.

올 가을에는 책을 읽읍시다

우리나라 성인의 독서량은 얼마나 될까. 한마디로 표현하면 ‘최악’이다. 34개국이 가입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꼴찌이며 유엔 회원국 중에선 166위(2013년 기준)다. 여기에 더해 성인의 30%는 1년 동안 책을 한권도 읽지 않는다는 조사결과도 나왔다.

지난해 잡코리아가 취업준비생 독서량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57.4%가 ‘책을 거의 읽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 ‘책 읽는 습관이 들지 않아서’(35.6%), ‘학업·취업 준비로 책을 읽을 여유가 없어서’(27.6%) 등이 꼽혔다.

특히 ‘책이 아니어도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루트가 많아서’(15.7%), ‘책 이외에 재미있는 것이 많아서’(11.5%)라는 다소 황당한 이유가 뒤를 이었다.

개권유익(開券有益: 책은 펴기만 해도 이롭다)이라는 말이 있다. 책이 모든 걸 해결해주지는 않지만 많은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올 가을 선선한 바람과 따뜻한 햇살 아래서 한권의 책을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커버스토리] 시대가 원하는 책은 따로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
www.moneyweek.co.kr) 추석합본호(제402호·제40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