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차 전성시대다. 올해 새로 출고된 차 중 16%가량이 수입차다. 이미 월평균 판매량이 2만대를 넘어섰고 점유율은 매년 최고치를 경신하며 20%에 육박한다.


그런데 도무지 나아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 바로 차량 판매 후 서비스인 A/S다. 본사와 정비센터의 소통 부재로 한국 소비자를 '호갱'(어수룩해 이용하기 좋은 손님) 취급하는 수입차업계의 부실한 A/S가 심각한 수준이다. 수입차업체들이 판매에만 열을 올리고 정작 고객서비스는 소홀하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실태는 어떨까. 수입차업체들의 부실한 A/S가 과연 어느 정도인지 실제 사례를 탐문 취재했다.

이번에 소개할 '황당 A/S' 사례는 닛산자동차의 ‘캐시카이’다. 지난 7월12일 출고된 이 차량은 어찌된 영문인지 지난 7월26일 이후 달리지 못하고 있다. 보름도 안 돼 새차와 생이별한 소유주 이모씨는 황당하고 억울한 심경이 들 수밖에 없었다.


◆ A/S 두달째, 돌아오지 않는 캐시카이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이모씨는 닛산자동차의 대구지역 딜러사인 신창모터스를 통해 닛산의 SUV 캐시카이를 구입해 지난 7월12일 차량을 인도 받았다. 하지만 새차를 뽑았다는 기쁨도 잠시, 불과 2주후 차량 계기판의 모든 센서가 오작동을 일으키는 문제가 발생해 차량을 닛산 대구지역 A/S센터에 입고시켰다.

단순한 소프트웨어계통 오류로 여긴 A/S센터의 진단에 따라 약 7시간을 대기했으나 결국 차량 정비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후 A/S센터는 “큰 문제는 아니니 조만간 수리해 연락을 주겠다”며 닛산차의 다른 모델 ‘큐브’를 대차해 줬다.


사자마자 함흥차사가 된 수입차 이야기

이틀 뒤인 7월28일, 이씨는 A/S센터 측으로부터 ABS제어장치(유압모듈레이터) 불량 때문이라며 부품이 해외에서 오기 때문에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이후 시간이 흘러 8월3일, A/S센터 측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러나 해외에서 부품을 가져와 교체한다던 A/S센터 측은 말을 바꿨다. "다른 차에서 떼어낸 ABS제어장치로 교체했는데 증상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황당한 진단을 내놨다. 그러더니 한술 더 떠 “엔진룸 배선 전량교체를 해봐야 할 것 같다”며 또다시 해외에서 부품이 와야 하기 때문에 부품수급에 시간이 걸리니 더 기다리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고 이씨는 전했다.


하지만 이후부터는 감감무소식. 취재가 진행된 지난달 23일 현재까지 온다던 부품은 어찌된 영문인지 아무런 설명도 없이 오지 않고, 차량은 A/S센터에 먼지만 쌓인 채 방치돼 있다. 덕분에 새차 캐시카이를 몰고 도로를 달려야 할 이씨는 아직도 한숨만 내쉬고 있다. 

사자마자 함흥차사가 된 수입차 이야기

◆ 고장 나면 해외서 부품 언제 올지 몰라

도대체 온다던 부품은 왜 안 오는 것일까. 이에 대해 신창모터스 측은 “본사에서 부품을 신청해 보내줘야 하는데 움직이질 않고 있다”며 본사의 업무시스템을 질타했다.

이에 대해 한국닛산 관계자는 “이번에 문제가 된 부품은 엔진 하네스(harness)라는 특수부품”이라며 “캐시카이를 생산하는 영국 선더랜드 공장에서 공수하는데 상당한 시일이 소요된다”고 해명했다.


한국닛산의 말대로라면 캐시카이 차량의 특수한 부품이 고장 날 경우 소비자는 이씨처럼 기약 없이 기다려야만 한다는 것이다. 한국닛산 측은 “문제가 제기된 부품은 범퍼나 깜빡이 등 소모성 부품이 아니기 때문에 국내에는 구비하지 않고 있다”며 “이런 부품은 고장 나는 경우도 거의 없고 이번 문제도 처음 발생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한국닛산이 특수한 부품이라고 이야기하는 엔진 하네스는 실제 어떤 부품일까. 서울 성수동에 있는 A 차량정비소에 확인한 결과 이 부품은 ‘배선집합체’였다. 이곳 정비사는 “엔진에 연결하는 배선인 하네스가 무슨 특수부품이냐”며 “온라인이나 구매대행을 통해서도 일주일이면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부품이 귀한 게 아니라 엔진과 전자기기장치 사이를 맞춰주는 소프트웨어 설정을 해야 하는데 닛산측 A/S정비센터가 그 작업을 할 줄 모르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 정비사의 설명대로라면 결국 한국닛산과 딜러사가 한 고객을 상대로 해외 부품수급을 핑계로 시간만 끌어 왔으며, 닛산의 국내 A/S센터는 기본적인 소모품 교체만 가능한 '보여주기식 A/S'를 하는 곳이라는 이야기다.

이 정비사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한국닛산 관계자 역시 “엔진 하네스 소프트웨어 교체서비스는 국내에서 진행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고 말했다.

닛산 차량정비내역서.
닛산 차량정비내역서.
◆ 책임 서로 떠넘기는 딜러사와 본사

이처럼 인도된 지 불과 보름도 안 돼 고장이 난 차량을 두고 딜러사와 본사가 모른 척하는 사이 고객은 얼마나 속이 탓을까.

이씨에 따르면 차량을 팔 때의 싹싹함은 온데간데없고 딜러사와 본사는 서로 떠넘기기에 바빴다. 딜러사 측은 고발하라고 윽박지르기까지 했다. 이씨가 녹취한 전화 통화내용에 따르면 신창모터스 모 팀장은 “차량 A/S에 대해 본사(한국닛산)에서 움직이질 않으니 그냥 소비자보호원(소보원)에 고발을 하든지 법적 절차를 밟으라”고 말했다.

이에 이씨는 딜러사와 본사에 차량 A/S에 대한 조치를 조속히 해줄 것을 요구하는 내용증명과 함께 소보원에 피해사실을 접수했지만 지금까지 딜러사와 본사 측은 어떤 해결방안도 내놓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취재가 들어가자 한국닛산 측의 태도는 급변했다. 지난달 23일 오후 한국닛산 관계자는 기자에게 “고객이 A/S 문제로 그동안 겪은 어려움을 충분히 공감한다”며 “본사에서 차량을 교환해주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어 “사실 부품결함으로 인해 차량을 교체해주는 일은 거의 없는데 이번엔 특별히 신경썼다”고 부연했다.

한국닛산 측의 연락을 받은 직후 이씨도 전화를 걸어와 “방금 딜러사에서 새차로 교환해준다는 연락을 받았다. 감사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씨는 “그동안 아무리 내 차를 고쳐달라고, 돌려달라고 요구해도 묵살하다 문제가 커질 거 같으니 태도를 바꾼 한국닛산의 행태가 괘씸하다”고 혀를 내둘렀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0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