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감 같은 건 없었다. 글자 다루는 일이 신기해 서예부터 배웠다. 그렇게 자연스레 각수(刻手·판목에 글자를 새기는 사람)의 길을 걸었다. 각수가 되는 길은 생각보다 험난했다. 돈 벌기가 어려웠고 설 자리도 차츰 좁아졌다. 하지만 다른 길은 보지 못했다. 그저 길 없는 길을 계속 걸었다. 문득 뒤돌아보니 거기에 새길이 나 있었다.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도리원 귀퉁이에 자리 잡은 웅산서각연구실. 이 공간은 지금 시대를 모르는 듯 고요하고 아늑했다. 월요일 오후라는 시간이 무색했다. 시간을 놓쳐버린 듯한 공간이었지만 시간은 분명 흐르고 있었다. 느린 맥박 같은 움직임으로 과거의 시간을 누군가가 끊임없이 흘려보내고 있었다.

거대하고 깊은 뿌리를 박아놓은 듯 각수 김승환씨(56)가 작업장 의자에 등을 붙이고 스탠드 불빛 아래서 과거의 글자를 새기고 있었다. 15년간 작업실을 지켜내며 오래된 업을 이어가는 김씨가 궁금해졌다. 나무, 글자, 각자(刻字)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시작된 연유는 무엇일까.


/사진=박효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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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사각’ 무뎌진 시간을 깎다

경상북도는 전국 공개모집을 통해 지난 7월 ‘목판사업의 꽃’ 각수 7명을 최종 선발했다. 고려시대 후기 일연스님이 저술한 <삼국유사>를 목판으로 복원하기 위해서다. 조선시대 초·중기 목판작업 이후 500여년 만의 복원작업이다. 김승환씨는 경상북도가 선발한 우리나라에 몇 안되는 각수 중 한명이다. 그는 매일 아침 8시에 작업실 문을 열고 저녁 10시에 문을 닫는다.

그가 작업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는 오른손에 든 작은 망치로 왼손으로 잡은 끌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끌이 나무속을 파고들면서 양각의 글씨가 새겨졌다. 그가 작업하는 부분은 조선시대 중기 판본으로 <삼국유사> 9편 중 2편인 ‘기이편’이다. 목판 한장당 한줄에 21자씩, 모두 21줄을 새긴다. 전국 7명의 각수가 <삼국유사> 목판을 부분별로 나눠 동시에 새기고 있지만 필체는 마치 한사람이 쓴 것처럼 새겨야 한다. 판각 전 일정기간 훈련을 받아 그들의 실력은 상향 평준화돼 있다.


“저보다 오래 하고 잘하는 분들이 많아서 제가 얘기해줄 만한 게 별로 없을 텐데요. 각수라고 불릴 만한 사람도 못되고요.”

처음에 그는 이 말을 반복했다. 그의 이야기는 글자란 매듭을 풀어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시간을 꼭꼭 밟고 지나온 그의 결론은 기본이다. 그가 말한 기본은 글자에 대한 물음부터 시작됐다. 


/사진=박효선 기자
/사진=박효선 기자

“처음부터 서각을 한 것은 아니고 서예를 전공했어요. 서예를 갈고 닦으며 접했던 서각(각자)에 매력을 느꼈죠. 서예가 평면적인 예술이라면 서각은 서예의 모든 기법에 각법, 도법, 채법 등 여러 기법이 가미되고 목재, 돌, 기와, 동, 흙 등 다양한 재료를 쓸 수 있어 이런 무한한 가능성에 매료됐습니다. 서각작업이나 작품활동을 주로 하는데 요즘은 <삼국유사> 각수로 선발돼 목판에 집중하고 있죠.”

그는 오랜 세월 글자와 함께 살아왔다. 서예를 배웠기에 글자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알고 있다. 김씨가 갈고 닦은 서예의 내공은 각자의 서체를 개발하는 원동력이 됐고 섬세한 칼질에도 큰 도움이 됐다.

“지금 하는 작업도 결국 서예의 연결선상에 있지요. 서예를 배우지 않고 목판작업을 하려면 어려울 겁니다. 그냥 다른 사람들이 써놓은 글씨 그대로 파는 거니까요. 그건 내 것이 아니죠. 진짜 각수가 되려면 기술과 예술을 함께 갖춰야 해요. 그래서 저는 서각이란 일이 통합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서각은 서예·목공예 다루는 통합예술”

그가 <삼국유사>를 복각하는 과정은 이렇다. 한국국학진흥원에서 보내온 <삼국유사> 등재본을 건네받아 나무판에 풀로 붙여 말린 후 예리한 조각칼로 글씨파기에 들어간다. 글자가 틀리면 틀린 글자를 다시 파낸다. 다른 나무에서 몇개의 글자를 깎아낸 뒤 아교를 발라 글씨를 파낸 자리에 붙이는 식이다.


끌을 잡는 왼손은 망치를 잡는 오른손보다 힘이 더 들어간다. 오른손의 망치질을 받쳐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왼손은 자주 아프고 고되다. 오랜 작업으로 손끝이 갈라지고 피가 흐를 때도 있다. 그래도 나무를 다루는 게 좋다고 그는 말한다. 

/사진=박효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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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를 작업할 때 쓰는 재목은 산벚나무라고 산에서 자생하는 나무인데 글자가 워낙 작고 세밀하다 보니 작업할 때 조금도 갈라지지 않아야 해서 이 나무를 씁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나무를 새기고 있을 때가 행복해요. 나무는 흙처럼 너무 무르거나 돌처럼 너무 강하지 않아 나름의 강도를 조절할 수 있거든요.”

<삼국유사>의 목판작업을 하면서 김씨는 나뭇결에 ‘혼’이 있음을 느낀다. <삼국유사> 목판 위에서 그는 현재와 과거의 시간을 넘나들고 있다.

“(조각)칼을 집어 넣어보면 옛 각수들이 어떻게 작업을 했는지 알 수 있죠. 칼의 방향이 이렇게 들어갔구나. 다음 획을 이렇게 틀었구나. 이게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운데 저로서는 굉장히 신비로운 경험입니다.”

<삼국유사> 기이편 작업 완성본
<삼국유사> 기이편 작업 완성본

글자를 새길 때면 <삼국유사> 속 오래된 문자들이 신호가 돼 부유했다. 그 신호는 희로애락의 조각이다. <삼국유사> 속 문자들은 너무나 큰 세계를 이야기하려 한다. 그 모든 이야기를 목판 위에 담는 일이 때론 버겁다. 김씨는 <삼국유사>가 보내는 신호를 조각칼 끝으로 받으려 안간힘을 썼다. 머리로 읽지 못해도 손끝으로 <삼국유사>가 전하는 신호를 감지하기 위해서다.

승려 일연이 <삼국유사>에 담은 시간은 광속으로 날아와 2015년에 다시 새겨지고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0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