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9년 6월. 삼성물산 유통사업 부문은 구조조정이 한창이었다. 점포 2개, 업계순위 12위. 작은 회사에 불과했지만 글로벌 유통기업인 영국 테스코와 손잡고 지금의 ‘홈플러스’를 설립한 뒤 상황이 반전됐다. 2개에 불과하던 매장 수는 141개까지 늘었다. 800명이던 직원 수는 2만6000명으로 33배 불어났고, 2000억원이던 매출은 11조원으로 커졌다. 업계 순위가 단숨에 2위까지 올랐다. 하지만 이도 잠시. 과다한 부채를 견디지 못하고 또다시 새 주인을 기다리는 처지가 됐다.


#. 16년 만에 테스코가 떠나고 홈플러스 안방을 꿰 찬 주인공은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다. 매각가는 무려 7조2000억원. 단일 규모로는 국내 최대 M&A라는 신기록을 세우면서 MBK는 홈플러스의 고질적인 노사갈등 해결, 실적회복 등 다양한 숙제를 떠안게 됐다. 업계가 무엇보다 주목한 것은 홈플러스 경영진의 거취. 도성환 사장이 ‘해임되느냐 마느냐’가 최대 이슈로 떠오를 만큼 업계에선 여러가지 시나리오를 내놨다. 일단 도 사장 스스로 자리보전에는 성공한 상황. 문제는 그 다음이다.

“도성환 빼고 다 바뀌었다.” 본격적으로 'MBK 색 입히기'에 들어간 홈플러스를 두고 업계 안팎에서 흘러나오는 말이다. 실제 MBK파트너스는 기존 테스코 임원들로 채워졌던 사내이사를 교체하고, 홈플러스 지배구조를 지주회사 형태로 변경하는 등 '테스코 색깔 빼기'에 여념이 없는 모양새다.

/사진=뉴시스 DB
/사진=뉴시스 DB

◆ 테스코 색깔 빼기… 지배구조 개편

지난 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홈플러스 매장 내에서 베이커리 등을 생산하는 홈플러스베이커리가 홈플러스홀딩스로 사명을 바꾸고 지주회사로 자리 잡았다.


홈플러스는 보유하던 홈플러스홀딩스 지분 100%를 한국리테일투자(54.46%), 한국리테일투자2호(40.54%), CPP인베스트먼트(5%) 등에 전량 양도했다. 이들 3개 회사는 MBK파트너스의 특수목적법인이다. 지배구조 변경을 위해 홈플러스홀딩스는 한국리테일투자, 한국리테일투자2호, CPP인베스트먼트에 각각 전환사채를 발행했다.

MBK파트너스 컨소시엄이 홈플러스홀딩스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산하에 홈플러스, 홈플러스스토어즈(옛 홈플러스테스코) 등의 계열사를 두는 사실상 지주회사 체제를 갖춘 것이다. 이에 따라 홈플러스의 지배구조는 ‘MBK파트너스-홈플러스홀딩스-홈플러스스토어즈-홈플러스’의 순으로 변경됐다.


지배구조 변경과 함께 등기임원 물갈이도 이뤄졌다. 도 사장을 제외한 나머지 사내이사를 모두 등기이사직에서 해임하고 그 자리는 MBK파트너스 인물들로 채워졌다.

새로 선임된 이사는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과 김광일 MBK파트너스 대표, 박태현 MBK파트너스 부사장, 민병석 MBK파트너스 전무, 김수이 CPP인베스트먼트 아시아 사모투자부문 대표 등 5명이다. CPP인베스트먼트도 MBK 측으로 분류되는 만큼 사내 이사 전원이 MBK 소속인 셈이다. 새 감사에는 이인경 MBK 전무(CFO)가 이름을 올렸다.

도 사장의 입지는 한층 강화됐다. 홈플러스를 비롯해 홈플러스홀딩스, 홈플러스스토어즈의 대표이사로 취임하면서 MBK에 안긴 ‘도성환 체제’가 첫발을 내디뎠다는 평이다. 기존 정종표 홈플러스테스코 대표이사와 이혁수 홈플러스홀딩스 대표이사는 모두 자리에서 물러났다.


/사진=뉴스1 DB
/사진=뉴스1 DB
◆ 3개 계열사 수장… 순항할지는 물음표

기존에 도 사장의 거취를 두고 말이 많았던 만큼 업계에서는 의외라는 시각도 나온다. 더구나 지금까지 홈플러스에서는 홈플러스를 이끄는 수장이 다른 계열사의 대표이사를 겸임하지 않고 각자 대표이사 체제로 운영돼 왔다.

우선은 MBK 파트너스의 기존 사장 재신임정책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MBK파트너스가 도 사장의 업무능력을 인정, 친정 체제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행보라는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그동안 MBK는 주요 인수기업에 대해 사내이사와 핵심 보직에 자사의 인사들을 파견, 경영을 관할하도록 해왔다”면서 “홈플러스의 경우에도 이러한 방식이 그대로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도성환 호가 순항할지는 의문이다. MBK는 지난 2013년 웅진코웨이를 약 1조원에 인수한 후 환경가전 경쟁력 강화 등을 통해 시장가치를 3조원 수준으로 높인 경험이 있는 회사로, 통상 재매각을 통한 시세 차익을 얻는 사모펀드 특성이 발휘될 경우 상황이 반전될 수 있어서다.

MBK가 단기간에 홈플러스 재매각에 시동을 걸 경우 안정적인 경영권을 유지하려는 도 사장과는 마찰이 일 수 있다. 이 경우 서로 이견차가 커 도 사장의 자리보전은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따라서 향후 도 사장의 거취가 홈플러스 재매각시점을 감지하는 잣대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도 사장은 초대 이승한 회장에 이어 홈플러스 사령탑을 이어받았으나 늘 이 전 회장의 그림자 속에서 사퇴설이 나돌 만큼 논란의 중심에 섰고 각종 악재에 휘말리며 이렇다 할 경영성과를 내지 못했다”며 “그런 그가 자리를 지켰다는 것은 다시 말해 MBK의 목표가 홈플러스 키우기에 있지 않다는 방증”이라고 꼬집었다.

도 사장이 이러한 우려를 딛고 MBK표 홈플러스 수장으로 자리를 굳힐 수 있을까. 어쩌면 지금이 도 사장의 30년 유통 인생에서 가장 위태로운 기로이자 부담일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진단이다. 도 사장의 앞날이 험난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0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