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정가제 1년, 책값 내렸다는데 왜 안 팔릴까
서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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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가제’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도서정가제는 문화의 다양성을 확보하자는 취지의 제도다. 다품종 소량 생산이 주를 이루는 ‘도서’ 상품의 시장 실패 가능성을 방지하고, 출판산업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소사업자를 가격경쟁으로부터 보호한다는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취지대로라면 다양한 양질의 출판물이 발행되고 유통될 수 있는 출판환경이 구축될 것이다. 도서정가제의 시행을 적극 지지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12일 발표된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출판시장 변화 추이 결과도 나쁘지 않다. 도서정가제가 시행된 지난해 11월21일부터 올해 10월31일까지 약 11개월 동안 신간 도서의 가격은 지난해 1만9106원에서 올해 1만7916원으로 6.2% 떨어졌다. 도서정가제 시행 100일 당시의 평균정가 1만8648원에 비해서도 2.1% 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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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가제가 시행된 지난해 11월21일부터 올해 10월31일까지 약 11개월 동안 신간 도서의 가격은 지난해 1만9106원에서 올해 1만7916원으로 6.2% 떨어졌다. /자료=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
그러나 출판업계 상황은 좋지 않다. 한국출판인회의의 최근조사 결과에 따르면 114개 출판사 중에서 약 70%인 81개사가 도서정가제 이후 매출액이 하락했다. 이중 78.6%는 도서정가제 때문이라 판단했다. 실제 전체 도서 판매량이 감소세인 점은 이를 방증한다. 통계청이 집계한 전국 2인 이상 가구의 월평균 실질 가계수지에서 2015년 상반기 서적 구입비는 전년 동기 대비 13.9% 감소했다. 책값은 내렸지만 책은 팔리지 않았던 것이다.
도서정가제로 도서의 평균 가격은 내렸지만 정작 출판사와 서점의 매출액과 소비자의 구매액은 모두 줄어든 실정이다. 왜 그럴까. 서혜란 신라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도서정가제에서는 가격경쟁을 명백하게 제한하기 때문에 도서가격이 상승하게 되어 소비자는 비싼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며 “특히 가격에 대해 비탄력적인 학술 서적의 경우 정가가 지나치게 높게 책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신간 도서의 평균가는 하락하더라도 대중성을 띄지 않는 도서의 경우 오히려 가격이 상승하여 시민들이 문화의 다양성을 접할 기회는 오히려 줄게 된 것이다. 전체 도서 판매량은 감소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서 교수는 또 “장기적으로 업계의 경쟁력을 후퇴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도서정가제로 인해 가격상승과 선택권 박탈을 경험한 독자들은 도서구매를 줄이게 되고 독서인구 증가가 둔화될 가능성이 있다”며 “도서판매는 오히려 감소되어 출판업계와 서점업계에 모두 타격을 줄 것”을 우려했다. 예컨대 출판 기간별이나 이용자별로 자유로운 할인이 금지되기 때문에 소비자인 독자는 가격에 근거한 선택권을 잃어버리게 된다. 즉, 싸게 살 수 있는 길이 애초 차단되어 도서구매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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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가제로 인해 가격상승과 선택권 박탈을 경험한 독자들은 도서구매를 줄이게 되고 독서인구 증가가 둔화될 가능성이 있다(사진은 기사내용과 무관). /자료사진=이미지투데이 |
해외의 경우는 어떨까. OECD 회원국 중 도서정가제를 시행하고 있는 국가는 15개국, 도서가격 할인이 자유로운 비시행국가는 29개국이다. 시행국 중 유럽에 속한 회원국은 12개국으로 유럽국이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유럽국가 중 도서정가제 규제기간을 무제한으로 둔 곳은 없다. 규제기간이 가장 짧은 나라는 슬로베니아로 6개월에 그쳤고, 가장 긴 국가인 프랑스·그리스·오스트리아 스페인 등은 2년이었다. ‘18개월 이후 정가변경 가능’이란 조건이 있지만 규제기간이 기본 ‘무제한’인 한국에서 가격 하락을 기대하긴 어렵다. 특히 독자가 많이 찾는 도서의 경우 오히려 가격이 오를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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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의 도서정가제 시행 현황. /자료=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14. |
도서관의 사정도 나쁘다. 국내도서의 구입비중이 높은 공공도서관과 학교도서관들의 경우 경제여건이 좋지 않은 탓에 도서관의 예산압박은 가중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도서정가제 시행은 자료구입예산의 감축 효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더구나 ‘지역서점 살리기’라는 명분을 앞세워 도서관의 자료구입 방법과 절차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의 개입이 늘어나고 있다. 도서관 장서개발의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이 흔들린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서 교수는 “도서정가제를 시행하는 해외 국가의 경우 도서관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할인을 허용하는 사례가 많다”고 했다. 그는 해외에서 이러한 사례가 많은 이유가 “출판생태계에서 도서관의 공공적 역할을 인정하기 때문”이라며 “출판유통의 다양성과 건전성 확보라는 명분을 내세워 도서관에 도서정가제를 적용하는 것은 자기모순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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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도서의 구입비중이 높은 공공도서관과 학교도서관들의 경우 경제여건이 좋지 않은 탓에 도서관의 예산압박은 가중되고 있다(사진은 기사내용과 무관). /자료사진=이미지투데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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