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지난 2011년 봄, 서울 A병원 중환자실에 입원 중이던 임신부 다섯 명이 연쇄적으로 사망했다. 공통된 사인은 급성 폐질환이었다.

원인도, 치료법도 몰라 '걸리면 죽는다'는 괴담이 산모들 사이에서 돌기도 했다. 감기 기운이 있다가 갑자기 호흡곤란이 오고, 급작스레 병세가 악화돼 한 달 안에 사망에 이르는 기이한 증세였다. 그런데 산모들이 의문의 질환으로 사망하기 3년 전 봄, 똑같은 증상으로 영유아들이 사망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홍수종 질병관리본부 폐손상조사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중환자실에서 중증 폐렴으로 입원하는 산모들은 1년에 한 두 명에서 세 명밖에 없었다"며 "산모들이 중증 폐렴으로까지 가는 경우는 굉장히 흔치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또 "이건 뭔가 일이 생긴 것이며, 뭔지 모르지만 굉장히 위험한, 우리가 모르는 뭐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영유아와 산모들의 죽음에 연쇄적으로 발생하자 A병원 의료진은 이를 질병관리본부에 알렸고, 가족단위의 집단 발병이 이어지자 대대적인 역학조사가 시작됐다. 환자들의 진료 기록을 살피자 처음 이상이 생긴 곳은 기관지 주변으로 밝혀졌다.


전문가들은 흡입 가능한, 공기 중 떠다니는 무언가로 괴질의 원인이 될 용의선상을 좁혔다. 바로 떠오른 건 황사와 담배 같은 유해 환경이었지만, 주로 집안에서 생활하는 임신부와 아이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의문의 죽음을 당한 사람들 사이에 묘한 공통점이 발견됐다.

사망자들 대부분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각별히 건강에 신경 쓰고 있었고, 특히 실내 습도유지를 위해 가습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습기 청결을 위해 당시 유행하던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연쇄적인 산모 사망의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라는 것이 드러났다.


마트에서 누구나 쉽게 살 수 있었던 이 제품으로 무려 143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망자의 절반 이상(56%)이 영유아인 사상 초유의 참사였다. 그럼에도 가습기 살균제 제조 업체 및 판매 업체들의 사과와 피해자 보상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고, 사법 처리된 책임자 역시 없다.

한편, 지난 21일 오후에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이처럼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가 없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을 둘러싼 의문을 파헤쳐 이목을 집중시켰다.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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