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올해의 사자성어’와 ‘희망의 사자성어’
서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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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사자성어’ ‘희망의 사자성어’
매년 말 <교수신문>은 ‘올해의 사자성어’를 선정한다. 당해 한국사회를 조망할 수 있는 촌철살인이다. ‘희망의 사자성어’도 있다. <교수신문>이 매년 초 당해 한국사회의 진일보를 향한 바람을 담아 선택된 사자성어다. ‘올해의 사자성어’가 한국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을 꼬집는 말이라면, ‘희망의 사자성어’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책과 희망이 담긴 말이라 할 수 있다.
이명박정부가 마무리되고 박근혜정부가 처음 들어선 2013년 초, 새해 희망을 담은 사자성어로 교수들은 ‘제구포신(除舊布新)’을 선택했다. ‘묵은 것을 제거하고 새로운 것을 펼쳐낸다’는 뜻이다.
당시 박명진 중앙대 교수(국문학)는 “대선을 통해 고질적인 지역 갈등, 이데올로기 갈등, 계층 간 갈등이 심화됐다. 새로운 정부는 구악을 퇴치하고 새로운 가치관과 시민의식을 고양해야 한다”라고 말하며 대선이 한국사회에 남긴 생채기를 보듬어야 한다는 주문을 남겼다. 정권이 교체됨으로써 희망의 메시지가 담긴 사자성어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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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2월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광장에서 열린 제18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자료사진=뉴스1 |
◆‘도행역시(倒行逆施)’와 ‘전미개오(轉迷開悟)’
그러나 희망은 오래가지 못했다. 교수들은 2013년 한 해를 상징하는 사자성어로 ‘도행역시(倒行逆施)’를 뽑았다. ‘순리를 거슬러 행동한다’라는 뜻이다. 같은 해 초 ‘희망의 사자성어’로 선정된 ‘제구포신(除舊布新)’은 1년을 넘지 못했다. 오히려 교수들은 2013년 한국 사회를 “잘못된 길을 고집하거나 시대착오적으로 나쁜 일을 꾀한다(‘도행역시’의 뜻)”라고 꼬집었다.
당시 도행역시를 추천한 육영수 중앙대 교수(서양사)는 “박근혜정부 출현 이후 국민들의 기대와는 달리 역사의 수레바퀴를 퇴행적으로 후퇴시키는 정책·인사가 고집되는 것을 염려하고 경계한다”며 추천 이유를 밝혔다.
김선욱 숭실대 교수(철학과)는 “한국 최초의 여성대통령, 부녀대통령으로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리더십을 기대했지만, 오히려 과거의 답답했던 시대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였다”라며 “국정에서 민주주의의 장점보다는 권위주의적 모습이 더 많이 보인 한 해였다”고 말했다. 한국사회의 미래를 향한 희망이 무너지는 것을 넘어, 도리어 과거 사회로의 퇴행에 대한 절망이 담긴 것이다.
교수들은 2014년 새해 희망을 담아 ‘미망에서 돌아나와 깨달음을 얻자’는 뜻의 ‘전미개오(轉迷開悟)’를 ‘2014년 희망의 사자성어’로 선택했다. 이는 ‘번뇌로부터 벗어나 깨달음(열반)에 이르다’는 불교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이기도 하다.
이를 추천한 문성훈 서울여대 교수(사회철학)는 “전미개오의 의미는 속임과 거짓됨에서 벗어나 세상을 밝게 보자는 것이다”라며 “2013년 한 해 동안 있었던 속임과 거짓에서 벗어나 진실을 깨닫고 새로운 한 해를 열어가자”는 의미에서 이 사자성어를 추천했다고 밝혔다.
반면 위정자와 국민 모두의 각성에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김귀옥 한성대 교수(사회학과)는 “민주주의는 국민의 참여와 성찰의 힘이 하나의 기둥이 될 때 실질적으로 작동되고, 백성을 종으로 생각하는 지도자를 깨닫게 할 수 있다”라며 “국민과 지도자의 대오각성이야말로 현 정국이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막고, 상생과 번영의 길로 가게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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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19일 통합진보당은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 판결을 내렸다. /자료사진=뉴시스 |
◆‘지록위마(指鹿爲馬)’와 ‘정본청원(正本淸源)’
2014년을 대표하는 올해의 사자성어는 ‘지록위마(指鹿爲馬)’였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일컫는다’는 뜻으로, <사기> ‘진시황본기’에서 조고가 황제에게 사슴을 말이라고 고함으로써 진실과 거짓을 제멋대로 조작하고 속였다는 데서 유래했다.
지록위마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추천한 곽복선 경성대 교수(중국통상학과)는 “2014년은 수많은 사슴들이 말로 바뀐 한 해였다”며 “온갖 거짓이 진실인양 우리사회를 강타했다. 사회 어느 구석에서도 말의 진짜 모습은 볼 수 없었다”라고 이유를 밝혔다.
구사회 선문대 교수(국어국문학과)도 “세월호 참사, 정윤회의 국정 개입 사건 등을 보면 정부가 사건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교수신문>이 선정한 2015년 희망의 사자성어는 ‘정본청원(正本淸源)’이었다. 교수들은 위선과 무책임으로 얼룩졌던 2014년을 보내며 2015년은 정본청원의 한해가 되길 희망했다. 정본청원은 ‘본을 바르게 하고 근원을 맑게 한다’는 뜻이다. 전년도인 2014년의 한국사회가 ‘근본’이 얼마만큼 무너졌는지 ‘2015년 희망의 사자성어’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었다.
정본청원을 선택한 김인섭 숭실대 교수(문예창작학과)는 “근본이 세워지면 도리가 생긴다는 말이 있는 바, 우리 사회의 문제적 현상들은 근본이 부재한 데서 비롯된다”라고 지적했다. 이도원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환경생태학)는 “사회구조적인 문제의 근본적인 치유를 위한 원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선택 이유를 밝혔다.
특히 2014년에 발생한 대형참사 등의 원인을 되짚은 교수들이 많았다. 윤민중 충남대 명예교수(화학과)는 “2014년에 있었던 참사와 부정부패 등은 원칙과 법을 무시한 데서 비롯됐다”며 “새해에는 기본을 세우고 원칙에 충실한 국가사회를 희망한다”라고 말했다. 정해룡 부경대 교수(영어영문학과) 역시 “모든 사고는 반칙에서 시작된다. 원칙은 법으로 규제할 수 있지만 법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마음, 즉 도덕이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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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16일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 생존한 안산단원고등학교 학생이 사고 당일 오후 경기 안산고대병원에서 가족과 재회하고 있다. 세월호는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에서 침몰했다. 295명이 사망했고 9명이 실종됐다. /자료사진=뉴스1 |
◆‘혼용무도(昏庸無道)’, 그리고 ‘2016년 희망의 사자성어’
2015년 한국 사회를 규정하는 사자성어로 대학교수들은 ‘혼용무도(昏庸無道)’를 꼽았다. ‘나라 상황이 암흑에 뒤덮인 것처럼 온통 어지럽다’는 뜻이다. ‘혼용무도’를 추천한 이승환 고려대 철학과 교수는 “역사가들은 ‘혼용무도’의 표본으로 중국 진나라 2세 황제 호해를 들곤 한다”면서 “호해는 환관의 농간에 귀가 멀어 실정과 폭정을 거듭하다 즉위 4년 만에 반란군의 겁박에 의해 자결하고 진은 멸망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2015년 한국의 상황을 가리켜 “연초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민심이 흉흉했으나 정부는 이를 통제하지 못하는 무능함을 보여줬다. 중반에는 청와대가 여당 원내대표에게 사퇴 압력을 가하면서 삼권분립과 의회주의 원칙이 크게 훼손됐고, 후반기에 들어서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으로 국력의 낭비가 초래됐다”고 비판했다.
2015년이 저물어간다. 사람들은 새 해를 보면 다시금 소원을 빌 것이다. 매일같이 뜨는 해지만 사람들은 ‘새 해’라며 의미를 부여한다. 희망을 가진다. 백발 노부부들도 두 손을 모은다. 시간이 지남에 희망이 절망의 나락으로 빠질지라도, 바닥을 딛고 올라서듯 다시 일어설 채비를 한다. 2016년 희망의 사자성어는 무엇이 될까. 새 희망을 가리킬 말이 곧 나온다. ‘2016년 희망의 사자성어’는 무엇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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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이미지투데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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