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스무살 성균은 삼천포에서 막 상경해 난생 처음 타보는 지하철 개표구를 들어서며 긴장한다. 매표소 직원에게 ‘신촌역 어른 한장이요’를 외치고 당당하게 걸어온 것까지는 좋았는데 개표기계가 인출한 표를 그만 두고 가버린다.


지금은 볼 수 없는 광경이지만 불과 20년 전, 그땐 그랬다. 지하철 매표소 앞에 길게 줄을 서고 종이로 만들어진 지하철 표를 샀다. 거의 모든 것이 자동화된 지금은 볼 수 없는, 옛날 지하철의 모습이다.


1980년대 지하철 1호선 매표소. /사진제공=서울메트로
1980년대 지하철 1호선 매표소. /사진제공=서울메트로
시민들이 지하철 1회권을 구매하고 있다. /사진=뉴스1 손형주 기자
시민들이 지하철 1회권을 구매하고 있다. /사진=뉴스1 손형주 기자

◆교통카드·일회용카드·스크린도어 등장

“말도 마세요. 승차권 두고 왔다고 나가게 해달라는 손님이 하루에 100명은 있던 것 같습니다.”

홍경수 서울메트로 영업관리팀 부장은 “시골에서 상경하면 100% 표를 잃어버리더라. 옛날 지하철 표는 탈 때 기기에 넣었다가 뺀 후 내릴 때 다시 써야 하는데 많은 손님이 두고 가 난감했다”고 회상했다.


사진출처=블로그 메트로이야기
사진출처=블로그 메트로이야기
서울메트로는 지하철 1~4호선을 운영하는 회사다. 홍경수 부장은 1985년 입사해 동대문역에서 근무했고 건대입구역장을 거쳐 현재의 본사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예전에는 모든 것을 손으로 직접 하다 보니 한 역에 직원이 20명씩 있기도 했다”며 “지금은 매표소가 사라지고 구매·충전·환불 등 업무가 자동화되면서 직원 수가 3명인 곳도 있다”고 설명했다.

스크린도어(Screen Door)가 생긴 것도 달라진 점이다. 스크린도어는 2003년 승객의 안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처음 도입됐다. 철도업계 관계자는 “투신과 취객 난동사고가 계속 일어나면서 스크린도어 설치가 논의되기 시작했다. 현재 몇개의 역이 예산문제로 스크린도어를 설치하지 못한 상태”라고 말했다.

현재 서울메트로에서 운영하는 1~4호선 120개역, 서울특별시도시철도공사가 운영하는 5~8호선 157개역 전체에 스크린도어가 설치됐다. 코레일이 운영하는 1호선 천안과 의정부 부근의 일부 역만 스크린도어가 없다.


이 관계자는 “역 한곳에 스크린도어를 설치하려면 100억원의 예산이 든다. 설치 이후 고장이 발생할 때마다 수리비가 어마어마하다”며 “조속히 예산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몇년 사이에도 스크린도어가 없는 역에서 투신 시도가 끊이지 않았다. 정부는 내년까지 5330억원을 들여 수도권 지하철 모든 역에 스크린도어를 설치할 계획이다. 홍콩, 싱가포르, 덴마크 등 선진국의 대도시에는 우리보다 먼저 스크린도어가 보편화됐다.


스크린도어. /사진=뉴시스 권현구 기자
스크린도어. /사진=뉴시스 권현구 기자


◆출근길 러시아워… 푸시맨을 기억하나요

1988년 가을 제24회 하계올림픽을 앞둔 서울. 현실 속 지하철은 아비규환의 전장이다. 출근길 시민들은 행여 지하철을 놓칠까봐 목숨마저 내던지겠다는 의지로 열차에 몸을 실었다.


당시에는 지하철 배차간격이 5분 안팎으로 차량 수가 지금과 비교해 절반 이상 적었다. 아침마다 반복되는 ‘출근전쟁’은 사회적 이슈가 될 정도였다. ‘지옥철’, ‘콩나물시루’ 등 지하철을 부르는 별명도 많았다. 만일 붐비는 지하철을 타지 못해 문밖으로 밀려나는 일이라도 생기면 지각할 위기에 처했다.

이때 등장한 사람이 ‘푸시맨’(Push Man)이다. 1호선 인천발과 수원발이 만나는 구로역, 1호선과 2호선이 만나는 신도림역 등 가장 혼잡한 지하철역 20곳에서 푸시맨이 맹활약했다. 당시엔 푸시맨이 ‘신종 아르바이트’로 인기를 모았다. 만원인 객차 안으로 승객을 밀어 넣기 위해서는 힘이 세야 했기 때문에 청년들이 주로 일했다. 홍 부장은 “남자 대학생이 많았고 간혹 노인도 있었지만 여자는 없었다”고 말했다.


1978년 지하철 안 선풍기. /사진 출처=서울메트로
1978년 지하철 안 선풍기. /사진 출처=서울메트로

서울메트로는 푸시맨을 고용해 서비스 교육을 마친 후 현장에 투입했다. 이른 아침 2시간만 근무해도 월급 20만원을 받을 수 있었으니 당시 다른 아르바이트에 비해 급여가 많은 편이었다.

1990년대 초반 푸시맨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홍 부장은 “열차서비스의 질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차량을 늘리고 푸시맨을 없앴다”고 설명했다.

이제는 푸시맨을 대신해 커트맨(Cut Man)을 지하철에서 볼 수 있다. ‘다음 열차를 이용해 주세요’라는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지하철에 올라타려는 승객을 막는다. 서울메트로는 2008년부터 주요 역에 커트맨을 배치하고 승차시간을 단축했다. 커트맨이 푸시맨과 다른 점은 아르바이트생이 아니라 서울메트로의 직원이라는 사실이다.


◆소매치기 사라지고 성범죄 늘었다

지하철수사대는 지하철이 생긴 초반부터 운영됐다. 서울지방경찰청 소속 경찰 1~2명이 각 역마다 파견 근무한다. 서울시민뿐 아니라 지방에서 상경한 승객, 외국인, 노숙인 등 다양한 사람이 모이는 지하철은 노상 범죄에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하철 범죄의 유형도 과거와 현재가 다를까. 과거 지하철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소매치기’였다. 서울올림픽이 열리기 전인 1988년 1~3월 서울지방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지하철에서 경찰이 검거한 소매치기는 90여건, 130여명이며 이는 서울 전체에서 일어난 소매치기 범죄의 20%에 달했다.

소매치기들은 주로 핸드백을 멘 여성을 범행대상으로 택했다. 소매치기범의 절반 이상이 10대 청소년이어서 사회문제도 심각했다. 당시 경찰은 올림픽을 앞두고 소매치기 범죄를 줄이기 위해 지하철범죄수사대를 만들어 수사를 확대했다.


임산부 배려석. /사진제공=서울메트로
임산부 배려석. /사진제공=서울메트로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신용카드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소매치기 검거빈도가 줄었다. 예전처럼 현금을 많이 소지하는 사람이 적어졌기 때문이다.

요즘은 지하철 성범죄가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특히 스마트폰으로 여성의 신체부위를 몰래 촬영하는 지하철 몰카범이 극성이다. 홍 부장은 “옛날에는 시민들이 직접 소매치기를 잡기도 했다. 요즘에는 성추행범이나 몰카범이 기승을 부린다”고 우려했다.

서울특별시청에 따르면 지하철 내 성범죄는 2012년 1031건, 2013년 1307건, 2014년 1356건으로 계속 증가했다. 서울역, 강남역, 사당역에서 가장 많이 발생한다.

서울메트로는 지하철 위급상황 시 스마트폰 문자로 신고할 수 있는 앱을 운영 중이다. ‘시민 안전망 지킴이’는 시민이 위급상황을 알리면 신고위치와 내용이 콜센터 및 종합관제소로 전송된다. 신고접수 즉시 가장 가까운 곳의 보안관이나 지하철수사대가 출동한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지하철 안전 지킴이’도 있다. 성추행을 당했을 때 버튼 한번만 누르면 바로 신고된다. 신고접수 후 출동까지 걸리는 시간이 20∼30분에서 더 짧게 단축될 전망이다.

최근에는 의자와 바닥에 분홍색 띠가 그려진 ‘임산부 배려석’이 늘었다. 서울시는 지하철 승객이 임산부 배려석을 한눈에 알아보고 양보할 수 있도록 자리를 1~8호선으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이원목 서울시 교통정책과장은 “임산부 배려석 개선을 계기로 임산부뿐 아니라 교통약자를 배려하는 대중교통 이용문화가 정착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달라진 위용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지하철은 영국 런던의 지하철이다. 1859년 영국인 변호사 찰스 피어슨(Charles Pearson)이 두더지에서 지하철을 고안해내고 한 회사를 찾아가 사업에 투자하도록 적극 설득했다. 마침내 1863년 런던에 지하철이 개통됐다.

지하철은 수송역사상 가장 기발한 발명품으로 평가된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전기가 발달하지 않아 증기로 열차를 운전했다. 증기기관차가 지하를 달린 첫해, 950만명의 승객이 이를 이용했다. 이어 1890년에는 처음으로 전기에 의해 움직이는 지하철이 생겼다.

서울의 지하철은 1974년 개통된 후 인구지형을 바뀌놓았다. 강북 대 강남의 인구비율이 1970년대 2대1이었지만 2호선 순환선 개통 후 유사해졌다.

지하철 노선이 확장될수록 ‘메트로폴리스’로서 서울의 위용이 강화됐다. 서울 지하철은 9호선까지 개통된 후 연간 수송인원 세계 3위, 지하철역 수로 세계 3위, 운행거리 세계 4위를 달린다.

그사이 지하철의 모습도 많이 바뀌었다. 여름이면 창문을 반쯤 내린 채 천장에서 선풍기가 돌아가던 모습은 사라졌다. 에어컨은 기본이고 찬바람이 싫은 승객을 위해 약냉방칸도 운행한다.

좌석도 달라졌다. 2003년 대구 지하철 방화사고로 192명이 사망하면서 천으로 덮였던 좌석이 불연성 소재로 교체됐다. 플랫폼에서 뿜어내던 후덥지근한 바람을 맞을 일도 없어졌다.

열차의 행선지를 알리는 안내판에도 변화가 생겼다. 지하철의 최종 행선지가 적힌 간판이 요란하게 돌아가던 것이 자취를 감추고 이제는 LED 전광판이 목적지를 알려준다.

지하철 안 풍경도 예전과 다르다. 신문이나 책을 들여다보던 풍경은 사라지고 끊임없이 전화통화를 하거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승객들로 가득찼다. 한국능률협회 설문에 따르면 스마트폰 이용자 중 86.7%가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스마트폰을 본다. 지하철 부가서비스 조사에서는 19%가 ‘무료 와이파이(Wi-fi) 서비스’가 가장 필요하다고 답했다.

신용목 서울시 도시교통본부장은 “초고속 공공 와이파이 구축을 효율적인 민간사업으로 추진하면 통신서비스 비용을 절감하고 부대수익을 창출하는 장점이 있다”며 “지하철 안에서 누구나 편리하게 통신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 서울 지하철의 위상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설합본호(제421호·제42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