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금융’, ‘청년희망펀드 공익신탁’, ‘통일금융’. 한때 시중은행이 앞다퉈 출시한 금융상품이다. 이들 상품은 크게 3가지 공통점이 있다. 정치적 목적으로 개발됐고 출시 전부터 기대보다 우려가 컸으며 지금은 유명무실하거나 실적이 계속 쪼그라드는 추세라는 점이다.


이 중 우리은행 등 일부은행은 MB정권 시절 내놓은 녹색금융상품 판매를 아예 중단했다. 기업은행은 명맥을 유지하지만 실적은 말 그대로 초라하다. 2월16일 현재 55건, 297억원의 실적을 올리는 데 그쳤다.

우려가 컸음에도 은행들이 관련 금융상품을 쏟아낸 이유는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에 동참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다. 만약 시장논리라는 명분으로 이를 거부했다간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이른바 ‘관치금융’이다.


[머니포커스] 금융소비자 외면하는 관치상품, 눈치상품

◆은행 관심 없고 소비자 외면하고

박근혜정부가 주도한 금융상품은 ‘통일금융상품’과 ‘청년희망펀드’다. 이 중 통일금융상품은 이자와 수익금 일부가 통일기금 조성에 자동 기부되는 구조다.


17개 시중은행 가운데 통일금융상품을 판매하는 곳은 우리은행과 NH농협은행, KB국민은행, 기업은행 등 4곳뿐이다. 이 상품은 출시 초기엔 반짝 관심을 끌었지만 올 들어 실적이 대폭 줄었다. 특히 최근 정부가 개성공단을 폐쇄하면서 앞으로 실적이 더 줄어들 전망이다.

첫선을 보인 곳은 2014년 6월 ‘우리겨레통일정기예금’을 출시한 우리은행이다. 이 상품은 지난해 6월 5만9491좌, 7977억원의 실적을 올렸지만 1월 말 현재 1만2030좌, 잔액 1487억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NH농협은행이 내놓은 ‘NH통일대박 예·적금’의 실적은 수백억원에 불과하다. 1월 말 현재 4198좌, 288억원을 기록하는 데 그쳤고 해지율이 점차 느는 추세다. 2014년 6월부터 판매한 국민은행의 ‘KB통일기원적금’도 지난해 11월 말 12만4184좌, 3593억원의 정점을 찍은 후 올 1월 말 12만2313좌, 잔액 3397억원으로 줄었다.

IBK기업은행의 ‘IBK통일대박기원통장’은 9300좌, 3231억원의 실적을 기록했다. 이 상품은 지난해 6월 출시돼 아직 1년이 채 지나지 않았다. 따라서 1년 만기가 끝나는 오는 6월 이후엔 실적이 대폭 줄어들 것으로 은행 관계자들은 내다봤다.


청년희망펀드 공익신탁도 낙동강 오리알 신세다. 이 상품은 박근혜 대통령의 제안으로 탄생했다. 지난해 9월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청년실업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기 위해 이 펀드를 제안했고 은행들은 화답하듯 불과 엿새 만에 관련 상품을 쏟아냈다.

정권의 관심으로 이 상품 역시 초기엔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열기가 점차 시들해졌다. 그나마 지금까지 유지되는 것도 일부 대기업이 기부금을 냈기 때문이다. 앞서 정부는 대기업으로부터 기부금을 받지 않겠다고 공헌했지만 실적이 저조하자 태도를 바꿨다.

청년희망펀드 기부금은 지난해 10월 59억원, 11월 136억원, 12월 148억원 등 매월 기부금 규모가 커졌지만 올 들어 10억원 밑으로 떨어졌다.

◆관치금융일까, 공익성일까

이처럼 정부가 코드정책으로 내세운 금융상품은 대체로 단명한다. 상품을 개발해야 하는 시중은행도 부담스러워 한다. 하지만 일각에선 ‘필요악’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돈줄을 쥔 은행이 동참해야 정부가 강하게 정책을 드라이브를 걸 수 있어서다. 게다가 관치금융은 사라져야 할 관행이지만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해선 일부 정부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곳곳에서 제기된다.

그렇다면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시장논리를 무시한 반강제적 정책을 지양하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현 정부 입맛에 맞게 금융상품을 개발하는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면밀한 시장조사 없이 내놓은 금융상품은 금융소비자의 외면을 받기 십상이고 이 같은 악순환이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5년마다 반복되는 게 문제라는 것.

이와 관련 시중은행들은 익명을 전제로 다양한 의견을 쏟아냈다. 지금과 같은 시스템에선 결국 정권과 은행 모두 금융소비자로부터 외면 당할 것이라는 게 이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A은행 관계자는 “공익적인 측면에서 볼 때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에 당연히 (은행들이) 동참해야 한다”면서도 “다만 이를 위해선 규제완화와 정부의 자금지원 등이 선행돼야 한다. 리스크를 은행이 모두 떠안는 시스템이라면 은행들도 억지로 상품을 낼 수밖에 없고 이는 결국 소비자 외면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스타트업 기업을 예로 들어보자. 이 기업은 담보력이 충분하지 않은데 은행에선 기술력만 믿고 대출을 해주는 구조다. 크게 보면 바람직하다”며 “그런데 이 기업이 부도가 났을 때 과연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것인가. 정부와 공공의 이익을 위해 대출을 지원했는데 손실은 은행이 다 떠안아야 한다는 게 과연 옳은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B은행 관계자는 “새로운 상품이 나올 때는 먼저 금융소비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시장조사가 선행돼야 하고 이를 위해 정부와 은행 간 활발한 협의가 이뤄져야 한다”며 “정부 입맛에 맞는 상품만 나온다면 장기적으로 외면당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C은행 관계자 역시 “정부가 새로운 정책을 추진하면 은행들은 반강제적으로 관련 상품을 내놓는 것이 현실”이라며 “은행이 방만경영을 해 피해자가 발생할 경우 금융당국이 개입하는 것은 불가피하겠지만 금융상품 하나까지 (정부가) 개입해 관여하는 것은 은행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윤석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은행이 공익을 추구하고 발전하기 위해선 관치금융의 악순환 대신 상향식 금융의 선순환이 정착돼야 한다”며 “금융자율화 정착과 금융회사의 책임경영체제 확립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2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