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비 착복 드러나도 ‘외로운 싸움’… 감독대책 마련 시급

공동주택 관리비를 관리인이 착복하는 사례가 드러나 정부가 대규모 아파트단지의 외부회계감사를 의무화했다. 하지만 원룸이나 오피스텔 등 소형 공동주택은 아직도 감독 사각지대에 방치돼 개선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전국의 아파트 관리비 비리적발 및 개선대책 마련에 대해 설명하는 박순철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부패척결 추진단 부단장./사진=뉴시스
전국의 아파트 관리비 비리적발 및 개선대책 마련에 대해 설명하는 박순철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부패척결 추진단 부단장./사진=뉴시스

◆감독 사각지대 놓인 원룸 관리비

서울 강남구 봉은사로에 위치한 신논현마에스트로. 19층짜리 건물에 실평수 약 18㎡ 크기의 오피스텔 124세대가 모여있다. 지난 9일 입주자대표는 관리인과의 실랑이 끝에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향했다. 지난 2년 동안 관리비 문제로 다툼을 벌이다 결국 소송까지 간 것이다.

관리업체는 부동산사업자로 등록한 BMS코리아. 이 회사는 2013년 입주 초기 시행사인 문학건설과 관리계약을 맺고 지금까지 입주자들의 관리비를 받아 운영해왔다. 


하지만 오피스텔 크기나 서비스에 비해 관리비가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항의가 2년 내내 빗발쳤고 입주자들은 직접 관리단을 만들었다. 입찰을 통해 새로운 업체를 선정하고 관리비를 공정하게 운영하기 위해서다. 마에스트로의 기본 관리비는 12만원대. 여기에 수도와 전기료를 합하면 월세의 20만원을 훌쩍 넘는다.

관리단은 BMS코리아에 관리비 사용내역을 요청했고 분석 결과 업체 측 인력이 불필요하게 많은 데다 상당부분이 인건비로 지출된 부분을 문제 삼아 시정을 요구했다. 그러나 BMS는 이를 지키지 않았다. 심지어 관리단이 입주자들에게 관리비 사용내역과 새 업체 선정 시 한달 6만원을 절감할 수 있다는 내용의 시뮬레이션 결과를 서면으로 작성해 우편물을 배포했지만 BMS 측이 2차례 강제수거하는 바람에 경찰서까지 가게 됐다.


김형태 입주자대표는 “관리업체 직원들 월급이 최고 280만원인데 입주자들이 판단할 때 많은 인력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더 낮은 관리비를 제시하는 다른 관리인을 선임하기로 협의했다. 하지만 업체가 막무가내로 업무를 지속하고 심지어 시행사와의 계약이 언제 종료되는지에 대한 정보공개조차 꺼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바로 옆의 오피스텔은 공정한 절차를 통해 업체를 선정하고 더 넓은 크기임에도 불구하고 기본 관리비가 5만원 저렴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BMS 측 관리소장은 “강남은 서울에서 주거비가 가장 비싼 동네다. 관리비가 비싸다는 것은 입주자 측 일부의 의견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또 “성실하고 공정하게 관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김형태씨가 관리업체를 새로 선정하려는 이유는 관리단 측이 직접 관리소를 운영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공동주택관리법에 대해 논의하는 ‘찾아가는 공동주택 주민학교’./사진=뉴시스 DB
공동주택관리법에 대해 논의하는 ‘찾아가는 공동주택 주민학교’./사진=뉴시스 DB

이처럼 원룸이나 빌라, 오피스텔 등 관리비 지출이 투명하지 않은 소형 공동주택이 적지 않다.

아파트는 주택법을 적용받아 인건비와 공과금 등 47개 항목을 의무적으로 공개해야 한다. 그러나 원룸은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을 적용받아 공개의무가 없을 뿐 아니라 관리비 부과 기준에 대한 규정도 없는 실정이다.


서울 영등포의 모 원룸에는 건물주 한명이 100세대 넘는 관리비를 개인적으로 받아 운영한다. 이 원룸에 거주하는 직장인 김모씨는 “한달 관리비가 10만원에 육박하는데 방은 침대 하나 들어가는 크기에 세탁기도 없다. 비싸다는 생각이 들지만 집주인에게 내역을 알려달라고 요구하기가 조심스럽다”고 토로했다.

서울과 경기도의 소형주택 몇곳을 알아본 결과 빌라 인근의 공인중개사업체에서 관리비를 운영하기도 하고 입주자 대표 한명이 직접 운영하는 경우도 있었다.

지난 10일 국토교통부는 전국 아파트단지 8991곳을 조사한 결과 19.4%인 1610곳에서 관리비 회계관리가 엉망이어서 부적합 판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지자체가 조사한 429곳 중 312곳(72%)에서는 관리비를 횡령하거나 공사 수의계약을 체결했다. 수의계약 과정에서 관리인이 뇌물을 받은 사실도 드러났다.

임한수 대한주택관리사협회 법제팀장은 “아파트의 경우 현행법을 통해 감시가 가능해졌지만 원룸 등 소형주택은 1대1 계약관계가 많고 관리상 가이드라인이 없어 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학가 주변 원룸./사진=머니투데이 DB
대학가 주변 원룸./사진=머니투데이 DB

◆법 개정 추진, 국회 통과 지지부진

이 같은 문제가 제기되자 정치권에서도 소형주택 관리비를 아파트처럼 외부감시 받도록 하는 내용의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이미경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현재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청년시민단체 민달팽이유니온과 서울시도 원룸 관리비에 관한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제기했으나 현재까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부동산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몇년 사이 부동산시장 침체와 1~2인 가구 증가에 따라 소형주택의 하자나 분쟁이 잦아졌지만 원룸 관리를 사적 대상에서 공적 대상으로 확대하는 것에 정치권은 아직까지 소극적인 입장”이라고 말했다. 윤재한 서울시 집합건물팀장 역시 “2013~2014년 원룸 실태조사를 한 결과 법적 관리가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고 밝혔다.

더 심각한 것은 원룸 관리비가 세금회피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집주인들이 소득세를 피하기 위해 계약서상 월세와 관리비를 바꿔치기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예컨대 월세가 30만원, 관리비가 6만원이면 계약서에는 월세를 6만원, 관리비를 30만원으로 기재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연간 월세소득이 소득세를 부과하는 대상에서 제외되고 수입은 유지가 가능하다. 관리비는 비용처리돼 소득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2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