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을 사랑하는 주인의 마음을 그림에 담습니다.”

매일같이 동물과 눈으로 대화해서일까. 반려동물을 그리는 김연석(55) 작가의 눈빛은 투명했다. 그 눈으로 교감한 김 작가의 감성은 그대로 화폭에 옮겨졌다. 실물보다 더 생동감 넘치는 반려동물 그림이 나오는 이유다.


김 작가는 6년 전부터 반려동물을 그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그린 작품만 400점이 넘는다. 일반 화가들이 생전에 그리는 작품수와 비슷하다. 단순히 열정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해낼 수 없는 일이다. 하얀 캔버스에 켜켜이 색채를 입히는 모습은 그의 진심을 나타내기에 충분했다.


 /사진=장효원 기자
/사진=장효원 기자

◆ 생동감에 작가 감성 더한 ‘반려동물 초상화’

경기도 안산의 작업실에서 처음 만난 김 작가는 흰털이 수북한 강아지를 그리고 있었다. 다소 쌀쌀한 날씨였지만 그는 난로도 켜지 않은 채 그림에 몰두했다. 잠시 둘러본 작업실은 강아지와 고양이 등 반려동물이 그려진 크고 작은 작품으로 가득했다.

“오늘 그려야 하는 부분이 있어서요. 유화는 한번 그리고 또 위에 덧칠하는 그물 같은 기법을 사용해 최소 3~4번은 그려야 합니다. 그런데 기름의 특성상 마르려면 사흘은 걸리기 때문에 지금 해놔야 합니다. 안 그러면 고객이 기다려야 하니까요.”


그는 반려동물 초상화를 그려달라는 요청이 들어오면 작업을 시작한다. 미리 그려놓은 다른 동물은 의뢰인에게 아무 의미가 없어서다. 반려동물을 그릴 때는 주인과의 소통이 먼저 필요하다. 반려동물의 특징이나 성격, 주인이 남기고 싶은 모습을 자세히 듣는다. 이후 그가 느끼는 감성을 그림에 더하는 것이다.

“그림을 의뢰하는 분들은 대개 자신의 반려동물을 직접 데리고 옵니다. 저는 반려동물을 보면서 주인이 말하는 특징이나 가장 예쁜 모습 등을 귀담아 듣습니다. 여기에 맞춰 배경이나 사물을 주인에게 추천하고 설명합니다. 예컨대 큰 개는 검정색 톤의 배경을 넣는다든지, 작은 개는 꽃과 나비를 더해 서정적인 느낌을 준다든지 하는 거죠. 가장 중요한 건 작품을 받아든 주인의 마음에 드는 것이니까요.”


김 작가는 주인과의 대화가 끝나면 그 반려동물의 사진을 몇장 받는다. 사람과는 다르게 반려동물은 가만히 있는 모습을 그리기 힘들어서다. 하지만 사진과 똑같이 그리지는 않는다. 반려동물의 특징이나 성격을 서사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그의 주특기다.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해요. 저는 주로 빛을 많이 이용하는 편입니다. 광선으로 한쪽은 밝고 한쪽은 어둡게 하면 좀 더 생동감을 줄 수 있어요. 그러면서도 아날로그적인 관점을 잃지 않도록 제 개성을 살려 강한 붓터치를 이용합니다. 이런 점은 특히 털이 복슬복슬한 반려동물을 그릴 때 빛을 발하는 것 같아요.”


 /사진제공=김연석 작가
/사진제공=김연석 작가

◆ 반려동물의 추억을 담는다

김연석 작가는 동물애호가다. 처음 화가 활동을 시작할 때도 황소나 호랑이 등을 주로 그렸다. 김 작가가 반려동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인사동에서 전시회를 하면서 만난 우연한 기회에서 비롯됐다. 그는 반려동물 그림이 누군가에게 행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고 이 길이 자신의 천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전시회를 하는데 화랑 대표가 강아지를 한번 그려보자고 제의했습니다. 미국 마이애미에 가져갈 거라고 했죠. 마이애미에는 반려동물과 관련된 문화 축제나 행사 등이 많다고 하더군요. 속는 셈치고 강아지 그림을 그려줬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서 제 그림 세점 중 두점이 팔렸답니다. 알고 보니 마이애미는 은퇴한 사람이 많아서 반려동물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사람이 많다고 하더군요.”

이후 그는 미술관들이 즐비한 인사동에서 반려동물 애호가가 모여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예술가로서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창밖에서 작품을 진정으로 원하는 대중과 함께 호흡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반려동물 애호가와의 소통도, 반려동물과의 교감도 초상화를 그리는 데 필수적인 부분이다.

“요새는 아트갤러리보다 애견박람회 같은 행사에 더 많이 참여합니다. 반려동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작품을 보여줘야 더 많은 호응이 오거든요. 그 분들이 제 작품을 보고 만족해하는 모습을 보면 의욕이 생깁니다.”

최근에 그는 올해로 4회째를 맞는 ‘순천만국제동물영화제’에서 메인작가로 반려동물 그림전시회를 열기로 결정했다. 이번 영화제에는 세계 각국의 반려동물 애호가가 참가한다. 그의 작품이 전세계로 뻗어나갈 기회를 만난 셈이다. 이렇게 바쁜 와중에도 그는 틈틈이 동물들을 위한 재능기부도 한다. 지난해에는 명동에서 열린 ‘유기견 후원 회화전’에 참가했다. 또 오는 6월부터는 한 애견사이트에서 반려동물과 관련된 특별한 사연을 선정해 무료로 그림을 그려줄 예정이다.

“반려동물 주인들은 대개 이별을 준비할 때 그림을 원합니다. 자신의 가족과 같은 반려동물이 가장 화려했던 모습을 기억하고 싶어서겠죠. 어떤 분은 그림을 그리고 바로 일주일 뒤에 반려동물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줬어요. 그러면서 정말 감사하다고 몇번이고 인사하시더라고요. 저도 그 분에게 추억을 하나 남겨드렸다는 생각에 뿌듯했습니다. 앞으로도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소중한 추억을 남겨드리고 싶습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3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