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방보험시장을 두고 보험사 간 선점경쟁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올해 보험업권에 유병자보험에 이어 한방보험이라는 신흥시장이 형성되는 분위기다. 

그동안 보험업계는 한방분야의 통계부족과 수요예측이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한방보험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리스크를 최소화한 정액형 상품이 출시되면서 물꼬가 트이자 생명·손해보험사 할 것 없이 한방보험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기존 보험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새로운 먹거리를 찾으려는 보험사들의 생존경쟁이 가속화되는 모습이다. 

[포커스] 한방보험, 보험업계 ‘한방’ 될까


◆생보업계 이어 손보업계로 확산

지난 1월 현대라이프생명이 한방보험을 시장에 내놓은 이후 최근 동부화재, KB손해보험이 비슷한 상품을 출시했다. 생명보험사 중에서는 라이나생명이 지난 1일 한방보험시장에 뛰어들었다. 삼성화재는 6월 출시를 목표로 한다. 

현대라이프생명은 지난 1월 ‘양·한방건강보험’을 선보인 후 3000건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이 상품은 암·뇌출혈·급성심근경색증 등 중대질환 발생 환자에 한해 진단비·병의원 치료비와 첩약·약침·물리치료 등 한의원 치료비를 정액 한도로 보장한다. 예컨대 40세 남성이 가입금액 1500만원, 20년납, 순수보장형으로 가입할 경우 월 보험료가 4만4700원이다.


동부화재가 내놓은 ‘한방애(愛)건강보험’도 기존 양방치료와 함께 신체회복 및 재활을 위한 한방 비급여 치료를 보장한다. 교통사고로 인한 한방치료 시에도 보험금을 지급한다. 이 상품 역시 정액형으로 보장횟수가 제한된다. 첩약 3회, 약침 5회, 한방물리치료 5회다. 월 보험료는 40세 남성 기준 20년납 선택 시 6만1000원이며 가입금액에 따라 5만원부터 2억원까지 보험금이 지급된다.

KB손해보험의 ‘KB든든양한방건강보험’도 양방을 통한 진단 또는 수술 후 실손의료보험에서 보장받지 못하는 비급여 한방치료에 해당하는 첩약, 약침, 특정한방물리요법치료 등을 보장한다. 보장횟수는 첩약치료 3회, 약침치료 5회, 특정한방물리요법치료 5회까지로 제한된다.


세가지 상품 모두 양방병원에서 먼저 진단을 받은 환자에 한해서만 한의원 치료를 보장해주는 셈이다. 실손형이 아닌 보장한도를 제한하는 정액형 상품인 점도 비슷하다.

라이나생명은 한방보험상품을 특약형태로 출시해 일부 채널에서 먼저 판매 중이다. 지난 1월 출시하려 했던 ‘라이나플러스한방보장특약’을 보완해 다시 시장에 내놓았다. 삼성화재가 출시를 검토 중인 한방보험도 이와 비슷한 구조로 알려졌다. 단독상품이 아닌 기존 건강보험에 특약을 부가하는 형태로 구성할 계획이다.


/사진제공=동부화재
/사진제공=동부화재
/사진제공=현대라이프
/사진제공=현대라이프


◆양방치료 받은 환자 대상 ‘역발상’

그동안 보험사들은 정확한 의료비용 책정이 불가능하고 손해율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한방보험 개발을 꺼렸다. 한방의 경우 한의사마다 환자에 대한 처방이 다른 데다 양방병원처럼 비급여항목이 표준화되지 않아 상품화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그런데 양방치료를 받은 환자에게 한방치료를 보장하는 ‘역발상’으로 리스크 해소방법을 찾아내자 보험사들은 한방보험 출시를 서두르기 시작했다. 양방진단을 전제조건으로 달아 치료가 아닌 건강목적의 환자들을 사전에 막고 실비가 아닌 정액 지급으로 보장한도 및 횟수를 제한하면 손해율을 안정화시킬 수 있다는 게 보험사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특히 대형손보사들이 한방보험 출시에 적극적인 이유는 자동차보험과 연관이 있다. 자동차보험을 판매하며 교통사고에 대한 데이터를 확보해둔 대형손보사들은 한방보험을 개발하는 데 생보사보다 유리한 면이 있다. 손보사 한 관계자는 “교통사고로 인한 후유증으로 한의원을 찾는 환자가 많아지면서 한방진료 보장에 대한 고객의 수요도 꾸준히 늘어났다”며 “그만큼 내부에서도 상품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생보업계는 아직 관망하는 분위기다. 생보사 한 관계자는 “어느 정도 리스크 해소법을 마련한 것 같지만 아직도 한방부분은 진료비 산정기준이나 통계치가 명확하지 않아 정확한 리스크 측정이 불가능한 상태”라며 “일부 한의원에서 환자에게 치료 목적 외의 첩약 처방을 추가로 해줬더라도 세부적인 진료내역서를 공개하지 않는다면 보험사가 이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제대로 된 데이터 없이 도전했다가 감당할 수 없는 손해를 입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허탈한 현대라이프, 왜?

보험업계에서 가장 먼저 한방보험을 출시한 곳은 현대라이프생명이다. 현대라이프는 지난해 1월부터 한방보험상품 개발에 착수해 한의사협회와 MOU(양해각서)를 맺고 공동작업하는 등 1년여의 개발기간을 거쳐 한방보험을 출시했다.

현대라이프는 지난 1월 생명보험협회로부터 이 상품에 대한 3개월의 배타적사용권을 획득했다. 배타적사용권은 독창적인 상품을 개발한 회사의 이익을 보호해주기 위해 일정기간 동안 개발한 상품을 독점적으로 판매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제도다. 다른 보험사는 배타적사용권 기간 동안 유사한 상품을 판매할 수 없다. 이에 따라 다른 생명보험사들은 오는 27일까지 현대라이프의 한방보험과 유사한 상품을 만들 수 없다.

그런데 최근 동부화재 등 대형손보사가 한방보험을 내놓자 현대라이프는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한방보험은 ‘제3보험’으로 생명보험과 손해보험의 성격을 모두 갖는다. 하지만 제3보험에 대한 배타적사용권은 생·손보협회가 따로 부여해 생보사 상품을 손보사가 비슷하게 만들어 출시해도 업권이 달라 규제받지 않는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배타적사용권 기간 중 동부화재가 비슷한 상품을 출시할 수 있었던 이유다.

이에 따라 업계 일각에서는 제3보험에 대한 배타적사용권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생·손보협회는 이 같은 지적을 받아들여 제3보험에 대한 배타적 사용권을 공동으로 부여하기로 결정했다. 생보협회 관계자는 “앞으로 한방보험과 같은 제3보험의 경우 배타적사용권 보호기한 내에는 생·손보사 영역 관계없이 상품을 도용할 수 없다”면서 “다만 이미 배타적사용권을 부여받은 현대라이프의 한방보험은 보호받을 수 없게 됐다”고 설명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
www.moneyweek.co.kr) 제43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