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부자 친구 집에 놀러갔을 때를 떠올려보면 생각나는 이미지가 있다. 거실에는 고급스런 소파와 티테이블이 놓여있었고 곳곳의 선반에는 도자기 등 친구 부모님의 고급 수집품이 즐비했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넓은 집’에 ‘고급스런 가구’는 사람들에게 드러낼 수 있는 부의 척도로 여겨졌다. 베이비붐세대는 서울에 중대형아파트를 마련하고 그 집을 고급스런 아이템들로 가득 채우는 것을 ‘중산층의 완성’으로 여겼다.
하지만 이들이 은퇴하고 자녀세대인 이른바 ‘에코세대’가 경제의 중심이 된 현시점에서 이 같은 중산층의 기준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평수 줄여도 살 만해요

최근 주택산업연구원은 ‘미래주거트렌드’ 세미나에서 앞으로 10년 동안 주거트렌드의 변화로 ‘주택규모 축소’와 ‘실속형 주택의 인기’를 꼽았다. 김지은 주택산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에코세대가 주택시장의 구매수요를 이루면서 그 이전세대보다 주택규모를 축소하는 한편 주거비를 절감하는 주택에 대한 관심이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고소득자여도 고급화된 주택보다 가격대비 성능을 중시하는 분위기로 개편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수년 전 베이비붐세대가 주택시장의 주를 이루던 시기에는 ‘4인 가족이 살려면 최소 105㎡는 돼야 한다’는 생각이 많았다. ‘가구원 1인당 최소 8평(약 26㎡)씩’이라는 중산층형 계산법이 부동산시장에서 암묵적으로 통용됐다. 하지만 이런 고정관념은 ‘미니멀라이프’의 확산과 함께 사라지고 있다. 주택시장에서 중대형평수가 사라지는 현상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진=뉴시스 최진석 기자
/사진=뉴시스 최진석 기자

물론 대형아파트의 공급이 큰 폭으로 줄어든 가장 큰 이유는 ‘가구 구성의 변화’다. 4~5인 가구 중심이었던 주택시장이 1~2인 가구와 실수요자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중소형의 인기가 꾸준히 오른 것이다.

하지만 가구구성수의 변화가 현재의 ‘주택 중소형화’를 모두 설명하지는 못한다. 중소형화의 진행이 오히려 1~2인 가구 증가보다 빠르게 나타나기 때문인데, 가구구성원수의 변화와 더불어 기존의 3~4인 가구에서도 중소형평수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는 것으로 부동산업계는 분석한다.


경기도 평촌지역의 한 공인중개사는 “1~2인 가구를 중심으로 40~60㎡의 소형주택이 인기를 얻는 것이 사실이지만 3~4인 가구도 소형주택을 찾는 경우가 많다”며 “매매하기 좋고 관리비 부담이 적다는 게 그들이 중소형주택을 찾는 이유인데 과시적이거나 불필요한 공간에 대한 욕심을 버리는 추세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최근 공급되는 중소형평수의 경우 발코니 확장과 가구들을 빌트인으로 설계함으로써 생각보다 여유로운 공간을 누릴 수 있어 84㎡ 이하의 중소형 주택도 어린 자녀를 둔 4인 가구가 거주하기에 충분한 것으로 인식자체가 변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부동산시장에 나타나는 대단지 선호현상도 이와 무관치 않다. 많은 가구가 밀집된 대단지라면 굳이 가정에 모든 것을 소유하지 않더라도 ‘공용시설’을 이용해 단지 내에서 부족한 것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지어지는 대단지아파트의 경우 독서실과 헬스클럽, 마트 등이 단지 내에 위치한다. 굳이 집 안에 공부방을 조성하거나 운동기구를 들여놓지 않아도 가볍게 공용시설을 이용할 수 있고 필요한 식재료들도 인접한 마트에서 그때그때 사면 된다. 심지어 중소형평형만으로 이뤄진 단지 중에는 외부 손님접대방을 운영하는 곳도 있다.


[가치소비 미니멀라이프] 집도 짐도… 줄이는 사람들

◆사지 않고 빌려 쓰는 사람들


집이 줄어들면 자연스레 미니멀라이프로 접어들게 마련이다. 사들인 물건을 저장할 공간이 부족해 물건을 들여놓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일단 물건을 구매하면 이를 사용하든 안하든 물건의 보관부터 관리, 처리까지 내 책임이다. 미니멀리스트의 시각에서 본다면 물건을 구입하는 행위는 돈을 주고 ‘귀찮음’을 가져오는 행위다.


이런 생각을 가진 소비자가 늘면서 구입이 아닌 대여시장이 커지고 있다. 필요한 물건을 무조건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빌려서 사용하는 것. 현재 가장 활성화된 시장은 정수기, 침대 매트리스, 공기청정기 등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상품의 렌털이다. 구입하지 않고 빌려 사용함으로써 필터교체 등 관리의 번거로움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미니멀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 늘면서 렌털시장의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다. KT경제경영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2011년 8조5000억원 수준이던 개인 및 가구용품 렌털시장은 올해 25조9000억원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대표적인 렌털기업 코웨이는 지난해 최대실적을 거뒀는데 매출의 70% 이상을 렌털부문에서 올렸다. 코웨이는 정수기 렌털서비스를 도입한 후 비데, 침대 매트리스, 공기청정기 등 다양한 렌털제품과 서비스를 도입했다. 특히 2011년 도입한 매트리스 렌털서비스는 첫해 8000개로 시작해 지난해 26만5000개로 성장할 만큼 인기를 끌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유모차나 장난감처럼 잠시 사용하고 마는 제품은 물론 캠핑용품, 고급의류 등 일시적으로 사용하는 제품도 렌털서비스가 성황을 이룬다. 최근에는 온라인은 물론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모바일에서도 렌털서비스를 비교할 수 있는 ‘렌털전문 오픈마켓’도 등장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3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