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의 지갑이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직격탄을 맞은 은행들은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단 한명이라도 붙잡기 위해 고객에게 한발 더 다가간다. 고객을 기다리기만 했던 고전적 방식에서 종합재무관리서비스 제공, 백화점·마트 입점 등의 서비스를 직접 제공하며 업무의 무게추를 옮기고 있다. 변신과 파격으로 요약되는 은행들의 생존법칙이 펼쳐지는 현장을 들여다봤다.

◆복합점포, 은행·증권·보험 칸막이 없애다



# 서울 광화문사거리 근처에 위치한 동화면세점. 이 빌딩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10층으로 올라가면 ‘농협금융플러스센터’가 보인다. 이 센터에 들어서자 NH투자증권, NH농협은행, NH농협생명 등의 창구가 눈에 띈다. 한 공간 안에서 ‘은행+증권+보험’의 종합금융서비스를 받아볼 수 있다. 6곳의 창구마다 분위기는 달랐다. NH투자증권 창구에는 상담을 받으러 온 사람이 몰린 반면 보험창구는 한산했다.


농협금융복합점포. /사진제공=농협금융그룹
농협금융복합점포. /사진제공=농협금융그룹

금융지주사들이 은행과 증권, 보험업무를 결합한 복합점포를 늘리는 추세다. 계열사 간 시너지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고객은 복합점포에서 은행·증권·보험업무를 모두 처리할 수 있다.

금융지주사 중에서는 신한금융이 가장 많은 복합점포를 열었다. 지금까지 48개의 복합점포를 개점한 것으로 파악됐다. 공략대상도 체계화했다. 3억원 이상 고액자산가를 관리하는 신한PWM센터와 1억원 이상 준자산가를 위한 신한PWM라운지로 분류한 것. 지난달에는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신한은행 경희궁지점에 ‘보험복합점포 3호점’(PWM라운지)을 오픈했다.

하나금융은 19개의 복합점포를, KB금융은 16개의 복합점포를 개점했다. KB금융은 현대증권 인수를 계기로 점포를 늘릴 계획이다. 100여개에 달하는 현대증권 지점을 활용해 현대증권 고객을 적극 공략한다는 구상이다.


농협금융은 서울이나 수도권이 아닌 지방으로 복합점포를 확대한다. 상대적으로 촘촘한 지방영업망을 활용해 지방 고객을 선점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최근에는 충남 천안에 ‘NH농협금융플러스센터’ 6호점을 열었다. 은행·증권·보험을 모두 취급하는 복합점포는 서울 광화문 농협금융플러스센터와 부산 농협금융플러스BIFC센터 두곳이다. 계열사가 없는 우리은행은 삼성증권과 제휴를 맺고 복합점포를 운영한다.

금융지주와 은행들이 복합점포를 선보이는 이유는 비은행부문을 통해 수익원을 다각화하기 위함이다.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도입도 복합점포 확대를 견인했다. 다만 아직 보험부문은 제자리를 잡지 못하는 모습이다. 복합점포에서 투자관련 상담을 받거나 은행업무를 보는 고객은 많지만 이곳에서 보험상품을 찾는 고객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복합점포에 보험부문이 입점한지 얼마 안된 만큼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WM센터, 고액자산가부터 외국인까지 



은행들은 고액자산가 모시기에도 총력을 기울인다. 고액자산가 PB사관학교로 불리는 씨티은행은 서울 반포에 ‘자산관리(WM)허브센터’를 운영한다. 이곳에서 채권·보험 등 각 분야별 전문가들이 일종의 PB팀처럼 뭉쳐 고객에게 맞춤형 포트폴리오를 제공한다. 자산관리서비스 대상은 ▲10억원 이상 고액자산가군인 씨티골드프라이빗 ▲2억원이상 10억원 미만인 씨티골드 ▲5000만원 이상 2억원 미만인 씨티프라이어리티 고객 등 3단계로 세분화됐다.

KB국민은행은 은퇴고객을 위한 VIP라운지를 확대하는 추세다. 전국 850여개 VIP라운지에서 은퇴설계와 관련된 전문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관련 시스템을 확충했다. 은퇴설계전문가(ARPS), 공인자산관리(FP) 등의 자격을 보유한 직원을 전면배치해 전문적인 자산관리서비스를 제공한다.


은행들은 외국인 고객유치전에도 뛰어들었다. KEB하나은행은 서울 강남에 위치한 IPC(International Private Banking Center)를 통해 외국인의 자산관리를 돕는다. IPC의 주요 고객은 중국인 자산가다. 중국인들은 IPC에서 중국어 표기 상품자료를 보며 PB로부터 자산관리, 국내기업 매각, 부동산 투자, M&A 컨설팅, 세무, 법률 등을 중국어로 상담받을 수 있다.

신한은행도 신한IFC(Shinhan International Finance Center)에서 외국인과 외국인투자기업을 대상으로 종합금융컨설팅을 제공한다. 글로벌 PWM센터에서는 외국인 전담 PB팀장이 외국인고객의 자산을 관리한다.


SC은행 뱅크 데스크. /사진=박효선 기자
SC은행 뱅크 데스크. /사진=박효선 기자

◆미니점포, 마트·백화점 영업시간 맞춰 운영

# “은행 영업점은 아니고 은행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으로 알고 있어요. 스포츠전문점 쪽으로 가보시겠어요?” 은행업무 보는 곳이 있냐고 물어보자 이마트 직원이 이렇게 설명했다. 스포츠전문점 앞에는 ‘365일 편안한 은행업무’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그 아래 3.3㎡도 채 되지 않는 공간에서 한국스탠다드차타드(SC)은행 직원이 고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지나칠 수 있는 작은 공간이다. 정확한 명칭은 ‘SC은행 뱅크데스크’. 이마트에 장을 보러 온 K대 재학생은 “이 시간(저녁 6시)에도 마트 안에 은행업무를 볼 수 있는 곳이 있는 줄 몰랐다”며 “이런 공간이 좀 더 알려지고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SC은행은 신세계그룹과 제휴를 맺고 태블릿PC로 업무를 처리하는 미니영업점(뱅크숍·뱅크데스크)을 확대하고 있다. 몸집을 줄이는 대신 마트와 백화점에 작게나마 점포를 들여 고객을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작은 점포지만 대부분의 업무가 가능하다. 예·적금 신규가입뿐 아니라 카드·대출상담도 받을 수 있다. 대기번호를 발급하는 기계, 대기하면서 앉아있을 소파 등이 없을 뿐이다. 가장 큰 장점은 이용시간이다. 마트와 백화점의 영업시간에 맞춰 야간과 주말에도 금융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다만 아직 도입단계여서 뱅크숍과 뱅크데스크에 대한 홍보가 부족하고 지점 수도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올해 4월 기준 전국 6곳에서 운영 중인 뱅크숍은 직원 2~3명이 상주하며 태블릿PC를 활용해 현금출납을 제외한 대부분의 은행서비스를 처리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은행영업점이다. 뱅크데스크는 뱅크숍의 간소화된 형태로 직원 1명이 상주하며 전국 60곳에서 운영 중이다.

SC은행 관계자는 “도입한 지 얼마 안돼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니점포에서 서비스를 받은 고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전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
www.moneyweek.co.kr) 제43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