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에게 매년 6월7일은 특별한 날이다. 23년 전 이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제2의 창업 수준의 변화를 예고한 이른바 ‘신경영’을 선언했다. 이후 삼성은 눈부신 성장을 거듭했다. 세계 상위기업 순위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이름이 글로벌 초일류기업 수준인 18위에 당당히 랭크됐다(2016년 5월 포브스 집계). 



이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지 2년, 아직까지 건강을 회복하지 못한 탓에 예전과 같은 대대적 기념행사는 열리지 않았다. 대신 삼성 전 임직원은 이 회장의 메시지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신경영의 의미를 되새겼다.  


/사진=뉴시스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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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영 선언, 삼성 도약의 발판

지난 7일 삼성그룹 사내 인트라넷 로그인 화면에는 ‘신경영을 이끌어 오신 회장님의 쾌유를 기원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신경영 발표 당시 이 회장의 사진이 게재됐다. 삼성 측은 이 회장의 건강상태를 고려해 별도의 행사 없이 차분히 신경영 선언 기념일을 맞이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변한다고, 변했다고 말만 하면 믿겠는가.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으면 안된다. 변화한다는 말도 필요 없다. 행동으로 보여주면 된다”는 신경영 선언 당시 이 회장의 주요 발언도 하루 동안 사내 인트라넷 메인 화면에 게재됐다. 



/사진=머니투데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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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1월 삼성그룹 수장 자리에 오른 이 회장은 6년간의 준비를 거쳐 1993년 6월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켐핀스키호텔에서 그룹계열사 사장단 및 주요 임원 200여명을 모아 놓고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말로 요약되는 신경영을 선언했다.  


이어 같은 해 8월 초까지 독일 프랑크푸르트, 스위스 로잔, 영국 런던, 일본 도쿄 등에서 주요 임원 및 해외 주재원들과 총 350시간, A4용지 8500여장에 이르는 회의와 특강을 진행했다. 기존 삼성의 체질을 싹 바꾸는 혁신적 내용의 기업문화 개편안이 이때 공유됐다.


신경영 선언은 삼성이 글로벌기업으로 도약하는 발판이 됐다. 2014년 기준 삼성그룹의 총매출액은 302조원, 총자산 623조원, 전세계 임직원 수는 51만여명이다. 신경영 선포 이후 매출은 10배, 총자산은 15배, 임직원 수는 3.6배 늘었다.


또 글로벌 1등 제품은 2개에서 20개로 10배 늘었다. 이 회장 취임 당시 현대그룹에 밀렸던 국내 재계 순위도 독보적 1위 자리를 굳혔다. 신경영 선언 이후 삼성의 품에서 CJ그룹, 새한그룹, 보광그룹이 잇따라 계열 분리됐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놀라운 성적표다.


이에 대해 재계 관계자는 “1990년대 국내 일류기업 수준에서 2000년대 들어 명실상부한 글로벌 초일류기업으로 거듭난 삼성의 성장은 이 회장의 신경영 선언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진=뉴시스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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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삼성, 새로운 변화 화룡점정  

2014년 5월 이 회장이 쓰러진 이후 삼성은 이재용 부회장 체제에서 새로운 변화를 모색 중이다. 이 부회장은 2014년 말 삼성테크윈, 삼성탈레스, 삼성종합화학, 삼성토탈 등 방산·화학 계열사를 한화그룹에 매각했고 지난해에는 삼성SDI 케미칼사업부문과 삼성정밀화학 등 화학사업을 롯데그룹에 넘겼다. 방산·화학사업에서 완전히 손을 뗀 것이다.


이와 함께 지난해 9월 마무리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통합 삼성물산)으로 그룹 최상단에 위치한 지주회사를 만들어 지배구조 재편도 시작했다. 지난 1년 동안에도 삼성그룹은 40개 계열사를 새롭게 편입시키고 48개를 제외해 전체적으로 8개 계열사가 줄었다. 해외를 포함해 삼성그룹의 계열사가 줄어든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이후 처음이다.

 
이와 같은 일련의 변화는 삼성그룹에서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핵심계열사 삼성전자가 2013년 이후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2013년 228조원으로 정점을 찍었던 삼성전자 매출은 2014년 206조원, 2015년 200조원으로 지속적으로 줄었다. 특히 이 기간 영업이익도 37조원에서 26조원으로 30%가량 줄었다.


200조원이라는 매출도 천문학적 수준의 매출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몇년간 매출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은 기업활동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방증이다. 또 한번 신경영 수준의 변화가 필요한 시기가 왔다는 얘기다. 이 부회장 체제 2년간 삼성의 급격한 변화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지난 3월 발표된 ‘스타트업 삼성 컬처혁신’ 선언은 이재용 체제 삼성 변화의 화룡점정이다.


‘스타트업 삼성’은 기존과는 180도 다른 수평적 조직문화 구축과 자발적 몰입 강화를 통한 업무생산성 제고를 예고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직급 단순화 ▲수평적 호칭 ▲선발형 승격 ▲성과형 보상 등 4가지 방안을 중심으로 하는 구체적 안을 이달 중으로 확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이는 거대하고 경직된 기존 조직문화로는 애플, 구글, 페이스북 등 글로벌 IT기업들이 주도하는 소프트웨어·플랫폼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위기의식에서 나온 대응책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이 회장이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톱다운 방식으로 지금까지 삼성의 성장을 이끌었다면 이 부회장은 변화의 속도가 더욱 빨라진 시대적 상황에 맞춰 스타트업 삼성이라는 아래에서의 의견을 중시하는 보틈업 방식으로 혁신 방향을 바꿨다”며 “전자, 금융, 바이오 등 삼성이 잘할 수 있거나 미래 전망이 밝은 분야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시 짜는 가운데 스타트업 방식 도입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기대된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4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