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츠화재가 보험업계 최초로 ‘초대형 점포전략’을 도입한다. 지역본부를 전부 없애고 지점을 절반으로 줄이기로 한 것. 메리츠종금증권의 거점점포 성공모델을 보험업에 적용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초대형 점포 도입 과정에서 적잖은 진통이 예상된다. 업계에선 자사 인력이 유출될까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손해보험업계에 설계사 대이동의 기운이 감지된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사진=이미지투데이

◆12 본부 폐쇄… 지점 221개→102개

보험업계에 따르면 메리츠화재가 이달부터 12개 지역본부를 모두 폐쇄한다. 지난해 3월 '지역본부→지역단→영업지점' 3단계 체계를 '지역본부→영업점' 2단계로 축소한 데 이어 지역본부마저 없애기로 한 것이다. 지역본부는 본사와 영업지점간 중간 의사전달기구 역할을 해왔다. 지역단에 이어 본부가 사라지고 지원 조직은 신인육성센터만 남게 된다.


지점도 현재 221개에서 102개로 통폐합한다. 대신 본부 역할을 하는 초대형 지점에 자율권을 쥐어준다. 본사가 아닌 초대형 지점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의사결정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다.

회사 측은 이번 조직개편이 고객을 위한 체질개선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메리츠화재 관계자는 “설계사를 관리하는 중간 조직을 없애 절감된 비용으로 전속 설계사 수수료를 높이고 보험료를 인하할 것”이라며 “상위 관리 조직 없이 본사와 점포가 바로 소통해 신속성과 자율성을 높인다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양질의 판매채널이 확보돼 수익성 위주의 영업활동을 펼치는 데 용이한 구조라는 부연이다.


메리츠화재의 이 같은 전략은 메리츠종금증권의 초대형 거점점포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분석된다. 2012년 메리츠종금증권은 기존 본사→지역본부→영업지점으로 이어지던 2단계 조직구조를 본사→영업지점으로 단순화했다. 기존 32개였던 점포를 초대형 거점 5개로 축소하면서 임대료 등 비용을 대폭 줄였다. 2014년에는 이를 통해 절약된 비용의 상당부분을 직원들의 성과급으로 지급했다.

지난해 메리츠종금증권의 영업이익은 4051억원, 당기순이익은 2873억원을 기록해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냈다. 철저한 성과주의 도입으로 핵심 인력을 대거 영입해 이뤄낸 성과라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두번째 구조조정에 내홍 조짐

하지만 메리츠종금증권과 비슷한 형태의 초대형 점포전략을 도입하면서 메리츠화재 내부에선 반발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구조조정을 둘러싼 내홍이 격화될 조짐이다. 


이달부터 메리츠화재 희망퇴직 접수가 시작됐다. 메리츠화재는 지역본부를 폐쇄하는 과정에서 중간 관리자급 인원 상당 규모를 희망퇴직을 통해 내보낼 계획이다. 지점 통폐합 과정에서는 개인영업 부문을 중심(지점 및 교차 총무 제외)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다만 구체적인 규모는 알려지지 않았다. 희망퇴직 조건은 최대 32개월분 표준연봉 등을 지급한 지난해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메리츠화재 노조는 지난달 말 본사 앞에서 희망퇴직을 반대하는 집회를 벌였다. 노조 측은 “이번 조직개편은 희망퇴직을 빙자한 인위적 구조조정”이라며 “사상최대 이익이 났는데 그 성과를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는커녕 고통을 감내한 직원들을 소모품 취급한다”고 규탄했다. 메리츠화재는 지난 1분기 616억원의 당기순익을 올렸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0.2% 급증한 수치다.

메리츠화재의 이번 구조조정은 김용범 사장 취임 후 두 번째다. 지난해 3월 메리츠화재는 40개 지역단을 없애고 전 직원의 15%가량인 400여명을 내보냈다. 이후에도 실적이 낮은 영업 지점장과 단장을 조금씩 정리해온 것으로 파악됐다. 김 사장 취임 후 메리츠화재 지점은 2014년 말 308개, 2015년 말 255개 등으로 계속 줄었다.

◆보험사·GA, 설계사 이탈할까 긴장


외부에서는 기대와 반감이 교차한다. 보험사 한 관계자는 “본사와 지점만 남긴다는 건데 이는 영업채널을 완전히 뒤집는 수준”이라며 “메리츠화재 내부가 한동안 시끄러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병건 동부증권 애널리스트는 “메리츠종금증권이 점포를 대형 광역점포로 개편해 상당한 영업성과를 거둔 모델을 메리츠화재에 적용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며 “지역단이나 지역본부 조직이 모두 없어지기 때문에 기존의 설계사 도입 및 육성 시스템은 사실상 사라지게 된다”고 진단했다. 수수료율을 높여 타사의 영업조직을 유치하는 GA(독립법인대리점)와 비슷한 모델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에 따라 GA에 인력을 빼앗겨 자사형 GA를 설립하는 등 고민이 많은 보험사들은 인력 유출을 경계한다. GA업계에도 위기감이 감돈다. 설계사들 사이에선 메리츠화재 전속설계사의 수수료가 GA 수준으로 높아질 것이란 소식이 화두에 올랐다. GA 소속 설계사는 여러 보험회사의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고 협상능력에 따라 수수료가 달라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보험사에 소속된 전속 설계사보다 더 많은 수수료를 받는다.

일각에선 설계사 대이동이 일어날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메리츠화재에서 구조조정된 보험설계사는 다른 곳으로 옮기고 반대로 다른 보험사나 GA 소속 설계사는 메리츠화재로 이동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며 “각사마다 자사 소속 설계사가 이탈할까봐 긴장하는 상황이 연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4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