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는 극심한 저성장을 겪고 있습니다. 산업화를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기 때문에 대처하기 쉽지 않죠. 젠트리피케이션은 그 과정에서 나온 자연스러운 파생물이자 성장통입니다.”

장남종 서울연구원 도시재생연구센터장은 최근 사회적 이슈로 부각된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해 이같이 진단했다. 그는 이 현상이 산업화과정에서 나타난 부정적 측면이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는 만큼 해당 지역주민과 지자체, 정부, 학계 등이 서로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발전 가로막는 지나친 상업화

장 센터장에 따르면 과거 선진국을 중심으로 나타난 젠트리피케이션은 도시재활성화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쇠퇴한 지역이 개발돼 중산층 인구가 유입되면서 자연스레 주변 지역경제가 발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다르다. 속도가 너무 빠르고 상업화에만 집중됐다.


그는 “선진국의 경우 지역발전에 초점이 맞춰졌기 때문에 긍정적 요소가 강했다”며 “반면 우리나라는 지역발전보다는 상업화에 치중해 지역의 쇠퇴가 빠르다. 최근 서울 곳곳에 뜨고 지는 상권이 수시로 변하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장 센터장은 이 같은 모습이 과거 고도성장기에는 문제될 게 없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은퇴한 베이비붐세대와 자본력을 가진 사람들이 마땅한 투자처를 찾기 힘들어지자 소위 ‘뜨는 상권’에 투자를 집중했고 소자본을 가진 사람들이 형성한 골목은 침해당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대기업의 거대자본까지 더해져 임대료가 상승하자 원주민은 물론이고 뒤늦게 투자했던 사람들까지 버티지 못하고 연이어 둥지 밖으로 내몰렸다.


그는 “너도나도 그곳에 몰리다 보니 지역 특유의 차별성이 사라지고 방문객에게도 신선함을 주지 못해 결국에는 지역경제가 쇠퇴하고 만다”고 설명했다. 이어 “초창기에 지역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기여했던 서민층을 ‘젠트리파이어’라고 하는데 이들이 내몰리는 것이 곧 젠트리피케이션”이라며 “우리나라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지역경제 발전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보다 부정적 영향이 강하다”고 덧붙였다.


장남종 서울연구원 도시재생연구센터장. /사진=김창성 기자
장남종 서울연구원 도시재생연구센터장. /사진=김창성 기자

◆분명한 명과 암… 유기적 커뮤니티가 해법

장 센터장은 젠트리피케이션에 분명한 명암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지역경제 발전과 임대료 상승에 따른 원주민 내몰림 현상이 첨예하게 대립하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을 예로 들었다.

“미국 뉴욕은 자본이 굉장히 집중된 곳입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주변의 쇠퇴한 지역들은 언제든지 자본이 들어와 발전하고 나중에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날 수 있는 여지를 갖고 있죠. 하지만 해당 시에서는 오히려 정책적으로 발전을 유도합니다. 왜냐하면 쇠퇴지역을 걷어내야 중산층이 들어오고 세수 확대와 같은 긍정적 효과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장 센터장은 부정적 측면도 덧붙였다. 그는 “지역경제 발전 이면에는 원주민의 내몰림 현상이 있다”며 “원래 살았거나 그곳에서 장사하던 서민들은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떠나야 하지만 마땅히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오갈 데가 없게 된다. 이게 젠트리피케이션의 단면”이라고 강조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을 둘러싸고 각국의 학자들 사이에서도 ‘유지와 변화’ 사이에서 의견이 엇갈린다는 게 장 센터장의 설명이다.

다만 그는 젠트리피케이션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소견을 드러냈다. 일본의 한 소도시를 예로 들며 위기극복 로드맵을 제시했다.

“나가마라는 소도시가 있는데 굉장히 쇠퇴한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이 지역민들이 지역 커뮤니티를 꾸려 스스로 위기극복에 나섰습니다. 외부자본 유입을 무조건 거부하지 않고 자신들의 지역에 맞는지 철저히 점검한 후 서로 정보를 교환하며 저항력을 키웠죠. 또 거기서 발생한 수익의 일정 부분을 철저하게 지역경제에 환원토록 하는 내부순환적 구조를 구축했습니다.”

장 센터장은 최근 우리나라에 사회적 이슈로 부각한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해법으로 나가마의 사례를 충분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선진국 길목에서 겪는 ‘성장통’

“선진국은 달리 선진국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 시행착오를 겪고 현재에 이른 겁니다. 우리에게 직면한 젠트리피케이션도 저성장 국면에서 찾아온 일종의 시행착오일 수 있어요.”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젠트리피케이션을 바라볼 게 아니라 진화를 위한 일종의 ‘성장통’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우리사회가 항상 진보할 수만은 없다고 주장했다. 진보와 퇴보의 공존 속에 진화가 이뤄진다는 지적이다.

“우리 국민은 앞만 보고 쉴 새 없이 달려왔기 때문에 저성장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저성장이 무조건 나쁜 건 아닙니다. 천천히 성장하는 게 저성장이죠. 문제는 천천히 성장할 때 어디에 방점을 찍느냐인데 결국 같이 가는 게 중요합니다. 누군가 독주하면 그 사람도 외롭고 남겨진 사람도 외롭습니다.”

장 센터장은 우리 사회가 겪는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성장통을 반드시 내적·질적 성장을 위한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청소년기는 어른이 되기 위해 빨리 성장하는 게 맞지만 어른이 된 후에도 계속 성장하면 비정상적인 거인이 됩니다. 분명히 성장해야 하지만 겉모습보다는 내적·질적 성장을 먼저 해야 합니다. 그게 중요한데 지금이 그 시점입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을 부정적으로만 보지 말고 성장을 위한 전환점으로 받아들여 이해당사자끼리 서로 머리를 맞대야 할 시기죠.”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4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