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고급주택화)은 도시가 발전하면서 필연적으로 밟는 수순이다. 산업구조가 변하고 도심지가 이동하면서 자연스럽게 쇠퇴하는 지역과 재개발지역이 나뉜다. 하지만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되면서 피해를 보는 쪽은 정해져 있다. 세입자와 영세상인, 원주민이다. 이들은 거대한 자본에 밀려 자신의 생활터전을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내줘야 한다.


이 같은 젠트리피케이션의 부작용은 선진국들이 이미 경험한 것이다. 미국·캐나다·프랑스·영국 등의 대도시는 이미 오래전부터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몸살을 앓았다. 최근에는 급속도로 발전하는 남미와 중국 등에서도 젠트리피케이션의 문제점이 나타난다.

이들 국가가 젠트리피케이션의 부작용을 극복하는 과정은 도시마다 다르다. 각 도시의 특성과 주민의 성향을 고려해 해결방안을 도입한다. 성공적으로 문제를 해결한 도시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정부와 민간이 함께 상생을 고민했다는 것이다.


맹다미 서울연구원 박사는 지난해 발간한 ‘해외 젠트리피케이션 대응사례와 시사점’ 보고서에서 “해외사례를 보면 직접적인 공공의 개입보다 지역특성에 따라 민·관이 함께 지속가능한 발전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협력할 때 시너지 효과가 나타났다”며 “부동산 소유자, 세입자, 정부 등 당사자들의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공론화됐을 때 문제에 대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 출처=세마에스트
/사진 출처=세마에스트
/사진 출처=세마에스트
/사진 출처=세마에스트

◆프랑스 파리, 정부 적극 개입해 성공

프랑스 파리는 골목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시정부가 주도적으로 개입했다.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1970년대까지 파리시는 상업지구 발전을 위해 대형상가가 들어서면 용적률을 완화해주는 등 장려정책을 폈다. 그러자 고급 의류브랜드와 체인점 레스토랑 등이 늘어났고 기존에 자리했던 소규모 식료품점, 서점, 전통카페 등이 점점 사라졌다. 서울의 역사와 문화를 보존한 거리가 점차 프랜차이즈업체로 뒤덮이는 것과 유사했다.

도시가 획일화되고 시민의 생활 여건이 악화되자 파리시는 소상공인을 보호하기 위한 규제의 필요성을 느꼈다. 이후 파리시는 2006년 도시기본계획 중 하나로 소매업과 수공업 등 보호조치가 필요한 특정 길거리를 ‘보호상업가로’로 지정했다. 보호상업가로는 독특한 지역상권을 형성했거나 상점들이 점차 폐점하는 지역을 일반, 강화, 특수 등 세가지로 나눠 조치했다.


기본적으로 보호상업가로로 지정되면 건물 1층에 입점한 기존 소매상업과 수공업시설은 다른 용도로 전환할 수 없다. 보호상업가로는 파리시 전체 도로길이의 16%에 해당되며 총 3만여개에 이르는 상업시설이 포함됐다. 퍼거스 오 설리번 시티랩 애널리스트는 “파리시의 정책은 유럽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급진적인 시도”라고 말했다.

제도 도입과 함께 파리시는 비탈 카르티에(Vital’ Quartier·생기 있는 거리) 사업도 추진했다. 시로부터 도시정비사업을 위임받은 세마에스트(SEMAST·파리동부혼합경제정비협회)가 비어있거나 매물로 나온 상가를 사서 지역 상인들에 저렴하게 임대하는 사업이다. 세마에스트에는 보호상업가로로 지정된 11개 지구의 건물 1층 상가 선매권을 부여해 다른 자본의 유입을 막았다. 파리시는 비탈 카르티에 사업에 약 8700만유로(한화 1200억원)를 투입했다.


박정윤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는 “보호상업가로가 파리 도시경관의 상징인 가로변 1층 상가와 공방들을 보호하기 위해 거시적으로 시행된 제도라면 비탈 카르티에 사업은 특별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들을 1대1 방식으로 지원하는 국지적 성격의 사업”이라며 “이는 도시의 다양성을 회복하고 약육강식 원리의 희생자가 되기 쉬운 소상공인의 생업을 보호하려는 파리시의 의지”라고 설명했다.


캐나다 몬트리올. /사진=이미지투데이
캐나다 몬트리올. /사진=이미지투데이

◆캐나다 몬트리올, 예술가의 힘 모아 극복

캐나다 퀘벡주 몬트리올시는 지역주민이 힘을 합쳐 젠트리피케이션을 극복한 사례다. 경희대 문화예술경영연구소에 따르면 몬트리올은 19세기부터 라신운하를 중심으로 큰 발전을 이룬 도시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 운하의 기능이 약화되자 도시는 쇠퇴했다.

도시공동화현상으로 임대료가 저렴해지자 옛 항구와 연결된 지역인 ‘그리핀타운’으로 예술가들이 몰려들었다. 이들은 창작촌을 형성하고 도시를 특색있는 거리로 바꿨다. 이에 몬트리올시와 퀘벡주정부는 이 지역을 활성화하기 위해 예술과 신기술을 접목한 ‘멀티미디어시티’를 조성했다. 그러나 신규 도시프로젝트는 오히려 지역 임대료를 올렸고 도시를 살렸던 예술가들이 다시 빠져나가는 결과를 불러왔다.

예술인들은 비어있는 산업도시를 찾아 돌아다니다 결국 몬트리올시 마일엔드(Mile End) 지역으로 다시 모였다. 마일엔드는 섬유산업이 쇠퇴하면서 공동화현상을 겪은 지역이다. 이곳에는 1980년대부터 예술가와 음악인, 작가 등이 모여 갤러리, 디자이너 부티크, 카페촌 등을 이루며 살았다. 그러나 1990년대 폐쇄된 섬유공장 등으로 IT회사들이 들어오면서 다시 임대료 상승이 나타나자 이곳 주민들은 스스로 살길을 모색했다.

먼저 이들은 주택협동조합을 구성해 주거 공용작업실을 각 조합원들에게 배당했다. 주택협동조합인 레자르(Lezarts)는 회원에게 적절한 가격의 임대료를 책정해 공간을 배당하고 공동운영체제를 취하는 일종의 집단기업이다. 2002년 33개의 주거공간과 17개의 사회적 거주공간을 확보하며 첫발을 내디뎠다. 주거공간과 작업공간이 필요한 예술가들은 저렴한 가격으로 두가지 용도가 모두 가능한 공간을 얻을 수 있었다. 또 예술가끼리 정보공유와 교류가 용이해졌다.

또 다른 주택협동조합인 서클 카레(Cercle Carre)는 2010년 멀티미디어시티 안에 49개의 주거공용 작업실을 장기계약으로 제공했다. 이들은 정부의 공적기금과 국립은행의 25년 장기대출로 주택 구입비용을 마련했다.

박신의 경희대 문화예술경영연구소장은 “몬트리올 예술가들은 단순히 문화영역뿐 아니라 도시개발과 주택기구, 환경 관련 부처와 다양한 협의를 이루면서 사업의 성격에 따라 유연하게 움직였다”며 “궁극적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의 피해로부터 보호받으면서 지역사회의 문화발전을 꾀한 점은 국내에 적용하기 좋은 사례”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4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